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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중국 속 북한

저임금 똑 부러지는 일솜씨 “북 여성 근로자 팅하오!”

투먼 조선공업단지 고강도 감시와 통제 속 근무…월 1300위안 중 본인 몫은 180위안에 불과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저임금 똑 부러지는 일솜씨 “북 여성 근로자 팅하오!”

저임금 똑 부러지는 일솜씨 “북 여성 근로자 팅하오!”

중국 지린성 투먼의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운동장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

필자는 2012년 7월 중국 투먼을 다시 찾았다. 3월에 이어 넉 달 만이었다. 그해 5월부터 일을 시작한 북한 인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3월 취재한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보도는 그다음 달인 4월 전파를 탔다. 보도 이후 투먼엔 비상이 걸렸다. 공개돼서는 안 되는 현장을 외신 기자가 생생하게 화면에 담아 보도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스포츠 의류 공장

투먼 공안당국은 내부 보안에 문제가 있다며 대대적인 문책을 벌였고,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필자 이름을 거론하며 “잡히기만 해봐라.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다시 취재를 가겠다고 하니 취재원이 길길이 뛰었다. “미쳤느냐. 지금 여기 분위기가 어떤지 아느냐. 당신 잡겠다고 난리다.” 그러나 필자는 몇 차례 고민하다 방법을 생각해냈고, 결국 다시 투먼으로 향했다.

2013년 12월 현재 시점까지 중국 정부가 북한 인력 고용을 허가한 지역은 지린성 투먼이 유일하다. 지린성 정부는 2011년 8월 투먼시 ‘조선공업단지’에서 일할 북한 인력의 고용허가를 내줬다. 이 단지에서 처음으로 북한 인력을 고용한 기업은 서구 유명 의류업체였다. 이 기업은 2011년 10월 북한 인력송출업체 ‘능라도’와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과 중국 정부가 관련 계약을 맺은 직후였다.

이듬해 5월 북한의 공식 송출 인력이 처음으로 투입됐다. 모두 평양 출신이었다. 이들은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거쳐 철교를 통해 단둥으로 들어갔다. 단둥에서 투먼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필자가 취재를 간 2012년 7월에는 이렇게 모인 인력이 141명이었다. 모두 여성 근로자였다. 이들은 ‘주간동아’ 917호에서 다뤘던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건물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의 일터는 기숙사 부근 의류공장. 유명 브랜드의 스포츠 의류가 이들 손으로 만들어졌다.



필자와 카메라맨은 베이징에서 옌지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승용차를 렌트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차량으로 택했다. 번갈아 운전하며 투먼까지 갔다. 투먼에 도착한 우리는 카메라를 꼭꼭 숨긴 채 비즈니스 여행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넉 달 전 잠입 취재했던 현장 부근을 수차례 돌면서 관찰했다. 예전보다 건물을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감시카메라도 늘었다. 근무시간인지 기숙사에는 여성 근로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커튼을 젖혀둔 창가에서는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이나 물병 등이 보였다. 이들이 이른 아침 집단 조회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그다음 날 일찍 움직이기로 하고 현장에서 물러났다.

투먼에서 우리가 묵을 숙소의 첫째 조건은 ‘신분 은닉’이었다. 중국에서는 호텔이나 여관에 투숙할 경우 투숙자 여권이나 신분증을 제시해 기록을 남기게 돼 있다. 특히 외국인은 투숙 즉시 해당 공안당국에 통보된다. 외국 기자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전국 어느 지역을 가든 동선 추적이 가능한 구조였다. 투먼 공안당국이 우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일반 호텔에 투숙한다는 건 붙잡아 가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민박집뿐이었다. 한 곳을 찾아 짐을 풀었다. 민박집에 묵는 사람은 보통 불법체류자 신분이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설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것은 그럭저럭 해결됐다. 샤워기도 작동했고 인터넷도 접속할 수 있었다.

렌터카에서 숨죽이며 취재

침대처럼 만들어놓은 딱딱한 평상 위에서 편치 않은 잠을 잤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자 숙소를 나와 렌터카를 몰고 투먼 경제개발구 쪽으로 향했다. 6시 30분쯤 기숙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벌써 북한 인력들이 운동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시각보다 훨씬 이른 움직임이었다. 감시카메라에 노출되지 않을 장소에 서둘러 주차했다. 카메라맨이 뒷좌석으로 옮겨 앉아 문을 닫은 채 촬영을 시작했다. 닫힌 철문 창살 사이로 북한 근로자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틴팅(빛 가림)이 전혀 되지 않은 렌터카 안에는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긴장과 불안이 흘렀다.

