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2013.12.30

바이크 타고 장작 패는 ‘100세 꽃할배’

9988234 장수마을 노인들 적게 먹고 지속적인 활동

  • 우진희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sports@dau.ac.kr

    입력2013-12-30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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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크 타고 장작 패는 ‘100세 꽃할배’

    노년 연예인들이 유럽을 배낭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행복하다’고 바로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재산이 많아서’ ‘자식이 성공해서’ ‘번듯한 직장에 다녀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는 전제가 있다. 바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조건이 만족된다 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장 자크 루소는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도화선이 됐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의 절대적 불평등은 신체에 내재한다’고 썼다. 정치, 사회, 경제적 평등이 확보된다 해도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타인과의 평등을 함께 누릴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인간에게 행복이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기본 전제가 되는 셈이다.

    산업화 이후 보편적 성인의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노동하는 삶과 은퇴한 삶이다. 문제는 의과학의 비약적 발달로 은퇴 이후 삶이 상당히 길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나이 60이면 큰 잔치를 벌일 일이었지만, 이제는 60세 이후 삶이 부담이 돼간다. 이렇게 갑자기 길어진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사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최근 ‘꽃할배’들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노년의 연예인 4명이 유럽을 배낭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은 노인정의 이야깃거리를 넘어 남녀노소와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 프로그램의 아이콘이 됐다. 수십 년의 시간을 되돌리지 않더라도 예전 우리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동네 어귀에서 장기를 두든지, 집에서 손자를 돌보거나 누워서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노동하는 삶 vs 은퇴한 삶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 일흔이 훌쩍 넘은 연기자가 막내 취급을 받으며 커피를 타고, 무거운 짐도 옮기며, 때론 여든 살인 연기자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더운 여름의 유럽과 아시아를 누빈다. 그들이 베테랑 연기자라 해도 브라운관에 비친 그들의 즐겁고 유쾌한 표정과 몸짓은 꾸며낸 연출이 아니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꽃할배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건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2011년 기준 남자 77.6세, 여자 84.5세로 여자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위를 기록했다. 1970년과 비교하면 20년 정도 수명이 늘었다고 볼 수 있고, 2030년에는 90세를 넘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다면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것일까. 산다는 것에 대한 별다른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천국으로 올라갈 때만 기다리는 노년기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미국에서 국가별 장애보정수명을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0년 기준 79.7세인 데 반해 장애보정수명은 70.3세로 나타났다. 장애보정수명이란 질병이나 장애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이란 의미로, 일반적으로 건강수명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평균 10년 정도 병치레를 하다가 죽음을 맞는다는 뜻이다.

    좀 더 끔찍한 자료도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12월 한국인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을 보면 2012년 출생한 남자는 죽기 전 12.7년, 여자는 17.9년을 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는 결국 병치레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보편적 욕구인데, 질병의 멍에를 안고 20년 가까이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노인이 ‘9988234’를 원한다고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죽는다는 우스갯소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99세까지 팔팔하게 살 수 있을까.

    일본 오키나와 북쪽 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여성이 있다. 이 지역 사람은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잠을 자다가 또는 편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심지어 부부관계를 갖는 와중에 편안히 숨을 거두기도 한다. ‘9988234 실천족’이라 할 만하다. 이곳이 세계적인 건강 장수마을이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문화전통에 있다.

    바이크 타고 장작 패는 ‘100세 꽃할배’

    일본 오키나와의 대표적 장수마을인 오기미촌 기조카에서는 과일과 채소 등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담백하고 간소한 점심을 즐긴다.

    낙천적 성격에 인생 즐기기

    이들의 식습관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라후텐이라 부르는, 지방을 뺀 삶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데 늘 녹황색 채소, 해초, 콩을 곁들인다. 특히 두부 섭취 양이 일본 본토 사람의 2배에 이르며, 채소 중에서는 비타민C와 카로틴, 칼륨이 풍부한 수세미외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하라 하치 부’라는 금언을 따르는 식습관을 눈여겨봐야 한다. ‘허리띠를 풀기 전에’라는 뜻으로, 배가 부르기 전 젓가락을 놓는다는 뜻이다. 소식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한 오키나와 사람의 지혜다.

    식습관과 더불어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 전통이 있는데, 인생을 함께하는 계모임 성격의 ‘모아이’ 친구 6명 정도를 둔다는 점이다. 노년의 긴 시간을 ‘모아이’ 친구들과 공유하는 까닭에 여생이 외롭거나 무료하지 않다. 오키나와에는 은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이키가이’라는 단어가 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로 이해될 수 있는데, 100세가 넘는 분의 ‘이키가이’는 가라테를 가르치고, 일주일에 세 번 가족을 위해 물고기를 낚으며, 100세 이상 차이가 나는 증증증손녀딸을 돌보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하루하루가 마치 천국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연안에서 200km 떨어진 사르데냐 섬. 이 섬의 누오로 지역은 세계에서 남자의 기대수명이 가장 높고 전체 인구당 100세 인구가 미국의 약 10배에 달하는 장수마을이다. 100세가 넘는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일을 나서고 도끼로 나무장작 패는 일을 한다. 이 지역은 땅이 척박해 청동기시대부터 매일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가축을 키우는 목동이 많이 산다. 이들의 일상생활은 ‘규칙적인 저강도 신체활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온종일 목초지에서 보낸다. 하루에 적어도 10km를 걸으며, 11월부터 4월까지는 160km 떨어진 곳으로 양을 몰고 간다.

