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4

2013.11.25

숲의 초록요정 다시 살아났다

광릉요강꽃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11-25 09: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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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꽃은 무엇일까. 제주 한라산 서북 벽에서만 붙어사는 돌매화? 멸절 직전에 놓인 자생 풍란 혹은 나도풍란? 이에 못지않은 것이 바로 광릉요강꽃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독특한 광릉요강꽃. 이 꽃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난초과에서도 희귀하고 까다로우며 독특한 모양으로 유명한 시프리페듐(Cypripedium)속에 포함된다.

    큼직한 잎(10~20cm)이 마치 치맛자락을 펼쳐놓은 듯하다. 잎자루도 없이 줄기에 마주보고 두 장씩 달려 시원하고 보기에도 좋다. 이름을 보고 짐작했겠지만 국립수목원이 자리한 광릉 숲에서 처음 발견됐다. 거기에 봄에 피는 꽃은 더욱 특별하다. 줄기 끝에 길이가 5~8cm 될 정도로 큼직한 꽃송이가 고개를 숙인 듯 또는 옆을 보는 듯 한 송이씩 달린다.

    ‘요강’은 순판(난초과 꽃잎의 아랫부분이 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말)이 마치 부풀어 오른 주머니 또는 항아리 모양 같다고 해서 옛 어른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귀하고 우아한 꽃에 요강이라니,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도 혹 있겠지만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여기면 즐거워진다.

    꽃 빛깔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독특하다. 꽃에서는 보기 어려운 연녹색, 갈색, 흰색, 연분홍색이 함께 있다. 모양이 신기한 데다 꽃이 희귀하기까지 하니 그 가치가 한층 높다 하겠다.

    이 꽃을 이리도 보기 힘들게 된 것은 숲의 여건 변화도 한 이유이지만, 그보다는 희귀 난초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남획이 가장 큰 원인이다. 푼돈에 양심을 판 사람들, 희귀한 난초면 반드시 자신이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집증적 수집가들이 광릉요강꽃을 자생지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로 내몰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광릉요강꽃을 한두 포기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국립수목원 연구자들이 열심히 자생지를 찾아내고 보전해 지금은 아름다운 포기가 곳곳에서 살아나고 있다. 최근에는 싹이 터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기까지 1년간의 기록을 미속촬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이 경이로운 모습은 방송을 타기도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보람이고 감동이다.

    이런저런 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지만, 이 땅 한구석엔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인가. 숲을 숲답게 만드는 ‘초록요정’ 광릉요강꽃이 오래도록 우리 땅에서 우리 모두와 함께 살아가길 소망한다.

    숲의 초록요정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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