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소치올림픽 안전 어쩌나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 잇따른 폭탄테러에 지구촌 우려의 시선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입력2014-01-06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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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치동계올림픽이 코앞인데….” 2월 7일부터 열리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한 달여 앞두고 소치와 가까운 러시아 남부 거점도시 볼고그라드에서 잇달아 폭탄테러가 발생해 동계올림픽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연이은 강력 테러로 ‘역사상 가장 안전한 올림픽’을 공언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분리독립을 강력히 요구하는 체첸과 다게스탄에서의 분쟁 등 러시아 남부의 고질적 정치 불안에 대한 우려도 날로 커지고 있다.

    붐비는 대중교통 수단 노려 테러

    러시아 남부의 철도 요충지 볼고그라드는 1943년 옛 소련군이 나치 독일을 격퇴한 지역으로, 러시아인이 성지로 받드는 곳이다. 약 100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흑해 연안 휴양도시 소치로부터 650km가량 떨어졌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이용해 소치로 가려면 반드시 볼고그라드를 지나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도시에서 최근 3개월간 폭탄테러가 세 차례나 발생했다는 점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첫 번째 테러는 2013년 10월 21일 볼고그라드 시내 한 버스 안에서 발생했다. 체첸의 여성 자살폭탄테러단으로 유명한 검은 과부단(Black Widows) 소행으로 알려진 이 테러로 7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

    2013년 12월 29일 낮 12시 45분쯤엔 볼고그라드 기차역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17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했다. 불과 하루 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더 큰 사고가 발생했다. 12월 30일 오전 8시 25분쯤 볼고그라드 기차역에서 2.4km 떨어진 곳을 운행하던 트롤리버스(무궤도전차)에서 또다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했다. 이에 볼고그라드는 물론 러시아 전체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출근대란 시간대인 월요일 아침이라 인명 피해가 컸고 부상자 상태도 좋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30대 초반 무슬림 남성이 용의자

    볼고그라드 연쇄 폭탄테러는 상당히 잔혹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모두 사람들 이동이 많은 시간대에 대중교통 수단을 목표로 해 희생자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이 피해도 컸다. 기차역 폭탄테러 사망자에는 11세와 12세 소년이 포함됐다. 트롤리버스 테러로는 1세 갓난아기까지 숨졌다. 테러 직후 일반 시민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앞다퉈 올린, 신체 일부가 절단된 부상자와 주검이 널린 현장 모습을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주요 외신은 테러리스트들이 보안 검색 및 경계가 삼엄한 소치동계올림픽 주요 시설물에 접근하기 힘들어지자 비교적 접근이 쉬운 대중교통을 택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 용의자로 응급요원 출신인 30대 초반 무슬림 남성 파벨 페첸킨(32)과 그 일당을 지목했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 등 현지 언론은 당국이 2013년 12월 29일 폭탄테러 용의자로 러시아 중부 마리옐 자치공화국 출신의 페첸킨을 지목하고 확인 작업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페첸킨은 러시아 중부 타타르공화국의 수도 카잔에서 5년 동안 응급요원으로 일하다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이후 안사르 아루시라는 아랍식 이름을 사용했으며, 2012년 다게스탄 이슬람 군사조직에 합류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범인의 시신 유해와 페첸킨 아버지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쾅… 쾅…” 소치올림픽 안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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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2월 30일 ‘모스크바타임스’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서 페첸킨은 “나는 알라를 기쁘게 하고 천국에 가려고 다게스탄에 왔다. 신은 우리에게 이교도들과 맞서 싸우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트롤리버스 테러 또한 페첸킨이 속한 반군 소행으로 추정한다. 블라디미르 마르킨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은 “두 차례 테러에서 사용한 폭탄이 모두 TNT 폭약과 금속조각을 뭉친 폭탄물이어서 동일 조직이 두 테러를 모의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 발표대로 이번 사건이 무슬림 테러리스트 소행이라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체첸과 다게스탄의 분리독립 요구가 사태의 근본 원인일 확률이 높다. 체첸은 러시아 남서부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 북부 캅카스 산맥에 자리한 러시아연방 소속 자치령이다. 체첸 주민 약 110만 명 가운데 90%가 이슬람교도인데, 이들은 19세기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완전한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전면전을 벌여왔다.

    이웃 다게스탄에서도 체첸과 연계된 이슬람분리주의 세력이 활동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 해 유전의 원유를 실어 나르는 송유관이 체첸을 지나는 데다 이들의 분리독립을 허용하면 기타 소수민족도 우후죽순으로 독립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독립 요구에 거센 무력진압으로 맞서왔다.

    올림픽 준비 자체도 소홀해 더 불안

    이에 체첸의 이슬람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는 2013년 7월 온라인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모든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과 백성은 흑해 연안의 우리 영토에서 죽어 묻힌 수많은 무슬림을 위해서라도 사탄 숭배자(푸틴)의 올림픽 게임이 열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며 소치동계올림픽 저지 행위를 일종의 ‘성전’이라 강조했다.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막대한 돈을 투입한 러시아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푸틴 대통령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번 테러에도 소치동계올림픽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안전하게 열릴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일부 선수는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키 하프파이프 부문 금메달리스트이자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이 유력한 호주의 토라 브라이트(27)는 테러 공포 때문에 러시아에 가는 것이 두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시설의 공사 지연과 눈 부족 등 정상적인 경기 진행을 가로막는 요인도 많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013년 12월 27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소치올림픽 준비가 순조롭다고 할 수는 없다”며 “모든 경기장은 준비됐지만 기술적 문제로 일부 시설의 완공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뜻한 지역인 소치에 눈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올림픽 기간 강설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산악지역에서 열릴 일부 경기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소치동계올림픽 준비가 예상만큼 잘되지 않는다며 아흐메드 빌라로프 소치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해임했다. 당시 올림픽 시설을 돌아보던 푸틴은 스키점프 경기장 건립 일정이 2년 이상 늦어졌고 비용도 당초 예상인 12억 루블(약 433억 원)에서 80억 루블로 치솟았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해 곧바로 문책을 단행했다.

