주간동아 927

2014.03.03

“안전한 농작지” VS “사체 분해 미지수”

구제역 3년, 가축 매몰지 활용 놓고 안전성 논란 가열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4-03-03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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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농작지” VS “사체 분해 미지수”

    경기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의 구제역 가축 매몰지. 조만간 정비 작업을 통해 농토로 이용할 예정이다.

    2월 26일 오후 경기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서 축산 농장을 운영하는 A(60)씨는 새봄을 맞아 농사 준비에 여념 없었다. A씨가 사료용 옥수수와 콩을 심으려 하는 땅은 3년 전 ‘구제역 파동’으로 그가 기르던 소와 돼지 100여 마리를 생매장한 곳이다. A씨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조만간 땅에 묻은 파이프와 비닐을 걷어준다고 했다. 처리가 완료되면 돌을 고르고 땅도 돋운 후 농사를 지을 것”이라며 기대를 내비쳤다. “아무리 3년 전이라도 가축을 생매장한 땅인데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부에서 문제없다니 믿어야지. 아마 매몰된 돼지는 다 썩어 비료가 되지 않았을까.”

    3년 지났다고 정말 안전할까?

    2010년 11월부터 석 달간 지속된 ‘구제역 파동’으로 전국 4600여 곳에서 소와 돼지 35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정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가축을 묻은 매몰지를 3년간 사용할 수 없게 제한했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3년 금지기한이 끝나면서 올봄 매몰지 대부분을 농작지로 활용하려는 준비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여전히 매몰지 토양과 침출수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 소장은 “동물 사체는 온도, 습기, 토양 성질 등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부패가 진행된다”며 “3년이 지났어도 매몰된 동물 사체가 분해됐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주장했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간사 역시 “3년은 법 제정 당시 임의적으로 정한 기간이므로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민관 공동 연구조사를 통해 법정 매몰지 관리 기간을 정해야 한다. 획일적인 ‘3년 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시군구청장이 발굴 금지기간을 연장할 매몰지를 선정하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환경운동가는 “구체적인 선정 기준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하루빨리 ‘구제역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하는 지자체가 스스로 나서 매몰지 발굴 금지기간 연장을 할지 의문이라는 것.

    ‘구제역 파동’ 당시 정부는 가축 매몰에 의한 2차 환경오염을 막으려고 가축 도살처분 시 구덩이를 5m 깊이로 판 뒤 비닐로 매몰지 전체를 덮고 바닥에 톱밥을 뿌리거나 부직포를 깔라고 권고했다. 또 매몰지 속에 파이프를 심어 사체에서 나오는 유독가스가 바닥에 스며드는 것을 막게 했다.

    하지만 이미 다수 관계자가 짧은 시간에 가축 수백만 마리를 매몰하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 이 매뉴얼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가축이 몸부림치다 비닐을 훼손하거나, 매몰지에 비가 내려 땅이 깎이는 등 안전성을 위협할 변수가 많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는 체계적 관리와 검사를 통해 이들 매몰지의 안전성을 검증했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제역 행동지침에 따라 분기별로 철저히 검사했다. 매몰지 재사용을 앞두고 금지기간을 연장할 매몰지를 선정하려고 토양 안전성 검사도 실시했으나 구제역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토양과 침출수 샘플을 통해 병원성 미생물을 검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며 비판했다. 땅 표면뿐 아니라 가축을 매장한 5m 지하까지 검사해야 하는데, 이를 검사할 수 있는 ‘관측정’을 전체 구제역 매몰지의 30%에만 설치했다는 것. 김정수 소장은 “땅 표면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없더라도 땅속 5m 아래에는 있을 수 있다. 땅속 깊이 고인 바이러스가 언제 지하수로 흘러가 농산물 등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며 비판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관측정을 설치하지 않은 지역은 토양 채취나 육안을 통해 검사한다. 관측정 설치비가 굉장히 많이 든다”고 말했다.

    ‘관측정’ 비싸 땅 표면만 검사

    이런 우려에도 농민들은 구제역 매몰지에서 하루빨리 경작할 날만 기다린다. 포천 지역 농민 B씨는 “사유지 330㎡에 자식처럼 키우던 돼지들을 생매장했지만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은 3년간 세금 면제뿐이었다”면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이 땅에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C씨 역시 “지금도 생매장할 때 들리던 돼지들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당시 상처를 잊기 위해서라도 이 땅에 있는 파이프를 빨리 뽑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형마트에서 있었던 풀무원 샘물 환불 사태를 보면, 구제역 매몰지에 대한 시민 인식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생수공장 근처에 구제역 매몰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풀무원 생수는 대량 환불 사태를 겪었다. 지난해 5월부터 생수를 판매한 이 공장은 반경 1km 내에 구제역 가축 매몰지가 12곳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풀무원 샘물 측은 “취수원이 매몰지보다 상류에 위치하는데 지하수는 역류하지 않기 때문에 오염원 유입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세계적인 선진 기술을 이용해 550여 가지 수질 검사 항목을 기준으로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소비자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반대급부로 ‘구제역 청정지역’ 제주를 취수원으로 하는 샘물이 큰 인기를 끌었고, 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외제 ‘프리미엄 생수’의 인기가 높아졌다.

    이에 대해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해당 공장의 환경영향조사서를 보면 집수 유역에도 지하수가 흐른다. 지하수가 역류해 집수 구역까지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월부터 한 달간 지속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오리와 닭 370만 마리가 폐사하면서 3년 전 ‘구제역 파동’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심이 극대화됐다. 2, 3년꼴로 나타나는 가축 전염병은 예방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사후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안전한 농작지” VS “사체 분해 미지수”

    경기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의 풀무원 샘물 공장. 반경 1km 내에 구제역 가축 매몰지가 12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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