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2013.12.16

첫 경기 러시아 잡으면 16강 예약

한국 | 초반 분위기 싸움 무엇보다 중요…러시아·알제리·벨기에 모두 해볼 만한 상대

  • 남장현 스포츠동아 스포츠2부 기자 yoshike3@donga.com

    입력2013-12-16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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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경기 러시아 잡으면 16강 예약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마냥 낙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한국 축구가 역대 월드컵 최고의 조 추첨 결과를 받아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12월 7일(이하 한국 시간) 브라질 휴양도시 코스타 두 사우이페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 벨기에와 22위 러시아, 26위 알제리와 예선 H조로 묶였다. 한국은 FIFA 순위가 54위에 불과하지만 모든 국가와 겨뤄볼 만하다.

    한국은 내년 6월 17일 오전 7시 아마존 남부 도시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러시아와 조별리그 1차전을 갖고, 22일 오전 4시 포르투 알레그레의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우에서 알제리와 2차전을 치른다. 벨기에와의3차전은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펼쳐진다.

    홍명보(44)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월드컵에서 쉬운 조는 없다. (경험상) 월드컵은 준비 과정에 의해 결과가 달라진다.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제 대회를 앞둘 때면 항상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1차전에 올인하라!’ 전혀 생뚱맞은 소리는 아니다. 사실 1차전에서 이기면 예선 통과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분 좋은 전례도 꽤 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폴란드를 제압하며 4강 신화의 초석을 다졌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그리스를 완파함으로써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위업을 작성할 수 있었다.



    축구 경기도 일종의 분위기 싸움이라는 점에서 초반 기세의 중요성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한국은 월드컵 무대에서는 어디까지나 ‘다크호스’에 불과하다. 개최국 브라질이나 전통의 남미 강호 아르헨티나, 세계 최강 스페인, ‘전차군단’ 독일은 대회 종료까지 흐름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조별리그에서 큰 힘을 쏟을 수 없다.

    가자, 한국 축구 조 1위로

    그에 반해 우리는 토너먼트 라운드 이후 성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결국 1차전부터 총력전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러시아를 잡으면 한국은 탄력을 받는다. 그 여세를 몰아 알제리까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마지막 벨기에전을 더 여유롭게 치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상대가 만만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심적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벨기에전을 수월히 소화한다면 16강, 더 나아가 8강 이상도 노려볼 만한 상황이다.

    축구계에서는 16강에 여유 있게 진입하려면 승점 5 이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승점 5를 확보하려면 최소 한 번 이기고 두 번 비기는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이는 2승1패(승점 6)보다 낫다. 한 팀이 3전 전패로 몰리고 나머지 3팀이 물고 물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승점 관리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은 2승1패를 하고도 골득실에서 뒤져 조 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서일까.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 이후 홍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의 행보만 봐도 한국이 1~2차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다. 대회 기간 내내 베이스캠프로 활용할 이구아수를 둘러본 홍 감독 일행의 두 번째 행선지가 알제리전이 열릴 포르투 알레그레였고,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이 바로 쿠이아바였다. 상파울루로 이동하기 전 1~2차전에서 사실상 승부가 가려진다고 봤기 때문 아닐까.

    월드컵에선 톱시드 국가를 반드시 만나게 돼 있다. 그래서 ‘기왕이면’이라는 단서가 달렸고, 몇몇 국가가 거론됐다. 이 중 하마평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국가가 벨기에와 스위스였다. 아쉽게도 스위스는 다른 조로 이동했지만 벨기에를 만났다. 벨기에가 브라질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탔다고는 하지만, 젊은 선수가 주축인 만큼 큰 대회 경험과 관록이 많은 우리가 완전히 불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월드컵도 일종의 흐름이다. 벨기에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후 10여 년 가까이 젊은 선수를 육성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그 결실이 이번에 맺어지고 있는 거다. 하지만 한국은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꾸준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간 쌓은 경험이 우리에게 정말 유리하게 적용할 것”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여기에 홈 이점도 피했다. 브라질 팀이 특히 두려운 이유는 그들이 갖춘 전력뿐 아니라 외적 요소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광적인 홈 관중에 휩싸이면 큰 어려움을 겪을 건 당연지사. 여기서 브라질을 피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남미 국가와의 승부를 최소화하는 일이었다. 만약 남미 국가와 같은 조에서 경합한다면 브라질 못지않은 홈 이점을 가진 그들에 비해 한국은 불리한 처지일 수밖에 없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3년 전 우리가 월드컵에 나갔을 때 상당히 걱정했던 상대는 나이지리아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지리아에게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사실상 안방과 다름없었다. 먼 원정에 동참해준 붉은악마와 현지 교민을 제외하면 모두가 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홍명보호는 남미 국가도 피했다. 최근 남미 신흥강호로 떠오른 콜롬비아를 예선에서 만나게 된 동아시아 라이벌 일본은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데, 이와도 처지가 다른 것이다. 알제리는 물론 벨기에와 러시아도 브라질에서 한국처럼 완전히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모든 국가가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건 우리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진 않는다.

    이구아수에 베이스캠프 설치

    대표팀은 월드컵 기간 중 이구아수에 차려질 베이스캠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남아공월드컵에서처럼 우리 대표선수단은 베이스캠프에 머물다 경기 이틀 전 경기를 치를 도시로 이동했다 되돌아오는 스케줄을 택했다. 일반 축구 팬과 관광객, 취재진과 달리 월드컵 출전 32개국 선수단은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마련해준 전세기와 전용 공항 창구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남미에서 이구아수의 입지 조건은 아주 좋다. 태극전사들이 메인 숙소로 활용할 버번 호텔에서 훈련장까지 이동시간은 5분여에 불과하다. 도보로도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다. 여기에 공항도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대표팀은 내년 1월 중순 약 일주일간 이구아수에 머물면서 1차 현지 적응을 진행한다.

    허 부회장은 “현지 적응이 아주 중요하다. 최종 엔트리에 발탁될 만한 많은 선수가 현지 분위기를 익히고 먼저 잔디를 밟아보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 상대국 전력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유럽까지 이동해 상대국의 A매치를 지켜보며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 부회장이 대표팀을 맡았던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1월 국내파 선수 위주로 남아공 현지에서 보름 이상 머물며 담금질했고, 월드컵 개막 직전인 5월에는 남아공 고지대 적응을 겸해 환경이 가장 비슷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인근 소도시 노이슈티프트에 머물며 마지막 전력 끌어올리기에 임했다.

    다행스럽게도 브라질은 남아공과 달리 큰 지역적 변수가 없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대 등 선수의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없을 뿐 아니라, 베이스캠프에서 경기장까지 이동거리도 비교적 짧다. 그나마 가장 먼 지역인 쿠이아바가 직선거리로 1120km 떨어져 비행시간이 2시간 남짓 소요된다. 포르투 알레그레와 상파울루는 각각 600km, 830km가량 떨어진 정도다. 이는 결국 선수들의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조 추첨이 끝난 뒤 FIFA 관계자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조 편성 결과가 좋다는 게 아닌, 최상의 입지를 선택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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