여성 근로자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대를 바꿔 가며 서로 손을 잡고 돌리는 모습이 가볍고 익숙해 보였다. 앳돼 보이는 여성부터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다. 표정은 대부분 밝았다. 특히 20대 젊은 여성들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음악과 춤이 흥겨워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이들은 모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분홍색 바지에 남색 계열 상의였는데, 특이하게도 등에 모두 큰 숫자가 붙어 있었다. 당시엔 무슨 옷인지 몰라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고용된 공장에서 만든 스포츠 의류였다.

북한 여성 근로자는 집단 무도를 마친 뒤 집결했다. 한 중년 여성이 뭔가 열심히 말했고, 나머지는 선 채 경청했다. 수십 분간 진행됐다. 일종의 정신교육인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촬영하는데 한 여성이 쓰레기를 버리려는 듯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차 안에서 몰래 촬영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곧바로 시동을 걸고 현장을 떴다. 카메라맨은 이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며 불안해했다. 다행히 추적 같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북한 여성 근로자들은 식당 건물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7시 30분쯤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들이 출근할 의류공장 쪽으로 향했다.

투먼 경제개발구 내 의류공장을 촬영하기 좋은 위치는 모두 폐쇄회로(CC)TV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를 피해 촬영할 만한 장소는 모두 공장과 다소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무와 풀이 우거져 우리 모습을 적당히 숨길 수 있었다. 카메라를 줌인 하니 공장 모습이 그럭저럭 볼만했다. 아침도 거른 채 은폐 장소에서 숨어 기다렸다.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모양이 시내버스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의 옷차림도 아무래도 북한 여성 같지 않았다. 곧이어 북한 여성 근로자들도 버스를 타고 와 차례차례 출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공장에는 중국 여성도 함께 고용됐는데, 앞서 본 이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중국 여성이었다.

북한 여성 근로자들은 공장과 기숙사 사이를 이동할 때 모두 버스를 이용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기숙사에 갈 때도 버스를 이용했으니, 하루에 세 차례 버스로 기숙사와 공장을 오가는 셈이다. 걸어서도 5분이면 갈 거리였다. 중국으로 수출한 첫 북한 인력이다 보니 북한이나 중국 모두 각별히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고강도의 감시와 통제였다.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은 건물 2층에 자리했다. 의류공장은 낮에도 형광등이 환하게 켜졌다. 재봉작업을 하려면 밝은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리창 너머로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잡혔다. 스포츠 의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져 모두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날이 어슴푸레해질 무렵 취재팀은 다시 공장을 찾았다. 저녁 7시를 넘은 시각, 칠흑 같은 투먼의 밤하늘 아래 의류공장의 흰색 형광등과 투먼 경제개발구 청사의 붉은색 간판이 빛났다. 오후 8시가 되자 이들은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기숙사 식당에서는 중년여성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북한에서 온 인력이었다.

투먼시 당국은 북한 근로자의 여가 생활에도 각별히 신경 썼다. 기숙사 4층에는 대형 노래방을, 운동장에는 농구장과 배구장을 마련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휴일이면 공놀이를 했다. 밤에는 노래방에 모여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기숙사에서 흘러나오는 북한 여성의 노랫소리가 적막한 투먼의 밤을 울리곤 했다.

여성 근로자의 군것질을 위해 기숙사 부근엔 상점도 들어섰다. 혹시 탈출할까 봐 염려하지 않을까. 현장에서는 그런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북한에 돌봐야 할 가족이 있는 데다 투먼 공장에서의 벌이가 괜찮은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저임금 똑 부러지는 일솜씨 “북 여성 근로자 팅하오!”
매일 12시간 최소 3년 이상 근무

북한 여성 근로자들은 한 달에 한 차례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물론 검열은 받았지만 비교적 쓰고 싶은 글은 다 쓰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소 3년 이상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일해야 하는 서글픔도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이 엄마 생각에 울음을 터뜨리자 나머지 여성들이 따라 운 적도 있었다고 공장 관계자는 전했다.

당시 필자가 취재한 북한 인력의 근로조건은 이렇다. 월~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일 12시간 일하고, 이 가운데 4시간은 초과근무수당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월 1300위안. 이 가운데 800위안은 북한 정부로 들어간다. 나머지 500위안 가운데 기숙사비와 상급 관리자 몫을 빼고 나면 생산직 근로자 몫으로 180위안 정도가 건네진다. 당시 평양 근로자 임금은 6만2000원, 중국 돈으로는 28위안 정도라고 했다. 그에 비하면 투먼에서의 월급은 꽤 높은 수준인 셈이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개성공단 임금의 2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측에서는 북한 근로자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키는 일을 묵묵히 잘해내는 데다 숙련도도 높기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의 마음가짐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했다. 초과근무도 자원해서 나선다는 것이다. 이렇듯 평가가 좋게 나오면서 북한 인력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났고, 서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지방정부 간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간동아 918호 (p54~56)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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