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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유광점퍼 이 얼마만이냐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 확실…올 프로야구 최고 히트상품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dohoney@donga.com

LG 유광점퍼 이 얼마만이냐

LG 유광점퍼 이 얼마만이냐
LG 트윈스는 2011년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30승 고지를 밟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전까지 30승에 선착한 팀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LG는 이 기분 좋은 선례조차 이어가지 못했다. 사상 처음 30승을 먼저 기록하고도 가을잔치에 나서지 못했다.

2012년도 비슷했다. 초보 사령탑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LG는 6월 중순까지 승률 5할 밑으로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선전했다. ‘올해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결국 또다시 4강에 들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57승4무72패, 승률 0.442로 7위였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LG 순위는 ‘6-6-6-8-5-8-7-6-6-7’이다. 이미 단일팀 최장기간(8년)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이란 불명예 신기록을 세웠던 LG는 2011년과 2012년에도 4강에 진출하지 못해 두 자릿수 연속 실패란 사상 첫 오욕의 역사까지 쓰고 말았다. 그리고 2013년 LG는 180도 달라졌다.

한가위 연휴 가장 주목받는 팀

LG는 최근 수년간 매 시즌 초반 반짝하다 중반 이후 고꾸라졌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조롱에 시달렸다. 올해는 정반대다. 5월 초 신생팀 NC에 3연패를 당한 이후 10경기에서 2승8패를 기록하는 등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매년 뒷심이 부족하던 LG 성향을 고려해 자연스레 ‘올해도 힘들다’는 평가가 나왔다. 구단 내부 시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LG는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섰다. 5월 21일 대구 삼성전 이후 10연속 위닝시리즈를 내달리며 완벽하게 살아났다. 6월 들어 16승5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월간성적 1위를 달리는 등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한때 7위까지 떨어졌지만 마침내 8월 20일 삼성을 제치고 1위로 우뚝 섰다. 정확히 30경기를 남기고 있을 때였다. LG가 8월 순위표에서 맨 위에 올라선 것은 1995년 이후 18년(6545일) 만이다.

한동안 롯데가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을 때 부산 팬들은 ‘가을에도 야구하고 싶다’는 말로 4강 진출을 갈망했다. LG 팬들은 ‘유광점퍼를 입고 싶다’는 말로 가을잔치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입는 두꺼운 ‘유광점퍼’를 입고 스탠드에서 LG를 응원하고 싶다는 뜻이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수년째 옷장 안에서 잠자던 LG 팬들의 유광점퍼가 올가을에는 확실히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4강 진출은 확실하다. 사실상 11년 만에 가을잔치를 예약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느냐, 아니면 플레이오프(PO), 또는 준PO에서 시작하느냐만 남았을 뿐이다. 2013년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히트상품인 LG의 페넌트레이스 최종 순위는 어떻게 될까. 이번 한가위 연휴 동안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팀이 바로 LG다.

이병규 그리고 류제국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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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을 맡은 노장 이병규(등번호 9번)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5월 7일에서야 1군 라인업에 복귀했다. 팀이 한창 내리막길을 걸을 때였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던 이병규는 무엇보다 실력으로 모범을 보였다. 5월 한 달간 17경기에서 월간 타율 0.371을 기록한 뒤 6월(0.347), 7월(0.467), 8월(0.302) 등 세월을 거스르는 활약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부담감에 몸이 무거웠던 후배들에게 “승리에 집착하지 말고 경기를 하는 3시간 동안 그냥 즐기자”고 주문했다. 허우적거리던 LG 선수들이 다시 일어선 데는 베테랑 이병규의 힘이 컸다.

이병규는 “나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후배들이 잘해줘 내가 칭찬을 받으니 오히려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후배 권용관은 “병규 형이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후배들이 경기 도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즐기자’다. 이젠 한 경기 졌다고 고개를 숙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7월 5~8일 목동 넥센전 3연패 이후 9월 초순이 다 지나도록 단 한 번도 3연패를 당하지 않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야수진에서 이병규의 가세가 팀 분위기를 바꿨다면, 투수진에서 활력소 구실을 한 것은 메이저리거 출신 류제국이다. 류제국은 시즌 개막 전까지 ‘전력 외 선수’에 불과했다. 잘해주면 고맙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 그러나 5월 19일 잠실 KIA전에 첫 선발 등판해 첫 승을 따내며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르더니 이내 한국 프로야구에 완전히 적응했다. 메이저리거 출신답게 구위와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다. 9월 4일 대전 한화전까지 16번 선발 등판한 류제국은 8승2패, 방어율 4.05를 기록했다.

