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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양그룹 사태 후폭풍

특정금전신탁 시한폭탄 왜?

한계 기업 자금조달 방법인 CP에 얼마든 투자 가능 ‘금리+α’ 수익률에 법인 뭉칫돈까지 몰렸지만 상황 악화

  • 심재현 머니투데이 금융부 기자 iwantlemon@naver.com

특정금전신탁 시한폭탄 왜?

특정금전신탁 시한폭탄 왜?

10월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동양그룹 채권 피해자들.

“은행 가면 특판(특별판매) 상품 있잖아요. 그런 거겠구나 했죠.”

동양그룹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당국의 관리 부실을 성토하는 집회를 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그룹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4만9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주최 측 추산으로 이날 집회에 2000명이 모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떤 구조의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CP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발행회사나 판매증권사, 금융당국 앞마당에 몰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그다지 낯선 게 아니다. 2011년에는 LIG건설, 2012년에는 웅진그룹이 있었다. 올해는 동양그룹(동양)인 셈이다.

문제는 올해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점이다. 과거 몇 차례의 교훈에도 손실이 예상되는 투자자가 5만 명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기한을 정하지 않고 특별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고, 정치권도 여야 가리지 않고 국감에서 동양 문제를 파고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금전신탁의 덫



5만 명, 그것도 평범한 주부나 은퇴자가 상당수인 투자자들이 어쩌다 동양을 둘러싼 경고음에도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사지로 밀어넣었을까.

전문가들은 사달의 주범으로 특정금전신탁을 꼽는다. 특정금전신탁은 투자자가 돈(금전)을 증권사나 은행에 맡기면서(신탁) 어떤 투자처에 투자해달라고 지정(특정)하는 상품을 말한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채권 또는 주식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자산운용사가 판매하는 펀드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개인투자자가 접하기 어려운 CP가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과 묶여 대량 판매되면서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본래 CP는 회사채와 달리 어음법(12조2항)에 따라 쪼개 팔기(분할 판매)가 금지돼 있다. 회사채의 경우 1000억 원어치를 발행하면 기관투자자가 100억 원 단위로 인수하는 등 쪼개서 살 수 있지만, CP는 액면가 1000억 원으로 발행하면 1000억 원어치를 통째로 사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업이 CP를 발행할 때는 투자자의 부담을 낮추려고 애초부터 액면가를 5억 원이나 10억 원, 49억 원 등 적은 금액으로 나눈 뒤 여러 차례에 걸쳐 필요 자금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5억 원이나 10억 원은 일반 개인투자자가 투자하기 쉬운 액수가 아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CP는 공시 의무나 이사회 결의 같은 규제가 없다 보니 회사 내부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은 한계 기업이 유독 매달리는 자금조달 방법 가운데 하나”라며 “이런 점에서 보면 분할 판매를 금지한 것도 투자 문턱을 높여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사정이 어려운 기업이라고 당장 돈줄을 막을 수는 없으니, 일반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정도 막아두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투자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장치도 특정금전신탁을 통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정금전신탁에서는 CP를 얼마든 쪼개서 사고파는 게 가능하다. 특정금전신탁에 편입되는 회사채나 CP의 소유권은 증권사 등 신탁회사가 갖고 투자자는 수익권만 갖는 구조라서 가능한 일이다.

가령 10억 원짜리 CP를 발행하면 증권사가 투자자 10명으로부터 1억 원씩을 모아 CP를 산 뒤 보유하고 있다가 만기가 되면 발행기업으로부터 원금을 받아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형식상으로는 증권사가 액면가대로 발행된 CP를 통째 사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음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투자자 10명이 1억 원어치씩 쪼개서 산, 사실상 예외 규정이다.

불완전판매 개연성이 불거지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앞서 밝힌 대로 펀드와 달리 특정금전신탁의 포트폴리오는 투자자가 직접 결정하는 만큼 신용등급이 낮은 부실기업의 회사채나 CP를 포함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주식투자에서처럼 투자자가 직접 투자할 대상을 골랐으니 책임도 투자자가 지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동양 투자자들의 증언과 자료에서 드러나듯, CP와 회사채 투자의 위험성을 잘 모르고 증권사 영업직원의 권유로 투자를 결정하는 특정금전신탁이 적잖다. 펀드 역시 CP나 회사채를 담지만 펀드는 투자자가 자산운용사에 돈을 맡기면 여러 사람의 투자금을 모아 하나의 펀드상품으로 관리하고 투자 판단이나 운용 책임을 펀드매니저가 지기 때문에 애초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회사채나 CP를 담기가 쉽지 않다.

동양 사태에서도 동양이 발행한 CP와 회사채 대부분이 펀드를 운용하는 동양자산운용보다 특정금전신탁을 판매하는 동양증권을 통해 팔렸다. 동양이 회사채나 CP를 발행하면 동양증권이 PB(프라이빗뱅킹)센터와 지점을 통해 투자자에게 권유하고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하는 방식이었다.

