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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 맨해튼

마천루 붉은 노을… ‘칵테일의 여왕’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뇌쇄적인 유혹과 매혹적 일탈 그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마천루 붉은 노을… ‘칵테일의 여왕’

마천루 붉은 노을… ‘칵테일의 여왕’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은 ‘위대한 유산’‘해리포터와 불의 잔’‘페르시아의 왕자’ 등을 연출한 마이크 뉴얼 감독의 2003년 작품으로, 한국에선 2004년 개봉했다. 배경은 1953년 가을 미국 동부 명문인 웰슬리대다. 영화는 서부 캘리포니아 출신인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 분)이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학으로 손꼽히는 웰슬리대에 미술사 강사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진취적 성격의 캐서린은 동료 교수인 낸시 집에서 하숙 하며 캠퍼스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 유력 가문 출신들로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보수적 분위기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반길 마음이 없다. 이 때문에 그녀는 첫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한다. 이후 영화는 캐서린과 학생 4명 사이에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부유한 집안의 베티, 총명한 학생대표 조앤, 성적으로 개방된 지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코니가 그들이다. 이 중 베티는 가장 보수적인 성격으로 사사건건 캐서린과 맞서는 한편, 다가온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젤만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캐서린에 대해 은근한 호감을 갖는다. 조앤은 졸업 후 진로에 관해 고민한다. 최고 성적의 학생으로서 로스쿨 지원도 하고 싶고 사랑하는 토니와 결혼해 가정을 꾸미고도 싶어 한다. 이런 그녀에게 캐서린은 얼마든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며 진학을 독려한다. 코니 역시 원하던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런 가운데 캐서린의 진보적 미술사 강의는 계속된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남에게 종속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고 강조하지만 총장으로부터 수업 내용이 급진적이라며 당분간 강의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베티를 제외한 학생들은 서서히 캐서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고 비밀 동아리 모임에 그녀를 초대하기까지 한다.

꼭지 달린 체리로 장식



마천루 붉은 노을… ‘칵테일의 여왕’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칵테일 ‘마티니’(왼쪽)와 ‘맨해튼’이 등장하는 장면.

자신의 불행한 신혼생활에도 베티만은 캐서린을 계속 비난한다. 전통적 결혼관을 무시하고 현모양처로서의 고귀한 사회적 책무를 방해하려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베티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가문의 명예와 체면을 위해 계속 참으라고 한다. 그러자 베티는 어머니에게 ‘모나리자’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에서 여인은 웃고 있지만 그녀가 과연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영화 제목이 왜 ‘모나리자 스마일’인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연 캐서린과 네 학생은 각자에게 닥친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영화 배경이 되는 웰슬리대는 실제 있는 명문 여대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학교 측 공식반응은 영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보수적 교풍과는 관계없이 많은 음주 장면이 등장한다. 칵테일도 여러 종류가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흔히 칵테일의 제왕이라 부르는 ‘마티니’다. 학교 내 비밀 동아리 모임에 캐서린이 초대됐을 때 지젤이 마시던 칵테일이 바로 그것인데, 올리브 2개를 넣은 마티니가 그 특유의 잔 모양과 함께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게 등장하는 칵테일은 역시 ‘맨해튼(Manhattan)’이다. 칵테일 맨해튼은 베티의 결혼 피로연장에서 그 모습을 보인다. 파티 도중 캐서린의 동료교수 낸시가 흥에 겨워 바텐더에게 맨해튼을 주문한다. 낸시는 술을 마시며 바텐더를 향해 “맨해튼 칵테일도 잘 만들고 죽은 애인과 닮아서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술에 취한 후에는 “내 애인 발치에도 따라오지 못한다”며 바텐더에게 욕설을 해댄다.

낸시가 취기를 빌려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발산했던 맨해튼은 과연 어떤 술일까. 맨해튼은 위스키를 베이스로 베르무트와 비터스를 섞은 뒤 잘 저어서 만든 칵테일이다. 위스키는 미국 또는 캐나다산을 사용하는 게 전통이며, 베르무트는 스위트 베르무트를 사용한다. 간혹 스위트 베르무트 대신 드라이 베르무트를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드라이 맨해튼’이라고 부른다.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이 창시자?

마천루 붉은 노을… ‘칵테일의 여왕’

영화 ‘모나리지 스마일’의 포스터와 영화 속 ‘맨해튼’.

비터스도 다양한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앙고스투라 비터스’를 쓴다. 앙고스투라 비터스는 서인도제도에 위치한 영연방 독립국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앙고스투라사에서 생산하는 제품명인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비터스다. 맨해튼의 색깔은 영화에서처럼 매혹적인 붉은색이다. 서빙은 칵테일 글라스에 담아서 하고, 장식으로 꼭지가 그대로 달린 체리를 잔 안에 넣는다.

이 모습 또한 영화에서 잘 나타난다. 맨해튼이 처음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영국 수상 처칠의 어머니인 제니 제롬(1854~1921)과 관련한 것이다. 그녀는 미국 뉴욕 주 태생으로 영국 귀족 랜돌프 처칠 경과 결혼했기 때문에 흔히 랜돌프 처칠 부인으로 불렸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1874년 미국 뉴욕 맨해튼 클럽에서 당시 뉴욕 주지사 선거에 당선된 새뮤얼 틸든(1814~1886)을 위해 연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바텐더에게 부탁해 처음 만든 것이 바로 맨해튼 칵테일이라는 설이다.

연회의 성공에 힘입어 이 칵테일을 찾는 사람이 점차 늘면서 그 이름도 연회가 열렸던 장소를 따라 맨해튼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 하지만 한 신빙성 있는 조사에 의하면 당시 처칠 어머니는 임신 중인 상태로 영국에 있었고 곧 처칠을 출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 설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일 공산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맨해튼은 그 색깔과 술잔에 들어 있는 장식 체리 때문에 지는 석양에 빗대어 표현된다. 미국 사람들은 이 칵테일에 대해 ‘맨해튼의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지는 태양을 보는 것과 같다’고 포장하기도 한다. 또 이런 아름다운 모양과 훌륭한 맛 때문에 칵테일의 제왕이라 부르는 마티니에 대비해 ‘칵테일의 여왕’으로 부르기도 한다.

맨해튼은 알코올 도수가 강한 칵테일로도 알려졌다. 영화에서 낸시가 맨해튼 한 잔을 마시고 술에 취해 바텐더에게 술주정을 하는 장면도 맨해튼의 이런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맨해튼을 ‘칵테일의 여왕’이 아니라 진정한 왕이라고 부르며 그 남성미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웬만한 애주가라면 저녁노을이 지고 도시 건물들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매혹적인 자태의 이 칵테일을 보게 되노라면 그 뇌쇄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간동아 917호 (p76~77)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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