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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국가는 2년 동안 도대체 뭐 했나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국가는 2년 동안 도대체 뭐 했나

국가는 2년 동안 도대체 뭐 했나
9년여 전 어린 딸을 둔 30대 주부 장미정 씨는 넉넉지 않은 살림형편에 남편 후배인 조모 씨의 제안을 듣고 귀가 솔깃해진다.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금강 원석이 든 가방을 운반만 해주면 400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장씨는 조씨 말만 믿고 전해 받은 가방 2개를 들고 프랑스에 입국하던 중 오를리공항에서 체포된다. 마약 소지 혐의였다. 장씨가 금강 원석이 든 것으로만 알고 있던 가방엔 30kg이 넘는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2004년 10월 30일 현행범으로 체포된 장씨는 파리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수개월 후 재판관할권이 있는 카리브해 인근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으로 이감됐다. 장씨는 첫 수감 후 1년이 넘도록 재판을 받지 못하는 등 고초를 겪다 결국 마약운반죄로 1년형을 선고받고 체포 2년 만인 2006년 11월 풀려나 귀국했다. 프랑스법원은 가방에 마약이 들어 있는지 몰랐다는 장씨 말을 인정했고, 이미 미결 상태로 2년이나 수감했기 때문에 형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해 바로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주부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2년은 너무 길었다. 왜 여인은 영문도 모른 채 1년이나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 했을까. 남의 나라에서 불행과 고난에 빠진 국민을 도와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는 한 국민을 울렸고, 여인의 애끓는 사연은 관객을 울린다. 전도연과 고수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은 장씨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대한민국이 외면한 실화가 공개된다’는 영화 홍보 문구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정부 도움을 받지 못해 비극의 주인공이 된 여인과 아내를 살리려는 남편의 악전고투를 그렸다.

전도연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을 가진 한국 대표 여배우로서 그 이름값을 다시 한 번 입증했고, 극중 남편으로 분한 고수는 다섯 살 아래 나이가 무색한 호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배우 출신 여성 감독 방은진은 ‘오로라 공주’ ‘용의자X’에 이은 세 번째 장편영화인 이번 작품에서 물오른 연출력을 보여준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시간과 장소, 돈 액수 등 실제 사건 개요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다만 부부의 개인적 사연과 주변 정황은 극적 허구를 보태 재구성했다.

영화 중심은 크게 두 축이다. 주인공 ‘송정연’(전도연 분)이 남편 후배에게 속아 프랑스행 비행기에 탄 후 영문도 모른 채 타국 경찰에 잡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남편과 딸을 그리는 애타는 사연이 하나다. 또 다른 축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곤경에 빠진 재외국민을 외면한 한국 대사관과 외교통상부의 무능하고 비열한 행태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극중 주프랑스 한국 총영사와 대사관 관료들은 국회의원 등 고위인사의 방문에 맞춰 식당 예약을 하느라 주인공의 딱한 처지를 ‘나 몰라’라 한다. 거듭되는 남편의 호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가 하면, 통역을 구해달라는 여인의 편지를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마약 운반 주범의 한국 재판 결과를 프랑스 법원에 번역, 송부하기만 하면 주인공이 쉽게 재판을 받고 풀려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외교통상부의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아 서류는 결국 전달되지 못한다. 분통이 터지고 욕이 절로 나온다.

장씨 사연은 2006년 한 TV 다큐멘터리로 방영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현지 대사관 및 외교통상부가 부정적으로 다뤄졌으며, 프로그램 방영 직후 외교통상부는 방송 내용과 달리 장씨를 적극 지원했다고 반박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여인의 사연이 애절하고 극중 정부의 처사도 열불 날 일이지만, 영화가 관객으로부터 자아낼 만한 개인적 감상도 크다. 내가 지금 누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누구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다는 것.

추운 겨울, 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일상과 곁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주간동아 917호 (p68~68)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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