당국도 문제 인지…뒷북 논란

특정금전신탁 시한폭탄 왜?

증권사 본사 빌딩이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결국 동양 CP나 회사채처럼 웬만하면 팔리기 어려운 부실기업의 CP에도 얼마든 투자할 수 있도록 ‘뒷문’이 열렸고 실제로 대량 판매됐다는 얘기다. 완전자본잠식으로 재무사정이 악화되면서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의 CP 4300억 원어치가 이 뒷문을 통해 개인투자자 1만3000여 명에게 팔렸다. 동양증권은 이미 2011년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에서도 7500억 원어치의 계열사 CP를 투자자의 서면 확인 없이 판매한 사실이 적발돼 기관경고 조치를 받은 전례가 있다.

금융당국도 특정금전신탁의 CP 편입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동양의 경우로 한정하면 2009년 5월 김종창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유준열 당시 동양증권 사장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2009년 이전에는 신탁업감독 규정으로 CP를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해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2009년부터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이 규정이 사라지자 MOU로 통제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룹 사정이 급박해지자 동양증권은 2011년 6월부터 법적 강제성이 없는 MOU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해 말 CP 판매 규모는 7400억 원으로 목표치인 4700억 원을 훌쩍 넘겼다.

뒤늦게 금융위원회는 4월 특정금전신탁에 편입된 CP를 50명 이상에게 쪼개 파는 경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준비했다.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CP를 지나치게 쪼개 파는 데 제동을 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양증권의 CP 판매 규모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금융위원회의 노림수였다.

증권신고서는 투자위험요소나 재무정보를 기재하는 것인 만큼 기업의 부채상황 등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에 한계 기업 처지에서는 달가운 절차가 아니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이 정정이나 보완도 요구할 수 있어 재빠른 자금 조달이 절실한 기업 처지에선 큰 부담이 된다. 9월 말 동양이 법정관리 직전 65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다 하루 전날 취소한 것도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변화는 당장 나타났다.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에서 50억 원 이상으로 발행되던 CP가 사라진 것도 4월부터였다. 하지만 실제 기대했던 효과는 미미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이 4월부터는 49억 원 이하로 하루에 수차례 CP를 발행하는 식으로 당국 의도를 피하면서 꾸준히 자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동양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특정금전신탁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9월 29일 특정금전신탁으로 회사채나 CP를 매입하면 중도해지가 어렵게 하는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을 연내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열흘 만인 10월 8일에는 특정금전신탁의 가입 금액과 계약기간 등의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나서겠다고도 밝혔다. 최소가입금액은 5000만 원, 계약기간은 1년 이상이 유력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회사채나 CP의 위험성을 확실히 알고 신중하게 투자하도록 유도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뒷북 논란에서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늑장 대응도 문제지만, 그동안 특정금전신탁에 대한 현장 점검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특정금전신탁이 금융당국의 ‘미스터리 쇼핑’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미스터리 쇼핑이란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감독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고객으로 위장해 금융상품 판매 과정을 점검하는 행위다. 금융위원회는 집합투자증권, 파생결합증권, 장외파생상품, 변액보험만 미스터리 쇼핑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 의원은 “특정금전신탁이 미스터리 쇼핑제도 대상 상품으로 규정돼 있고 이 제도를 철저히 시행했다면 동양증권 사태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특정금전신탁이 금융투자업계 전반의 유동성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맡긴 수탁액이 7월 말 기준 104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동양 사태 또는 미국 연방정부 폐쇄 같은 금융 충격으로 투자손실이 커지거나 상환 요청이 밀려들 경우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도 특정금전신탁 폭탄 영향권

특정금전신탁은 사실 최근 증권사가 내놓은 상품 가운데 최고 효자 상품이었다. 직접 운용을 지시할 수 있어 펀드보다 운신 폭이 넓은 데다 증권사 간 경쟁으로 ‘금리+α(알파)’를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 늘면서 당초 개인투자자의 맞춤형 자산관리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대기업 등 법인의 뭉칫돈까지 밀려들었다.

하지만 특정금전신탁이 인기를 끌면서 상당수 증권사가 ‘금리+α’ 수익률을 내려고 특정금전신탁의 평균 계약기간보다 만기가 긴 상품에 투자하는 경우가 늘면서 만기 불일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갑자기 악화하면서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상환이나 해지를 요구하면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한 자산을 급매하는 과정에서 자산가격을 왜곡하는 등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운용방식도 아슬아슬하다. ‘+α’를 위해 일반 금리에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결합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대상 국가나 기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원금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에 위험이 적잖다. CDS 프리미엄이란 특정 채권이 부도날 경우 원금을 갚아주기로 약속하고 받는 ‘보험료’로, 위기에 몰린 국가나 기업일수록 금리가 올라간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대부분이 안전한 수준에서 운용하지만 금융상품의 특성상 언제든 시장을 흔들 폭탄이 될 위험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908호 (p18~20)

심재현 머니투데이 금융부 기자 iwantlem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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