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다 말 듣고 맘이 훅 갔죠”

여대생 취재 강남 성형외과의원 20곳…상담실장 혀에 녹아 나도 모르게 “수술할래요”

  • 김은솔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3학년 sol2740@hanmail.net 윤솔 고려대 사회학과 3학년 zzyori0206@gmail.com

    입력2014-01-06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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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생겼다 말 듣고 맘이 훅 갔죠”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 힘입어 국내에 성형관광 전성시대가 열렸다. 2012년 1월 31일 성형관광을 온 중국 고객들이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의원에서 관계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대학 3학년 라모(22·여) 씨는 얼마 전 쌍꺼풀 수술을 결심했다. 라씨는 “원래 성형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부정적인 쪽에 가까웠다”고 말했던 이다. 그랬던 라씨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2013년 11월 라씨의 한 친구가 그에게 성형외과의원(성형외과)에 함께 가줄 것을 부탁했다. 라씨는 성형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선뜻 따라나섰다. 어느 토요일 오후 두 사람은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두 곳을 방문했다.

    “가슴 당당한 성적표”

    강남 성형외과들은 ‘상담실장’을 따로 둔다. 이들은 대개 외모가 출중한 20~30대 여성으로, 의사는 아니지만 고객 외모를 살펴본 뒤 “턱을 성형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성형에 관해 조언해준다. 라씨 일행이 찾은 성형외과 두 곳에도 상담실장이 있었다.

    한 상담실장은 두 사람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는 ‘눈, 코, 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 라씨는 “내 외모에 대해 이렇게 나쁘게 평가받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상담실장의 말을 들을수록 외모에 대해 갖고 있던 자신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상담실 탁자에 놓여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성형외과 상담실장도 라씨 외모를 혹평했다. 라씨는 거의 정신적 충격 상태에 이르렀다. 두 곳에서 상담이 끝나자 라씨는 같이 간 친구에게 말했다.

    “나 쌍꺼풀 수술하려고.”

    상담 전까지는 자기 외모에 전혀 불만이 없던 라씨가 단 두 번의 상담으로 성형수술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평소 어렴풋이 느꼈던 점을 (상담실장이) 콕 집어서 말해줬다”고 했다. “첫 번째 상담에서 마음이 흔들렸고, 두 번째 상담에서 훅 갔다”고 덧붙였다. ‘훅 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그는 “이건 꼭 필요한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성형에 부정적이던 그의 마음을 단박에 돌려놓은 성형외과의 상담 기술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알아내려고 필자 일행은 약 한 달 동안 강남 성형외과 20곳을 방문해 직접 상담을 받으며 취재했다. 고객으로 가장해 상담실장과 원하는 부위에 대해 상담하고, 의사로부터 구체적인 수술 방법에 대해 들었다.

    먼저 아는 성형외과가 없어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서울 시내 성형외과’를 검색하자 2700개가 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성형외과는 주로 서울 강남역 주변과 압구정동, 신사동을 중심으로 분포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자리 잡은 강남역을 먼저 찾았다. 지하철 2호선을 타자 ‘이 지하철은 강남 ○○성형외과로 가고 있는 열차입니다’라는 광고내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강남역에 도착할 무렵 “강남역 9번 출구로 가시면 ○○성형외과로 가실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강남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성형외과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못생겼다 말 듣고 맘이 훅 갔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몰려 있는 성형외과의원들.

    9번 출구로 가자 역시 벽면에 있는 성형외과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걔가 성형한 거기, G 성형외과’ ‘가슴 당당한 성적표!’ ‘얼굴은 평면이 아닙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과 신사역 풍경도 비슷했다. 압구정역 1번 출구 양 벽면에는 눈 크고 코 높은 미녀들의 ‘비포·애프터(before · after·성형 전후) 사진’이 일렬로 붙어 있었다. 한 광고에는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성형외과 의사 옷에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Let 美人(렛 미인)’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가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눈물을 훔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요즘 교사도 받기 힘든 카네이션을 성형외과 의사가 받는다는 메시지가 낯설었다.

    강남역에 서서 벽면에 광고를 한 성형외과 10곳에 전화를 했다. 10곳 모두로부터 “손님이 많아 바로 상담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남역 근처에만 성형외과가 100여 개 있으니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한 성형외과 측은 “우리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직후가 피크다. 지금 같은 때는 예약하지 않으면 당연히 상담받기 어렵다”고 했다.

    강남역 밖으로 나가자 눈앞에 보이는 건물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하나 이상 걸려 있었다. 그중 B 성형외과로 들어갔다.