    소치동계올림픽 준비 과정이 ‘돈 먹는 하마’로 둔갑해 역대 가장 비싼 올림픽이 된 점도 러시아 정부의 골치를 아프게 한다. 러시아 정부가 지금까지 소치올림픽에 투입한 예산만 해도 1조5000억 루블(약 56조 원)에 달한다. 이는 동계올림픽보다 참가 인원이 훨씬 많은 2012년 런던,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준비 비용보다 많은 액수다. 이 와중에 러시아 정부는 2013년 12월 25일 소치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추가 지원금으로 5000만 달러(약 527억 원)를 승인한 바 있다.

    체첸의 검은 과부단

    대중교통 수단에서 자폭… 푸틴 집권 후 계속 괴롭혀


    “쾅… 쾅…” 소치올림픽 안전 어쩌나

    체첸 주둔군 소속 한 러시아 병사가 우루스마르탄 진지의 참호 속에서 고향집으로 보낼 편지를 쓰고 있다. 멀리 체첸 반군 근거지인 캅카스 산맥이 보인다.

    2000년부터 13년째 러시아를 다스리는 3선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제정러시아 황제 못지않은 철권통치를 펼쳐 ‘현대판 차르’로 통한다. 그런 그가 남성도 아닌 여성 테러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러시아 안팎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의 약 절반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체첸의 여성 테러단체 검은 과부단 때문이다.

    여성은 약한 존재라 늘 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이들은 2002년 모스크바극장 인질사건, 2003년 아흐마트 카디로프 전 체첸 대통령 살해기도, 2004년 북오세티야 베슬란학교 인질사건, 2011년 1월 모스크바 도모데보도 국제공항 테러 등 21세기 러시아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상당 부분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3년 10월에도 볼고그라드 버스 폭탄테러를 자행해 또 한 번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어로 ‘샤히드카’라 부르는 검은 과부단의 첫 테러는 2000년 6월 카바 바라예바라는 여성이 체첸 주둔 러시아군 기지 앞에서 자행한 자살폭탄테러였다. 이후 2006년 사망한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리야드 우스 샬리힌 순교자단’의 일부분으로 여성 테러조직을 만들어 급속히 세를 키웠다. 강력 폭탄을 장착한 허리띠를 차고 승객이 밀집한 지하철,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자폭하는 것이 이들의 전통 수법이다.

    검은 과부단 조직원 상당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체첸 분리독립을 위해 러시아군과 싸우다 전사한 남편, 남자형제, 친척 등을 둔 여성이다. 러시아군으로부터 남편, 아이, 가족을 잃고 때로는 강간까지 당한 터라 러시아 정부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극도로 높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기에 거의 맹목적으로 자살폭탄테러에 자기 몸을 던진다. 상당수 심리학자는 여성의 복수심이 남성보다 더 집요하고 강렬하다고 평가한다. 테러조직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삼엄한 검문검색을 피해 목표물에 접근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

    검은 과부단에 의한 자살폭탄테러 공포는 푸틴 집권 후 줄곧 그를 괴롭혔다.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사건은 2010년 3월 수도 모스크바 중심가의 지하철역 두 곳에서 발생한 테러. 이 사건으로 39명이 죽고 100명 넘게 부상했다. 러시아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도에서 발생한 사건인 데다, 사망자 수가 워낙 많아 파장이 상당했다. 이는 내심 분리독립을 원하는 반군과 테러조직을 발본색원했다고 자신해온 푸틴의 허를 찔렀다. 이후 푸틴은 체첸을 포함한 각 지역 반군과 테러조직에 대한 통제 및 탄압을 한층 강화했지만, 이는 주요 반군 세력의 자살폭탄테러를 더욱 부추기는 ‘피의 악순환’을 낳았을 뿐이다.

    사실 여성 자살폭탄테러의 역사는 꽤 길다. 1985년에는 16세 팔레스타인 소녀가 트럭을 몰고 이스라엘 병영으로 돌진했고, 86년 레바논에서는 히야달리 사나라는 시리아계 여성이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했다. 91년에는 인도 초대 총리이자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자와할랄 네루의 외손자 라지브 간디 당시 총리가 스리랑카 타밀 반군에 속한 다누라는 이름의 여성 테러리스트에 의해 피살됐다. 허리에 엄청난 분량의 폭발물을 장착한 그녀는 라지브 간디의 발을 만지며 경의를 표하는 자세를 취하다 자폭해 암살 목적을 달성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검은 과부단 중 일부가 단순히 테러를 위해 팔려왔거나 납치된 여성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은 2011년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테러 당시 체첸 반군과 검은 과부단 수뇌부가 한 20대 여성을 테러리스트로 조련하면서 그녀의 딸을 인질로 삼고 자살폭탄테러를 강요하는 비열한 수법을 썼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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