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2013.12.02

“내일은…희망의 해가 뜬다”

록밴드 블루잉크 의정부교도소 위문 공연…재소자 500여 명 마음 열고 함께 즐겨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12-02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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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희망의 해가 뜬다”
    11월 22일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록밴드 블루잉크의 공연이 열렸다. 2010년 결성한 블루잉크는 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월간 ‘신동아’ 및 ‘주간동아’ 기자들과 인디 실력자들이 모인 실력파 록밴드다. 지난해 겨울에는 서울남부교도소,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위문공연을 했고 올봄에는 서울환경영화제 축하무대에도 섰다.

    의정부교도소에는 여성 재소자 100여 명, 미결수 600여 명을 비롯해 총 1300여 명이 수감돼 있다. 사형시설이 없어 강력범보다 비교적 형기가 짧은 경제사범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공연 당일에는 수형자 가족들이 교도소를 방문, 함께 게임하고 스킨십을 즐기는 ‘수형자 가족사랑 캠프’가 열려 수형자 5명이 가족과 만났다.

    차가운 교도소 달군 화끈한 공연

    이날 오후 2시, 의정부교도소 재소자 500여 명이 대강당에 모였다. 푸른 수의를 입은 재소자들은 기다란 의자 한 줄에 5명씩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또는 개인 연주자가 교도소를 찾는 건 흔한 일이지만 록밴드의 위문공연은 처음이라 그런지 오히려 재소자들이 긴장한 듯했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 출신 백재현(뮤지컬기획사 ‘쇼’ 대표) 씨가 무대에 오르자 잠시 박수가 터졌지만 다시 침묵. 블루잉크가 첫 곡으로 ‘박하사탕’(YB)을 부르는데도 다들 어리둥절해했다. 사회자가 박수를 유도해도 그때뿐, 대부분 멀뚱멀뚱 무대만 바라봤다.

    이들의 마음을 연 건 초대가수 서문탁과 김소정이었다. 서문탁이 금발로 염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무대에 오르자 재소자들은 환호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어떤 인사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긴장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서문탁은 데뷔 15년 차 베테랑 가수답게 여유롭게 무대를 주도했다. 재소자들이 히트곡 ‘사슬’을 요청하자 “‘너라는 감옥에 갇혀’라는 가사 때문에 부르기 곤란하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서문탁은 3곡을 부를 예정이었지만, 즉석 신청곡 2곡을 포함해 모두 5곡을 부르며 객석을 한껏 달궈놓았다.



    이어 무대에 오른 ‘슈퍼스타K 2’ 출신의 가수 김소정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데뷔곡 ‘땀인지 눈물인지’에 맞춰 선보인 깜찍한 안무에 재소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어 임상아의 ‘뮤지컬’을 부르며 무대 아래로 내려가 재소자들의 손을 잡아주자 객석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통통하고 건장한 체구로 ‘(다이어트 전) 옛날 백재현’이라는 별명을 얻은 재소자는 무대로 나와 김소정과 함께 커플댄스를 추기도 했다.

    화끈한 분위기는 블루잉크의 본격 공연에서도 이어졌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들국화)와 ‘제발’(들국화/ 시나위 편곡),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박완규 편곡) 등 블루잉크가 선보인 서정적이고 역동적인 선율에 일부 재소자는 매료된 듯 눈을 감고 음미했다. 사회자가 “(여자 게스트와 비교해) 볼거리가 없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자 블루잉크는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라며 화답했다. 재소자들은 저마다 사랑하는, 하지만 당장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듯싶었다.

    공연 하이라이트는 서울 은평구 진관감리교회 6학년 어린이 5명이 선보인 ‘빠빠빠’ 공연이었다. 어린이들은 ‘빠빠빠’를 부른 ‘크레용팝’처럼 흰 헬멧을 머리에 쓰고, 5명이 번갈아 뛰어오르는 ‘직렬 5기통 춤’을 선보였다. 재소자들은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어린이들을 바라봤고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어린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아저씨들, 힘내고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남긴 뒤 무대 밖으로 총총 사라졌다.

    “내일은…희망의 해가 뜬다”

    의정부교도소 재소자 500여 명 앞에서 공연하는 록밴드 블루잉크.

    “사회에 나와서 다시 놀아보자”

    이어진 블루잉크의 2부 공연은 ‘오리 날다’(체리필터),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유럽) 등 경쾌한 음악으로 채워졌다. 초반의 어색한 분위기는 이미 사라졌다. 재소자들은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공연에 참여했다. 사회자와 재소자들은 자연스레 농담을 주고받았고, 몇몇 재소자는 종이로 플래카드를 급조해 힘껏 흔들기도 했다.

    마지막 앙코르 곡 ‘사노라면’(들국화/ 김장훈 편곡/ 블루잉크 재편곡)은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한목소리로 불렀다. 재소자들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내일은 해가 뜬다’를 목 놓아 외쳤다.

    사실 아무리 위문공연이라도 재소자 앞에서 노래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 재소자들이 대강당에 들어설 때 몇몇 블루잉크 멤버는 긴장한 듯 몸을 움츠렸다. 객원 키보디스트 서은정(26) 씨는 “처음 공연을 결심했을 땐 겁이 났고 ‘죄를 지은 범죄자 앞에서 웃으며 연주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그냥 다 같은 사람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재능기부 형태로 사회를 맡은 백재현 씨는 “범죄자들은 죗값을 치르고 있고, 알고 보면 누구보다 착한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내가 힐링을 한 기분”이라고 밝혔다.

    블루잉크의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장 맨 앞줄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김명철 의정부교도소 소장은 “그간 어떤 위문공연보다 반응이 좋았다”며 “특히 재소자들과 공연자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갔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막이 내리고 작은 먹을거리 선물을 받아 공연장을 떠나는 재소자들은 여전히 공연의 열기에 빠져 있는 듯, 무대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회에 나와서 다시 놀아보자”는 블루잉크의 인사말에 화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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