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2013.11.18

중독 과정 논의해야 문제 해결

부모-자식, 여야 등 갈려 뜨거운 찬반 논쟁…상대 견해도 귀담아 들어야

  • 권건호 전자신문 통신방송사업부 기자 wingh1@etnews.com

    입력2013-11-18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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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독 과정 논의해야 문제 해결

    게임중독법을 비판한 전병헌 민주당 의원.

    인터넷 게임을 도박, 마약, 알코올과 함께 4대 중독 유발 물질로 취급하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게임중독법)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여당과 야당, 국회와 산업계 등으로 갈려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이름이 오르내리고, 온라인상에서도 찬반 논쟁이 뜨겁다. 게임중독법을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은 참여자가 25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법안을 찬성하는 측에서도 학부모단체 등 1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지지성명을 냈다. 야당 원내대표가 법안을 비난하자, 법안을 발의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이를 다시 반박했다. 정부까지 나서서 법안이 과도하다며 게임은 제외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법안에 대한 새로운 의견이나 방침이 나올 때마다 게임업체 주가도 출렁인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방증이다.

    게임이 중독 유발 물질?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4대 중독 유발 물질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5년마다 중독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기초로 중독 예방·치료와 방지 및 완화 정책의 기본 목표, 추진 방향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해당 산업의 광고와 판촉에 제한을 둘 수 있으며 생산, 유통, 판매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인터넷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를 중독 유발 물질로 규정한 부분이다. 게임업계와 게임 이용자들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도박, 마약, 알코올 중독과 게임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신 의원 측은 의사로서 게임중독을 치료한 경험과 주변 사례 등에 비춰 게임중독을 관리해야 한다는 처지다. 특히 중독 예방을 일원화하자는 차원이지 업계 우려처럼 산업을 위축시키기 위한 법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논란은 급속히 확산됐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게임업계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협회)는 게임 규제안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중독법을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온라인 서명운동은 한때 협회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서명 참여자도 급속히 늘면서 현재 25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도 성명을 통해 ‘게임중독이라는 명칭은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에 대한 불명예이며, 문화산업과 인터넷을 통제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발판 만들기’라고 비판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는 조직적인 반대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반대 분위기가 거세지자 이번엔 학부모단체에서 게임중독법을 찬성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아이건강국민연대는 아이들의 게임중독을 막으려면 국가적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오프라인 지지서명에 나섰다.

    중독 과정 논의해야 문제 해결
    정치권도 공방에 가세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 10일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닷컴’에 ‘국회의원 전병헌입니다’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게임중독법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전 의원은 “겉으로는 육성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규제의 칼을 꺼내드는 ‘꼰대적’ 발상으로 인해 게임산업 종사자뿐 아니라 게임 팬들이 뜨겁게 제도권에 항의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며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으로 디지털 시대의 게임문화를 과도하게 몰이해하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하고 규제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은 교육문화위원회, 미래방통위원회 상임위 활동을 통해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의원의 공격에 법안 발의자인 신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반박했다. 신 의원은 11월 11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전병헌 의원이 ‘꼰대적 발상’이라고 한 것은 명백히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발언”이라며 “게임중독, 알코올중독, 도박중독에 빠져 고통받는 수백만 가족을 꼰대라고 폄훼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취지를 왜곡하고 법안에 들어 있지 않은 내용까지 꺼내 비난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 “중독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정의 구실이 중요하지만, 개인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이 위협받고 있어 국가의 중독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은 기술에 연결된 사람중독

    중독 과정 논의해야 문제 해결

    게임중독법을 발의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지만, 해결책은 뚜렷하지 않다. 여야 간, 세대 간 갈등만 조장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법안 통과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최근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도 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내놨다.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한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이수명 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법안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중독 물질로 규정한 범위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객관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등 원칙과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돼 게임을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문화부의 견해”라고 밝혔다.

    해결책 없이 논란만 가중되는 이유는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주체들이 모두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뿐 상대 견해를 귀담아듣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분명히 우리 주변에는 게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을 보면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고통 받는다. 따라서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게임중독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독됐다는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에서 중독됐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게임중독에 대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게임중독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가정이나 사회에서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임중독 이전에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의 사회화 과정에 문제가 있고, 이 과정에서 게임에 빠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최근 게임중독법 사태에 대해 일침을 가한 한 게임업체 대표의 말이 흥미롭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게임이 중독적인 이유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 속에 있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며 “싱글게임에는 아무리 중독적 요소를 넣어도 (게임을 하는 사람이) 중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행위중독의 본질은 결국 사람중독”이라면서 “사람은 기술에 의해 연결된 ‘타인과의 관계’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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