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1

2013.11.04

권선징악 스토리, 할리우드 액션

앨런 테일러 감독의 ‘토르 : 다크 월드’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1-04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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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징악 스토리, 할리우드 액션
    슈퍼히어로라고 할 때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따위를 당장 떠올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소 30대 이상의 구세대일 개연성이 크다. 20대 이하는 철갑옷 입은 아이언맨과 망치 든 토르, 방패 든 캡틴 아메리카를 떠올린다.

    미국 출판만화회사이자 영화제작사인 마블은 자사가 배출한 영웅, 즉 헐크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위도우, 호크아이, 그리고 토르를 총출동시켜 ‘어벤져스’를 만들었고, 한국 극장가에서도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화 시대를 열었다.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이 냉전 시대의 잔상을 아직 지워내지 못했거나 전 인류적 범죄와의 전쟁에 골몰하는 동안 ‘어벤져스’ 속 영웅들은 시대적 책무나 탄생의 기원 같은 골치 아픈 문제는 간단히 뛰어넘어버리고, 오로지 농담과 유머, 활극의 쾌감에만 집중했다. ‘어벤져스’는 실로 시간과 공간, 텍스트의 ‘혼성’ 시대에 태어난, 완벽하게 21세기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슈퍼히어로 오락영화였다.

    나치 시대에 태어난 미국 수호영웅 캡틴 아메리카, 핵과 유전자 개발 시대에 만들어진 돌연변이 헐크, 첨단 로봇 시대의 천재 과학자이자 군수기업 회장인 아이언맨을 거쳐 북유럽신화 세계로부터 할리우드로 뛰어든 ‘토르’에 이르면 미국 대중문화의 놀라운 식욕과 소화력에 가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토르는 북유럽신화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단순하고 무식하며 다혈질이고 대식가인 신으로 일컬어진다. ‘묠니르’라는 망치가 그의 무기로,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고 상대가 누구든 한 방에 쓰러뜨리는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천둥과 번개의 신 토르는 서구의 시와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다뤄진 존재다. 그러다 1962년 마블에 의해 슈퍼히어로로 재창조된다. 첫 극장판 영화는 2011년 개봉한 ‘토르 : 천둥의 신’이었다. 뒤를 이은 ‘어벤져스’에도 등장했다. ‘토르 : 다크 월드’는 2011년 작품의 후속편이자, 내용상으로는 ‘어벤져스’ 다음 이야기다.



    1편에서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는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에서 왕 오딘(앤서니 홉킨스 분)의 장자로 아버지 뒤를 이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욱’ 하는 성격 탓에 무모하게 망치를 들었다가 신들 간 전쟁을 일으킨 죄로 지구로 추방당한다. 그사이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던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 분)가 분란을 일으켜 우주와 지구를 멸망 위기에 빠뜨리고, 토르는 이를 막으려고 지구에서 만난 연인이자 과학자인 제인(내털리 포트먼 분)과 함께 목숨을 건 대결에 나선다.

    이번 2편에는 전편에서의 활약으로 아스가르드 왕국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 토르가 우주를 지배하려는 어둠의 세력과 싸운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영화는 토르뿐 아니라 오딘과 로키 등 주요 신의 이름과 영화 속 배경 등을 북유럽신화로부터 가져왔으며, 각 관계와 내용은 할리우드식으로 적당히 가공했다. 언뜻 보면 국내 팬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과 용어가 대단한 느낌을 주는 것 같지만, 요상한 단어들의 후광을 걷어내면 권선징악의 단순한 세계관과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를 담은 판타지물에 불과하다. 농담과 유머감각은 인정할 만하고, 굉음의 사운드와 컴퓨터 그래픽이 창조한 액션이 주는 쾌감은 상당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때때로 객석을 파고드는 것은 자신이 영화 속 토르만큼이나 멍청하고 무식하게 느껴지는 한심한 기분이다. 영화 ‘토르’나 ‘아이언맨’이나, 관객의 정신연령을 한없이 낮추는 유아용 허풍과 강력한 원시적 힘에 대한 현대인의 동경 사이에서 할리우드의 노련한 전략이 만들어낸 기발한 맛의 팝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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