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9

2013.10.21

“10년 축적 검진 노하우 세계가 놀랄 ‘지식상품’ 됐다 ”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 조상헌 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10-21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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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축적 검진 노하우 세계가 놀랄 ‘지식상품’ 됐다 ”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 조상헌 원장과 이 센터가 출간한 책들(오른쪽). 지난 10년간 의학연구와 건강검진을 통해 축적한 건강 정보를 담았다.

    “2003년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를 처음 열던 때가 생각난다. 서울대병원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건강검진센터를 세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해명하고 싶었지만 ‘진심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이라는 생각으로 참았다. 돌아보면 지난 10년은 서울대병원이 왜 건강검진센터를 열었는지 행동으로 증명해온 시간이다. 그동안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고, 건강검진센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 같아 뿌듯하다.”

    10월 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강남센터)에서 만난 조상헌(54·사진) 원장은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그는 서울대병원이 강남센터 설립기획단을 꾸렸을 때부터 핵심 멤버로 참여한 인물. 이후 개원 당시 부원장을 맡았고 2010년 원장으로 취임한 강남센터의 산증인이다. 마침 강남센터가 설립 10주년을 맞은 날, 테헤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병원 미팅룸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시스템과 의료기술 갖춘 곳은 한국뿐

    ▼ 당시 서울대병원이 비판을 무릅쓰고 강남센터를 연 이유는 뭔가.

    “의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의료는 질병 중심이었다. 아픈 사람이 병원에 오면 그때부터 치료와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아프기 전 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면 의료비가 줄어들고 환자 삶의 질도 높아진다’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과거 대학병원의 존재 이유가 난치성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할 일이 생길 거라고 봤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첫째는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병들어가는지를 밝혀내는 것, 또 하나는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다. 건강검진기관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장기를 검진하지 않나. 천식이 당뇨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심장질환과는 또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연구할 수 있게 된다. 당시엔 세계적으로도 이런 연구가 드물었다. 서울대병원이 건강검진센터를 만들면 새로운 의학연구 분야를 선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병원은 이를 위해 강남센터 개원과 동시에 헬스케어연구소를 세웠다. 조 원장은 “이곳 연구진이 지난 10년간 발표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만 280편이 넘는다”며 “건강검진 전문병원이 자체 연구기관을 두고, 스스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는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가 인터뷰 서두에 밝힌 강남센터 설립 당시의 ‘진심’은 이런 것이다.

    ▼ 외국의 건강검진기관은 연구 기능이 없나.

    “일단 우리나라 같은 건강검진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각 과별로 검진을 진행하기 때문에 몸 전체를 체크하는 데 일주일 가까이 걸린다. 데이터도 한데 모이지 않는다. 원스톱 건강검진 시스템을 개발한 일본은 아직 검진 과목이 정밀하지 않다. 여러 분야 의료진이 협업해 반나절 만에 오장육부를 검진하는 시스템과 의료기술을 갖춘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강남센터가 지난 10년간 축적한 건강검진 노하우와 데이터 약 35만 건은 우리 의료계의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센터는 최근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이 ‘자산’을 분석, 정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건강검진 교과서 ‘한국인의 건강검진’을 펴냈다. 이 책에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건강검진 가이드라인과 각종 질병 검진 방법 등이 담겼다.

    ▼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건강검진 가이드라인’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위내시경 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까지는 얼마에 한 번씩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우리는 이 답을 찾기 위해 강남센터에 모인 데이터를 분석했다. 매년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사람에게서 위암이 발견된 경우 98.6%가 조기위암이었다. 암이 위의 점막 밑으로는 침범하지 않은 상태로, 완치율이 99%에 이른다. 반면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사람이 암을 조기에 발견할 확률은 80%대에 불과했다. 3년 이상 간격을 둔 경우는 그 비율이 50%대로 뚝 떨어졌다. 우리는 이 분석을 근거로 ‘위암 위험이 높은 그룹, 즉 가족력이 있거나 장상피화생 또는 위축성 위염 등의 증상을 가진 사람은 1년에 한 번씩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그 외엔 2년에 한 번씩 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옌지센터 이어 UAE에도 수출 추진

    “10년 축적 검진 노하우 세계가 놀랄 ‘지식상품’ 됐다 ”

    10월 13일 서울대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남센터가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건강심포지엄 현장. 의사와 검진센터 종사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조 원장은 이런 정보를 널리 공유하는 이유를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남센터 설립 당시 바랐던 것처럼 우리가 건강검진센터를 만들어 이 분야가 다 같이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도 했다.

    ▼ 그동안 연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해도 여전히 공공의료기관이 고급 시설을 갖추고 상류층만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대한 비판이 있지 않나.

    “그에 대해 답하려면 다시 강남센터 설립 무렵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의료계엔 우리나라가 곧 의료시장을 개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해외 대형 병원들이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의료기관으로서 그들과 경쟁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강남에 온 건 그 때문이다.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갖춰야 제대로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공공성’에 대한 고민도 계속했다. 해법으로 찾은 것이 수익금 환원이다. 강남센터 정관에는 수익을 전액 서울대병원 내 어린이병원과 의생명연구원에 투입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두 기관은 늘 적자가 나지만 의료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강남센터 수익은 전부 이 두 곳으로 간다.”

    조 원장은 설립 당시 ‘생존’을 걱정하던 강남센터가 이제 외국 VIP들이 ‘세계 최고’로 꼽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 점을 눈여겨봐달라고 했다. 9월 7일 중국 옌지(延吉)시에 이곳 시스템을 그대로 본뜬 ‘서울대학교병원 협력 옌지시 중의병원 건강검진센터’(옌지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공간 설계와 인테리어부터 현지 인력 교육까지 강남센터가 관여하지 않은 게 없다고 한다. 조 원장은 “옌지시장과 당 간부들이 강남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뒤 같은 형태의 병원을 자국에 세울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한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옌지센터는 그 대가로 향후 5년간 서울대병원에 로열티를 지불한다.

    조 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이 해외에 브랜드와 프로그램 운영 노하우 등 이른바 ‘지식상품’을 수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국내 병원을 찾는 해외 환자 수가 꾸준히 늘었고, 우리 의료진이 직접 외국에 병원을 세워 수익을 올린 사례도 있지만 잘 만든 의료 시스템이 그 자체로 해외에 수출된 건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 여러 나라도 강남센터 프로그램 수입을 추진 중인 만큼 의료계의 지식상품 수출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남센터의 목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심도 있는 연구와 좀 더 발전된 검진 시스템 개발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사회와의 소통도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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