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2013.11.18

벌려고 하다 잃으면 노후 치명상

초저금리 시대 투자 1계명은 수익보다 손실에 초점 맞추는 것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3-11-18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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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려고 하다 잃으면 노후 치명상

    지난해 3월 대구를 방문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오른쪽)이 김범일 대구시장을 만나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

    금세기 최고 투자자라 불리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돈을 벌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원칙은 절대로 돈을 잃지 말라, 두 번째 원칙은 첫 번째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라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돈을 따려고 하면 잃을 것이요, 잃지 않으려 하면 딸 것이다.’ 이 두 가지 말의 공통점은 ‘투자할 때는 수익보다 손실에 초점을 맞추라’가 될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펀드 투자를 예로 들어보자. 흔히 증권사나 은행 창구에 가서 펀드에 가입하려고 하면, 판매직원은 대개 최근 수익률이 좋은 상품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펀드 수는 1만 개가 넘는다. 여기서는 편의상 1만 개로 잡자. 만일 올해 수익률 1위 펀드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펀드가 다음 해에도 수익률 1등을 할 가능성은 몇 %일까. 1억분의 1이다. 그다음 해에도 또 1등을 할 가능성은 무려 1조분의 1이다.숫자 6개를 모두 맞혀야 하는 로또복권의 1등 당첨 확률 814만5060분의 1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확률이다. 확률적으로 사고하면, 3년 연속 1등을 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앞의 수치를 더 선호하고, 금융상품 판매직원도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을 선호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리스크는 커진다

    인간에게는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최근에 일어난 일을 앞으로 일어날 일로 해석하는 ‘최근성 편견’이 있다. 부동산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때 가격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갔 듯이 말이다.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금융상품에서 최근 수익률이 좋은 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강한 이유는 ‘효용의 시차성’ 때문이기도 하다.



    TV나 자동차 같은 소비재는 사는 즉시 그 효용을 간파할 수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상품, 그중에서도 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변하는 투자상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효용이 검증된다. 가입 시점의 수익률 기대치가 사뭇 다른 결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인간 심리와 최근성 편견, 그리고 효용의 시차성이 서로 맞물리면서 투자자는 당장 눈앞의 것을 선호하게 된다.

    투자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상대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포함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매춘만큼이나 오래된 직업인 ‘예언가’가 생존할 수 있는 자양분이다. 본질이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간은 때때로, 특히 투자 분야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문제는 그런 실수가 치명적일 때다(개인적으로 2~3년간 수익률이 매우 좋았던 펀드치고 그다음에도 여전히 잘나가는 펀드는 거의 보질 못했다).

    물론 젊고 건강하고 미래가 있는 젊은이에게 치명적 실수는 때때로 성장의 거름이 되기도 한다. 큰 실패 없이 성공한 기업가는 없다. 핵심은 그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퇴직을 앞뒀거나 퇴직한 후의 치명적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시계바늘이 되기도 한다. 은퇴 자산을 운용할 때 손실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실에 초점을 맞출 때 1차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지표가 ‘1년 만기 정기예금’이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은 손실 리스크 없이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돈의 가격이다.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을 내려면 어떤 형태로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금리가 낮아질수록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현재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세금을 제외하면 2.5% 수준이다. 만일 5%의 수익률을 올리려면 단순 계산으로 예금 금리보다 2배의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7%의 수익률을 내려면 3배가량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금리가 낮더라도 정기예금 금리는 근거 없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적정 돈의 가격이다. 리스크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5%의 수익률도 낼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우리는 투자와 인생에서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안전한 공짜 점심은 점차 사라지고, 적은 수익도 노력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벌려고 하다 잃으면 노후 치명상
    변동성이 낮은 곳에 투자하라

    벌려고 하다 잃으면 노후 치명상

    한 은행의 정기예금 광고.

    리스크 관리의 요체는 절대 치명타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저금리·저성장·고령화 시대에는 이것이 모든 투자 판단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금리가 높고 고성장으로 소득이 늘면 치명타를 입어도 열심히 일해서 만회하면 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은퇴를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치명타를 피하려면 버핏의 말처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잃지 않으려면 수익률보다 변동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낮은 변동성과 꾸준함에 베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펀드를 선택할 때는 주가 하락기에 다른 펀드나 시장 하락 폭보다 상대적으로 손실이 덜 난 것을 선택해야 하고, 집을 살 때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월세를 주기 쉬운 것을 골라야 한다.

    만일 당신의 소중한 돈, 그것도 노후에 대비하거나 노후 생활비로 쓸 돈으로 투자할 요량이라면 펀드에 가입하기 전 금융상품 판매직원에게 이렇게 말하라.

    첫째, 이 상품의 변동성을 설명해달라. 특히 시장 변동성이 컸던 연도에 얼마나 덜 빠졌는지를 보여달라(주식형이든 채권형이든 상관없다).

    둘째, 과거 1~2년 수익률이 아니라 짧게는 3년, 5년 이상의 수익률과 변동성, 누적 수익률을 보여달라(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한두 해 수익률이 아니다. 투자 성과는 총누적 수익률로 평가해야 한다).

    셋째, 당신이라면, 이 상품에 가입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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