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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회적 책임 없이 스타 되겠다고?

아이들 우상 연예인 잇단 ‘사회적 물의’…왕관을 쓰려면 무게를 견뎌야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사회적 책임 없이 스타 되겠다고?

사회적 책임 없이 스타 되겠다고?

불법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이수근이 12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참석하려고 출석하고 있다.

“아버지는 배우, 가수를 통틀어 딴따라라 불렀고,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딴따라를 자기만 못한 유일한 직업으로 알고 경멸하는 버릇이 있었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배반의 여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딴따라’는 연예인을 얕잡아 부르는 비속어고, 이 소설에서 ‘딴따라’를 경멸하는 아버지의 직업은 빌딩 수위다. 그런데 이 ‘딴따라’가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가진 ‘공인(公人)’이라 한다면 이 소설 속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수 성시경은 “연예인은 광대일 뿐 공인이 아니다”라는 지론을 피력한 바 있다. 무슨 잘못만 하면 심하게 매도되는 연예인은, 성시경 처지에서 보면 불쌍한 직업이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른 후 대중 앞에 선 연예인은 정작 딴소리를 한다.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키고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킨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이는 사실 연예인 스스로가 자신을 ‘공인’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말한다.

광대 혹은 공인의 모습

연예인은 공인인가, 아니면 성시경 말대로 그저 즐거움이나 주는 광대일 뿐인가. 전자라면 그 지위에서 나오는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공개적 활동은 물론, 사생활의 상당 부분이 대중 감시와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그 강도 또한 일반인보다 엄중할 수 있다는 점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후자라면 달라진다.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지나친 관심과 비판은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이 될 개연성이 높고, 대중의 비난은 연예인이 가진 행복추구권을 방해하는 새디스트적 행위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최근 연예인 도박사건이 검찰에 적발되면서 당사자인 연예인 8명은 언론과 대중의 십자포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 앤디, 공기탁, 양세형, 붐 등 대체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휴대전화로 속칭 ‘맞대기’라는 불법 사설 스포츠 도박을 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연예병사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도박을 했다고 한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십억 원이 도박자금으로 쓰였다. 심지어 도박 수사 경찰관에게 룸살롱 접대를 했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했다.

대중이 이들을 맹공하는 핵심에는 ‘공인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렸다. 대중은 연예인을 공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법원도 도박, 마약, 명예훼손 사건 같은 판례에서 연예인을 공인으로 보고 있다. 공인은 공직자와 공적 인물(public figure)로 구분하는데, 이 공적 인물에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celebrity)도 포함돼 있다.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문화적 상징 등을 고려하면 일리 있는 말이다.

물론 ‘공인’이란 사전적 의미대로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연예인은 공무원처럼 국가기관에서 일하지 않고 단지 연예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한 노동자라는 점, 또 사익을 추구하는 직업인 만큼 공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공인 범위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이다. ‘딴따라’라고 무시받던 연예인의 지위는 대중문화 산업의 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수직 상승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 상당수가 연예 관련 뉴스들이며, 실시간 검색어 랭킹도 연예인 관련 소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예인의 말 한 마디가 정치인의 말 한 마디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가 담론을 형성한다. 이런 영향력을 고려하고 성시경의 일리 있는 주장도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면,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는 반공반사(半公半私)라는 특수한 처지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중은 똑같은 일을 저질러도 완전한 공인인 정치인보다 연예인에 더 큰 비난을 던진다. 상대적 약자인 연예인에 대한 비난이 즉각적인 반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모비스가 최근 진행하는 사회공헌 광고 가운데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는 게 있다. 이 광고 속 내레이션처럼 우리의 유년 시절에는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가 정말 많았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가수나 영화배우 등 ‘연예인’을 꿈꾸며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한다. 시대가 그만큼 변한 것이다. 실제로 초중고교생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거의 모든 설문조사에서 연예인은 상위 5위 안에 드는 직업이 됐다. ‘슈퍼스타K’ 등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청소년이 구름처럼 몰리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적 책임 없이 스타 되겠다고?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은 배우 박시연, 이승연, 장미인애(왼쪽부터).

10월 중순 국회인권포럼이 주최한 ‘연예인 지망생 인권실태 및 보호방안’에 대한 세미나 발표자료에 따르면, 국내 연예매니지먼트사는 1000개, 연예인 지망생은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연예인은 이 시대 아이들의 우상이며, 아이들은 연예인 워너비(wannabe)다.

