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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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왕 횡령사건’ 추적하다 노태우 비자금 수사했다?

경찰 수사에 삼성·교보생명 불똥 튈까 전전긍긍…금감원은 혐의 포착한 듯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3-12-30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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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왕 횡령사건’ 추적하다 노태우 비자금 수사했다?
    2013년 7월부터 11월까지 대구 인쇄업자 L(70)씨의 회사 돈 횡령 의혹을 수사했던 경찰이 그 과정에서 L씨가 조성한 비자금 500억 원이 ‘노태우 비자금’인 정황을 포착하고 집중 수사를 벌여왔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은 ‘노태우 비자금’ 혐의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의외의 소득을 올렸다. 바로 L씨와 거래한 생명보험회사의 ‘보험왕’ 출신 보험설계사들의 보험금 횡령과 불법 리베이트(특별이익) 제공 혐의를 밝혀낸 것.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세청, 금융감독원(금감원) 등에 각 보험사의 각종 비과세보험을 통한 구조적 불법자금 은닉 행위와 불법 고액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조사 및 법적, 제도적 보완을 공식 요구함에 따라 그 파장이 보험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세청과 금감원은 2013년 12월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된 보험설계사가 몸담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지점에 대한 조사를 벌여 2월 중으로 그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불법 비자금 500억 원 조성

    경찰은 2013년 11월 13일 ‘고객 돈 수십 억 원을 횡령한 유명 보험왕 등 검거’와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B인쇄업체 대표 L씨 등이 20년 동안 불법 무자료 거래를 하면서 차명계좌 수십 개를 통해 불법 비자금 500억 원을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하려고 각종 비과세보험에 장기간 은닉해 자금을 세탁한 사실을 적발했다. 하지만 이 중 공소시효가 남은 37억 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L씨의 비자금 500억 원을 관리하며 ‘10년 연속 전국 보험왕’에 오른 삼성생명의 유명 보험설계사 Y씨가 L씨의 해약 보험금 60억 원 상당을 횡령하고, 보험 실적을 유지하려고 L씨의 부인 M(69)씨에게 보험 가입 대가로 현금 등 3억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적발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교보생명 보험설계사(보험왕) G씨도 보험 가입 대가로 M씨에게 현금 등 2억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이 인쇄업자 L씨와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Y씨, 교보생명 보험설계사 G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Y씨, G씨는 경찰의 수사 결과와 범죄사실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부인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L씨에 대해선 회사 돈 37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으며, 불법으로 조성한 회사 돈 110억 원과 개인 돈 390억 원에 대해선 세금 포탈 관련 조사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8회에 걸쳐 보험 가입 대가로 Y씨와 G씨로부터 총 5억7500만 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보험업법 위반, 특별이익 수수)로 L씨의 부인 M씨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L씨, M씨와 함께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보험설계사 Y씨의 혐의는 L씨의 중도해약 보험금 60억5000만 원을 개인 용도로 쓴 것과 6회에 걸쳐 M씨에게 보험 가입 대가로 3억5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것이었고, G씨도 보험 가입 대가로 M씨에게 2회에 걸쳐 2억 원 상당의 금품을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간동아’는 경찰 고위관계자와 보험업계 관계자로부터 “경찰의 ‘보험왕 횡령사건’ 수사가 당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추적 수사였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제보의 구체적 내용은 “인쇄업자 L씨가 20여 년 동안 각종 비과세보험을 통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 500여억 원이 실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자금 추적에 실패했거나 사건 자체를 덮어버렸을 개연성이 있다. 그 대신 비자금 세탁을 맡은 L씨와 보험설계사들의 불법 혐의만 찾아냈다”는 것이다.

    인쇄업자 L씨가 관리 또는 세탁했던 비자금 500억 원대가 노 전 대통령과 관계됐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정황은 L씨의 부인 M씨가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후인 1988년 말부터 92년까지 대통령 경제수석과 민주정의당(후에 민주자유당)에서 요직을 거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M(74)씨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점이다. 보험설계사 Y씨와 G씨가 보험 계약자인 L씨를 놔두고 부인 M씨에게 리베이트 5억7500만 원을 제공한 것도 의혹을 더하는 대목이다. 비자금 관리 주체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M씨라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혹을 부채질하는 정황은 또 있다. 먼저 L씨가 600여 건의 보험 가입을 통해 비자금 500억 원대를 조성하기 시작한 시기가 1992년 말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라는 점이다. 또 보험 가입을 통한 비자금 세탁을 활발하게 하다 노 전 대통령의 와병설이 돌고 실제 입원했던 2008년 무렵부터 뜸해지기 시작했다.

    ‘보험왕 횡령사건’ 추적하다 노태우 비자금 수사했다?