    병원 문을 열자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이 귀에 들어왔다. 강남역 거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음이 심하지만 이곳 성형외과들은 클래식 음악을 통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편이다. B 성형외과는 따뜻한 조명으로 잘 꾸며진 카페를 연상케 했다. 상담원은 모두 깔끔한 정장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 상담원의 안내에 따라 카운터에서 개인정보를 적은 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친구보다 훨씬 시급해요”

    눈에 띄는 건 상담원의 외모였다. 상담원 모두 하나같이 피부가 탱탱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특히 웃을 때 양 볼이 메추리알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졌다. 이와 관련해 나중에 인터뷰한 한 성형외과 상담원 박모 씨는 “상담원이나 상담실장은 주기적으로 보톡스 주사를 맞으며 외모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알바몬’ ‘알바천국’ 등 인터넷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에는 성형외과 상담원을 구하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 상담원 모집 공고는 대부분 30대 초반으로 나이가 제한돼 있다.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평균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긴 대기시간 끝에 상담실장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실장은 필자가 상담실로 들어서자마자 “안검하수 있네요”라고 지적했다. 안검하수는 눈꺼풀 근육이 약해 아래로 처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사도 하기 전 그런 말을 듣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언론에 이름이 꽤 알려진 압구정동 G 성형외과를 찾았다. 이곳엔 상담원만 20명 이상이 있었다.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고객 약 4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환율을 실시간 반영하는 환율거래표가 붙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상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모 원장은 “요즘은 고객의 반 이상이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어에 능통한 상담원을 채용한 성형외과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 원장은 “중국 고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이렇게 많은 강남 성형외과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상담실장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중국인 장모(23) 씨는 “수많은 중국 여성이 강남으로 성형관광을 온다. 한국 연예인을 따라 하는 성형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강남역 근처 또 다른 성형외과에선 상담실장이 자꾸 새로 나온 수술 방법을 권했다. 필자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내 말을 안 들으면 100% 다시 와서 수술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다른 성형외과에선 “친구보다 훨씬 더 (수술이) 시급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못생겼다 말 듣고 맘이 훅 갔죠”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원 내부.

    ‘기 센 언니’형 상담실장들

    압구정동 G 성형외과에서도 ‘기 센 언니’형 상담실장을 만날 수 있었다. 상담실장 L씨는 “지금 눈, 솔직히 말하면 안 예쁘다”고 직설적으로 평가했다. “성형을 하면 상담실장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나도 수술한 거지만 골격 자체가 달라서 나처럼은 안 나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유형의 상담실장들은 상담하는 동안 ‘필요하다’ ‘해야 된다’ ‘시급하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성형수술을 안 받고 그냥 살면 큰일 날 것처럼 말했다. L 실장은 상담시간 15분여 동안 이런 표현을 10회 이상 사용했다.

    기선을 제압하려고 상담실장이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반말’과 ‘말 끊기’였다. D 성형외과 상담실장 K씨는 “어디 상담?”이라며 반말로 말을 꺼냈다. 또 다른 성형외과 상담실장 H씨는 고객 박모(22·여) 씨의 말을 자주 끊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박씨 : “눈이 약간….”

    실장 : (말 끊고) “안검하수네요.”

    박씨 : “코는 윗부분을 약간 깎고….”

    실장 : (말 끊고) “코 말고 눈 먼저.”

    박씨 : (눈 수술 방법에 대해) “매몰할지, 절개할지….”

    실장 : (말 끊고) “수술할 생각은 있어요?”

    30분 정도 상담받으면서 박씨는 H실장 기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상담받은 사람이 성형을 결심하는 결정적 이유는 조급함이었다. L 성형외과 상담실장 A씨는 “12월 말부터 1월까지 예약이 85%가 찼다”며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량이 얼마 안 남았다고 재촉하는 홈쇼핑 채널을 보는 기분이었다.

    다른 성형외과도 상담 방식이 비슷했다. 같은 날 방문한 한 성형외과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벤트로 해드리는 것”이라는 말을 상담 내내 다섯 번 반복했다. “오늘 여기서 결정하고 예약금을 내면 특별히 싸게 해주겠다”고도 했다. 이런 ‘홈쇼핑형’ 상담 방식은 성형외과 대부분에서 사용했다. 특히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다”는 말을 계속하며 고객이 성형할 생각이 없음에도 불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주변 고객 중 십중팔구는 상담실장의 물 흐르는 듯한 말을 따라가다 휘말리는 양상이었다.

    대한성형외과학회 관계자는 “개원병원에선 보통 코디네이터(상담원)를 많이 쓴다. 그러나 코디네이터에 대해 따로 말할 건 없다”며 과도한 성형수술 조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성형외과들이 불필요한 성형수술까지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연순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 부장은 “성형외과의 코디네이터 상담은 안정성보다 오히려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도한 성형수술 조장으로 성형외과는 성업 중이지만, 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인구 수 대비 성형수술 횟수는 전 세계 1위다. 성형수술이 늘어나면서 의료사고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형수술 부작용 피해구제 접수가 472건에 이른다. 취재 내내 외모지상주의 한국 사회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 지도로 취재해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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