드라마나 공연장에서 우상이 몸에 걸친 모든 것이 그다음 날 순식간에 모방된다.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동까지도 모방된다. 예를 들어 배우 이은주와 최진실의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를 낳아 실제로 모방 자살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던 가수 서태지가 ‘컴백홈(Come Back Home)’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자 가출했던 청소년들의 귀가가 늘었다는 통계도 있었다.

우리의 일그러진 스타

이는 연예인, 특히 최고 스타의 사회적 행동이 대중, 그중에서도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연예인에게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우리나라 연예산업은 케이팝(K-pop)을 중심으로 한 한류열풍으로 글로벌화돼 있다. 연예인은 이제 단순히 외화를 버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예인, 그중에서도 스타는 일종의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이 연예인에게 사회적 책임이라는 고삐를 채우고자 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우리는 일그러진 스타 모습을 언론을 통해 너무 빈번하게 접한다. 도박사건만 해도 그렇다. 김용만은 얌전했다. 신정환이 원정 도박 사실을 속이면서 해외 도피까지 하는 바람에 얼마나 떠들썩했는가. 이승연과 박시연 등 톱스타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으로 또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한국적 상황에서 병역비리는 가장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법으로 군대를 면제받거나 공익근무로 빠진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연예병사의 특권 의식과 국방부의 관리 소홀이 불러온 일탈로 연예병사 폐지라는 극약처방도 내려졌다. 탈세와 땅 투기 의혹에 휘말려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강호동과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은 고영욱 사건은 또 어떤가.

연예인의 사회적 물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 린지 로언은 음주운전과 절도죄 등으로 시체검시소에서 시신의 피와 내장을 닦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런 범죄나 사회적 물의는 일반인도 수시로 범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비난 강도가 유독 센 이유는 연예인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으로 그 자리에 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의 범죄와 무책임은 그들을 롤 모델로 삼은 청소년이나 대중의 윤리의식 약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인의 범죄, 혹은 사회적 무책임은 연예인 개인만의 인성과 도덕성에서 기인한 문제는 아니다. 연예계의 스타 배출과 관리 시스템에도 근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연예매니지먼트사는 춤과 노래, 연기 등 기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연습생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후 그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에 급급하다. 또 일단 상품을 내놓으면 대중 기호가 바뀌기 전 그동안 투자한 돈을 단기간에 회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러한 과정에 연예인이 지녀야 할 인성과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자리 잡을 리 만무하다. 어디 그뿐인가. 어린 연예인의 노동권과 건강권, 학습권을 무시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대중의 사생활 침해 등으로 쌓이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현명한 방법도 그들이 충분히 배웠을 리 없다.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 의식은 소속사의 사회적 책임 수준과 일정 부분 연동돼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이 그렇지 않는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보다 사회적 책임 수준이 더 높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매니지먼트사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사회적 책임을 촉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제정이나 정보공개 촉구, 평가 등 전반적인 인식 확대 및 실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연예인의 공적 활동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을 적용하는 지표를 개발하는 일도 고려할 만하다. 긍정적 측면(기부, 자선공연, 자원봉사, 공익광고 무상 출연, 비영리기관 홍보대사 등)과 부정적 측면(표절, 병역면제, 도박, 마약 등 사회적 물의와 관련한 행위 여부, 대부업 광고 출연 등)을 동시에 고려해 연예인의 공적활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 노력을 평가함으로써 그 인식을 확산할 수도 있다. 이는 팬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관심을 연예인의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옮겨가게 하는 의미 있는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셀란트로피(celebrity+philanthropy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고, 유명 연예인의 자선사업 활동을 추적하는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대중은 영원한 별을 원한다

최근 한국 연예계 별들의 몰락을 보노라면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은 별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리라. 그러면 이상도 잃을 것이다.’ 그런 시대가 오면 우리는 미학자 루카치의 다음 문구를 떠올리며 한탄할지도 모른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대중에게는 별이 필요하다. 수시로 뜨고 지는 별이 아닌, 영원히 지지 않는 별. 그 별은 대중이 준 힘을 가지고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는 별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 홍보대사가 돼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살다 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오드리 헵번. 그는 그런 별 가운데 하나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고 했던가. 스타가 되려는 자,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견뎌라.



주간동아 917호 (p56~58)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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