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1

2014.01.13

10년 라이브 음악 공든 탑 ‘와르르’

EBS의 ‘스페이스 공감’ 축소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1-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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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라이브 음악 공든 탑 ‘와르르’

    EBS ‘스페이스 공감’에 자주 출연했던 밴드 ‘로큰롤라디오’(왼쪽)와 ‘달콤한 소금’.

    지난해 연말 EBS 노동조합(노조)은 사측으로부터 ‘스페이스 공감’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공연 횟수를 주 5일에서 2일로 줄이고, 제작 PD를 3명에서 2명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었다. 반발한 건 노조만이 아니다. 음악계가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음악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는 건 사실 방송가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스페이스 공감’이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공감’은 2004년 4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EBS 사옥에 자그마한 공연장을 마련, 주 5회 공연하고 이를 방송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재즈 뮤지션 위주로 진행했으나 곧 인디밴드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에서 보기 힘든 실력파 뮤지션이 무대에 올랐다. 한대수, 주찬권, 김창완 등을 재평가하는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음악 워크숍인 ‘음악의 비밀’, 펑크와 하드코어를 포괄하는 ‘열혈 사운드의 발견’ 등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는 기획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이슨 므라즈, 뱀파이어 위크엔드 등이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외 방송에서도 보기 힘든 한 시간짜리 영상 기록을 남겼다.

    인디음악 쪽에서도 신인 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07년 시작한 코너 ‘헬로루키’는 2008년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을 배출하며 인디음악의 세대교체를 이끄는 주요 구실을 했다. 이후에도 데이브레이크, 칵스, 로큰롤라디오 등 스타가 된 팀은 대부분 ‘헬로루키’를 통해 대중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여온 역사가 4월이면 10년이 된다.

    또한 흔히 방송이 편의상 활용하는 립싱크 없이 라이브 음악으로만 편성했다. 힙합 뮤지션조차 라이브 밴드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스페이스 공감’은 묵묵하고 성실하게 10년간 벽돌 한 장 한 장을 올려왔다. 그 벽돌들은 곧 한 시대 음악을 담은 영상 기록의 성체이자 음악 방송 한계를 확장하는 비문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간 다른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들은 ‘스페이스 공감’과 정반대 길을 걸어왔다. 2000년대 이후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이 아이돌 천국으로 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아이돌이 아닌 음악인이 자신의 음악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유희열의 스케치북’밖에 없다. 그나마 이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는 출연진 범위도 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몇 년간 승승장구하다 지난해 몰락 징후를 보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떤가. 음악을 볼모로 삼은 예능에 불과했다.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되, 그늘 속 가치 있는 대상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방송의 구실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오직 ‘스페이스 공감’만이 후자 임무를 꾸준히 수행해왔다.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2013년 한국방송대상 예능콘서트 부문을 수상한 것은 그 구실에 대한 감사와 지지 표시였다.

    ‘스페이스 공감’ 축소 발표 후 음악계는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다. 뮤지션유니온, 자립음악생산조합, 한국독립음악제작자협회,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의 공동 명의였다. 또 음악인 스스로 ‘스페이스 공감을 지켜주세요’라는 공연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크라잉넛, 말로 등 장르를 막론하고 ‘스페이스 공감’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런 움직임은 ‘스페이스 공감’이 공익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EBS의 존재 의의와 직접적으로 부합하는 상징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음악계는커녕 노조, 나아가 제작진과도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진 ‘스페이스 공감’ 축소 방침은 과연 올바른 결정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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