    인쇄업자 L씨는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 비과세 상품 600여 개를 동원해 5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 또는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L씨가 조성한 비자금이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흘러 들어갔을 개연성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비자금 관리 여러 정황 증거

    L씨 사업체가 있는 대구 지역 인쇄업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들은 “L씨가 운영하던 B인쇄업체는 페이퍼컴퍼니란 소문이 돌 정도로 매출이 적었다. 업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1990년대 이후 인쇄업은 계속 사양길을 걸었는데 인쇄업체를 경영해 500억 원을 모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경찰이 L씨의 비자금 조성 창구 노릇을 했다고 밝힌 삼성생명 보험설계사 Y씨는 “초동 수사단계에선 용의자나 피의자 신분이 아닌 비자금 수사를 돕기 위한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갔는데, 비자금 수사가 잘되지 않자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해 경찰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설을 뒷받침해준다.

    L씨 부부는 실제 비자금 관리를 맡을 여러 조건을 두루 갖췄다. L씨와 M씨는 캐나다 영주권자로, 2010년 각종 비과세보험 상품 600여 개에 분산 가입해 조성한 불법 비자금 500억 원 가운데 234억 원 상당을 2010년 캐나다로 반출했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재외동포의 경우 통장사본, 부동산매매계약서 등 간략한 자료 제출만으로 본인 명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라도 해외 반출이 가능한 외국환 거래규정을 악용했다.

    L씨가 당시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청 특수수사과 김모 형사(경사)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시하며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청탁한 과정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된다. L씨는 처음 수사 무마 대가로 5억 원을 제시했지만 김 경사는 “돈이 부족하다”며 13억 원을 요구했는데, 노 전 대통령 측이 9월 5일 추징금을 완납하자 L씨는 돌연 김 경사와의 뇌물거래 관련 대화를 녹취한 내용을 특수수사과에 제출해버렸다는 것. 김 경사는 뇌물 요구 과정에서 자신이 하던 수사에 대해 “노태우 비자금 수사”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경사는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로 9월 25일 구속됐다.

    보험왕 횡령사건 수사가 시작된 2013년 7월 무렵은 ‘채동욱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에 큰 성과를 내던 때로, 경찰은 검찰의 강력한 수사 행보에 심적 압박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경찰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를 중간에 접은 이유에 대해서 온갖 설이 난무한다. 그중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중간에 노 전 대통령 측이 9월 5일 추징금을 완납해 수사 동력이 실질적으로 사라진 데다, 담당형사가 사건 피의자에게 뇌물을 요구하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 더는 수사를 계속할 수 없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보험왕 횡령사건 수사는 L씨가 출처 불명의 자금 수백억 원을 조성해 해외로 빼돌렸다는 첩보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라는 첩보는 없었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L씨의 부인 M씨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M씨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부터 M씨 가계에 대한 인물들과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계좌 수백 개를 추적하는 등 집중 내사를 벌였지만 연관성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해명이다.

    “비슷한 유형 기획수사 검토”

    “김모 경사가 L씨에게 13억 원을 요구하다 구속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 수사’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L씨는 자신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를 무마하려고 청탁을 시도한 것이었다. 보험설계사 Y씨는 처음 소환할 때부터 피의자 신분이었다. 우리는 피의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갖춘 상태였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는 중단하거나 덮은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지만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혐의점이 있다면 우리가 왜 덮겠나. 얼마나 좋은 실적인데. 워낙 오래된 거래라 자금 추적에 한계가 많았던 부분은 인정한다.”

    한편, 경찰이 보험왕 횡령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후 금융감독 당국과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회사는 검찰의 수사 결과 향방을 지켜보면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경찰이 금융위원회, 금감원, 국세청 등 경제 검찰은 물론,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관련 보험사에 대해서도 비과세보험 상품의 불법자금 은닉 악용 및 보험설계사의 고액 리베이트 관행을 법적,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을 찾고 철저한 관리, 감독을 할 것을 강도 높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인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경찰청 차원에서 이와 비슷한 유형의 불법자금 은닉 사례에 대한 기획수사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보험업계는 더욱 얼어붙은 분위기다. 특히 금감원이 2013년 12월 중순 ‘보험왕 횡령사건’에 연루된 보험설계사가 소속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각 지점에 대한 부분 검사를 실시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일단 우리 측 보험설계사 Y씨가 횡령과 고액 리베이트 지급 등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법적으로 공식 대응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감원의 조사 결과와 검찰의 수사 결과, 그리고 재판 상황을 지켜본 뒤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교보생명 관계자의 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비리가 있다면 보험설계사 개인의 문제다. 부분 검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액 리베이트 지급에 대한 내용은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의 반응은 다르다. 금감원 생명보험검사국 관계자는 “부분 검사를 실시한 것은 사실이다. 전면 검사 계획은 아직 없다.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밝혀지지 않은 건 아니고) 어쨌든 두 달 후 검사 결과에 대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다. 더는 밝힐 수 없다”고 귀띔했다.

    한편, ‘주간동아’는 인쇄업자 L씨의 반론을 들으려고 경찰과 검찰, 각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처를 얻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경찰과 검찰 관계자는 “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피의자 신분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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