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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우리꽃 산책

겨울 나무에 옛이야기 주렁주렁

인동 꽃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겨울 나무에 옛이야기 주렁주렁

겨울 나무에 옛이야기 주렁주렁
한때 ‘인동(忍冬)’이란 꽃 이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졌던 시절이 있다. 인동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 향기를 온 사방에 퍼뜨리는 식물인데 왜 참을 ‘인(忍)’, 겨울 ‘동(冬)’, 풀이하면 ‘겨울을 이겨낸다’는 이름을 가지게 된 걸까.

오래전 겨울, 전남 어느 들판을 기웃거리던 나는 갑자기 날씨가 나빠진 상황에서 그 이름의 참된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 눈발마저 흩날리기 시작한 그 들판 가운데 인동 잎이 파랗게 살아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상록수처럼 항상 푸른 모습만 보여줬더라면 겨울을 견뎌내고 꽃을 피워내는, 진정으로 장한 ‘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인동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며 우리 선조와 많은 이야기를 엮어낸 나무다. 인동초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인동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인동 꽃은 ‘금은화’라고도 하는데, 꽃 색깔에서 비롯된 재미난 이름이다. 옛 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며 생약명이기도 한다.

인동 꽃을 보면 흰 꽃과 노란 꽃이 한 나무에서, 그것도 바로 나란히 붙어서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란색 꽃을 일러 금화, 흰 꽃을 두고 은화라고 해 금은화라고 부른다. 이름이 이러하니 인동이 길조를 상징하는 식물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실 인동은 흰색 꽃과 노란색 꽃이 각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흰 꽃이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 나무에서 흰 꽃이 많이 보이면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노란 꽃이 많이 달렸으면 꽃이 지는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꽃 색깔만 봐도 어느 꽃에 꿀과 향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짐작할 수 있다. 벌 처지에서 보면 어느 꽃에 가야 할지를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셈이다. 참으로 신비로운 자연 이치다.

옛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선조가 시집간 정숙옹주의 아이들이 감기에 걸린 것을 걱정해 “인동초를 달여 마셔라”고 조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에는 인동 잎을 비벼 종기에 붙이기도 하고, 줄기나 잎을 달여 해독제로 쓰거나 화상 부위에 붙여 새살을 돋게 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등장한다. 인동 삶은 물에 목욕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동 덩굴과 잎에 생감초를 넣고 끓인 물을 ‘인동주’라 부르며 약으로 썼고, 신장병을 고치려고 인동 꽃으로 빚은 술을 복용했다고 한다. 인동물 목욕이나 인동술보다 더 운치 있는 게 인동차다. 노랗게 변한 꽃잎을 따다 밝은 그늘에 말려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향기나 풍류가 재스민차 부럽지 않다.



인동은 동아시아가 원산지며, 현재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퍼져 있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인동이나 그 집안식물들은 고대 문화예술에서 한때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고대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등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많은 곳에서 건축이나 공예의 장식문양으로 인동 꽃을 썼다는 점이다. 이 조각 기법이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평안남도 강서지방 고구려 중묘 벽화에도, 중화지역 진파리 1호 고분 벽화에도 인동 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인동당초평와당이라 해서 기와에 인동 꽃 문양이 있는 등 인동 꽃 무늬를 아로새긴 기와나 청자도 볼 수 있다.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알면 알수록 인동 꽃의 매력은 더해간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향긋한 인동차로 몸과 마음을 녹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연말이다.



주간동아 917호 (p80~80)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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