    또 이들의 성격은 낙천적일 뿐 아니라 인생에서 좋은 것을 얻었던 때를 기억하고 이를 즐기려 노력한다. 이들의 식습관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주식으로 이스트 없는 옥수수빵과 통밀빵을 즐기고, 잔디를 먹여 키운 가축의 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먹는다. 이 치즈는 사료로 키운 가축의 젖으로 만든 치즈에 비해 오메가3가 풍부하다. 또한 다른 곳의 와인보다 폴리페놀이 3배나 많이 함유된 칸노나우라는 와인을 즐겨 마신다.

    누오로 지역 사회의 특징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는데, 이 지역은 노인을 대우하는 전통이 강하다는 점이다. 바로 다음 세대가 노인의 지혜를 배우려는 분위기가 정착된 가운데 가족 안에서 노인이 세대 간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 간 유대와 상호의존이 기대수명을 4~6년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전체 100세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는 지역이자 실크로드 출발지인 신장성이다. 신장성은 일교차가 심한 데다 햇빛이 좋아 과일 색이 진하고 당도가 높기로 유명해 과일 고향이라 부른다. 신장성의 위구르인은 과일과 함께 요구르트를 많이 먹고 또 저녁을 일찍 먹은 뒤 충분히 소화시키고 잠자리에 드는 오랜 식습관을 지녔다. 이들 대부분은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식습관도 본받을 만하지만 특히 생활습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구르에는 게으른 사람이 없다. 100세가 돼서도 매일 일하고, 사냥과 투견을 즐기며, 세상만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또한 매일 평균 2시간 30분 이상 절하는 예배를 올리는데, 이것은 숨이 찰 정도의 유산소운동이 될 뿐 아니라 근육을 강화하는 근지구력 운동을 병행하는 효과가 있다. 돌궐 유목민의 전통이 아직까지 살아 전해지는 위구르족은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존경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위구르인의 식습관뿐 아니라 이러한 문화가 이 지역의 장수문화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들 지역 노인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유는 각종 매스컴이나 전문가가 추천하는 방식과 대부분 일치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풍성한 채소와 함께 섭취하되 소식하고, 친구들과 여생을 즐기며, 항상 내일 할 일을 계획하는 오키나와 노인들, 식이섬유가 풍부한 정제되지 않은 곡식류, 칼슘과 질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치즈, 그리고 항산화식품으로 각광받는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된 와인을 즐겨 먹고, 매일 등산과 산책을 즐기는 누오로 노인들, 철저한 이슬람문화 속에서 신선한 과일과 요구르트를 많이 먹고, 노동을 신성시하며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위구르 노인들, 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떨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쉽게 죽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은 OECD 회원국 순위에서 20위권 밖으로 밀려난다. 여자와의 격차도 매우 크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와 흡연, 그리고 운동하지 않는 습관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50~60세면 떠나야 하는 직장, 그리고 직장 은퇴와 함께 가장으로서 존재 이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삶의 목표

    바이크 타고 장작 패는 ‘100세 꽃할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폐지 등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내다 팔고 있는 한 노인.

    한국의 중·노년이 ‘꽃보다 할배’ 출연자를 동경하는 이유는 이들이 무위도식하는 삶, 은퇴 후 버려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활동할 뿐 아니라 노년에 이르러서도 삶의 목표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오키나와, 누오로, 그리고 위구르 노인의 공통점은 내일 할 일이 있다는 것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 일을 멋지게 해내며, 자손으로부터 존경받고 이들에게 자신의 생활습관을 물려준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실 조지 베일런트 교수팀은 하버드대 학생 268명을 72년간 추적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그 결과 50세 때 건강한 사람 중 50%가 80세에 행복하다고 응답했고, 불행하다고 응답한 이는 7.5%에 불과했다. 놀라운 점은 50세 때 건강하지 못한 이들 중 80세에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뿐 아니라, 50세 때 건강한 사람보다 80세 이전에 사망한 비율이 3배나 높았다. 노년에 행복하려면 건강이 전제조건이라는 공식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억압적이면서도 치열한 경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 은퇴 후 과거보다 훨씬 길어진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맞는 열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세계적인 건강장수 마을에서 해답을 얻자. 은퇴 후에도 반드시 일해야 하고 가족 안에서 제구실을 해야 한다. 가족 안에서의 구실은 단시일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은퇴 전부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지 않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또한 어른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며, 어른과 후대가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행복한 노년을 보장해주는 핵심 요소인 매력적인 몸매 유지, 금연, 적절한 음주, 스포츠나 놀이 참여,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 안정적인 가족 관계, 그리고 내일을 위한 계획 등을 실천해야 한다. 결국 행복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모여 행복을 만든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면 그 행복은 내일로 이어지고, 이런 행복이 쌓이면 결국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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