새삼 주목받는 김기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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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LG 감독

특히 LG는 류제국이 선발로 나선 16경기 가운데 13번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그가 등판하면 LG 타자들의 방망이가 유독 힘을 냈다. 류제국은 차츰 ‘승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갔고, 선발진에서 그가 기대 이상의 구실을 하자 이는 LG 마운드의 전반적인 안정으로 이어졌다. 차명석 투수코치의 조련 아래 지난해보다 훨씬 탄탄해진 LG 마운드는 용병 주키치의 부진 속에서도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9개 구단 가운데 방어율 1위라는 값진 열매를 맺으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노리는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1969년생으로 2011년 말 LG 감독 선임 당시 42세에 불과했다. 조계현 수석코치보다 5세 어리고, 김무관 타격코치와는 14세나 차이가 난다. 반면 주장 이병규보다 5세, 팀 내 최고령 현역인 류택현보다 2세 많을 뿐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코치들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자발적인 절대 충성’을 이끌어낸다. 코치들은 그를 더 잘 보좌하려 애쓰고, 선수들은 진심어린 말투로 “이런 마음가짐은 처음이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 김기태’에 대한 존경과 믿음에서 비롯된다.

김 감독은 독선적이라기보다 수평적 리더십의 소유자다. 흔히 ‘형님 리더십’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는 동네 형님처럼 푸근하다. 그러나 결코 코치나 선수에게 ‘만만한’ 감독이 아니다. 코치들에게도 불만이 있으면 면전에서 얘기하라고 강조한다. 체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는 과감히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원칙에 따라 강력한 문책도 행사한다.

현역 시절 왼손 거포로 명성을 떨친 그는 선수 때부터 보스 기질이 남달랐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는 감독이지만 코치들에게 많은 권한을 준다. 코치들이 힘이 있고 권위가 있어야 선수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주장 이병규와 박용택, 이진영 등 고참 선수들을 믿고 팀이 선수단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고액 연봉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도 선수들의 지나친 스타 의식과 모래알 같은 조직력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던 LG. 평소 자상하지만 때론 원칙을 명확하게 강조하며 선수단을 휘어잡는 김 감독의 힘이 LG가 2013년 예상을 깨고 리그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니게 된 원동력이다.

역대 추석 명승부

“명절은 무슨” …팀 순위부터 개인 타이틀까지 피 말리는 승부


LG 유광점퍼 이 얼마만이냐
프로야구 선수에게 명절 연휴는 남의 얘기다. 한가위 보름달과 차례상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 올해처럼 추석 연휴에 시즌 막바지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팀 순위는 물론 개인 타이틀 경쟁까지 걸려 있어 추석 연휴에도 피 말리는 승부를 펼치기 일쑤다. 추석을 맞아 역대 한가위 연휴에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명장면을 되돌아본다.

2013시즌처럼 3개 팀 이상이 시즌 막판까지 선두 다툼을 한 것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1990년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시즌 막판까지 안갯속 순위 싸움을 펼쳤고 결국 LG가 2위 해태에 1.5경기 차, 3위 빙그레에 2.0경기 차로 앞서며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했다.

그 과정이 무척 극적이었다. 마지막 19경기를 남겨두고 3위 LG는 1위 빙그레에 4.5경기 뒤졌지만 14승5패를 거두며 무서운 추격전을 펼쳤고, 결국 7승12패로 주춤한 빙그레를 3위까지 끌어내리며 역전 우승했다. 페넌트레이스 1위 경쟁이 끝난 것은 추석 연휴 시작일인 9월 29일 토요일이었다.

1990년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치열한 타격왕 경쟁이 벌어졌던 해다. 해태 한대화(현 KIA 2군 총괄코치), 빙그레 이강돈(현 천안 북일고 감독), LG 노찬엽(현 LG 2군 감독)이 주인공이었다. 노찬엽은 9월 28일까지 타율 0.334로 1위를 달렸다. 그러나 30일 이강돈이 4타수 2안타로 타율 0.33486(436타수 146안타)을 기록하며 노찬엽을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시즌을 끝냈다. 이때 한대화가 불쑥 튀어나와 추석 전날인 10월 2일 인천 태평양전에서 3타수 2안타를 때렸다. 한대화는 418타수 140안타로 타율 0.33493. 이강돈(0.33486)과 ‘할·푼·리’까지 똑같았지만 간발의 차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타격왕 경쟁이었다.

1995년은 해태와 OB의 희비가 엇갈렸다. 두 팀은 추석 연휴였던 9월 8∼10일 광주에서 더블헤더를 포함해 4연전을 치렀다. 결과는 OB의 싹쓸이 4연승. 해태는 이 충격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OB는 4연승을 발판으로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13경기에서 12승(1패)을 쓸어 담는 기적을 연출하며 6경기 차로 앞서던 1위 LG를 0.5경기 차로 제치고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라 결국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미러클 OB(두산)’라는 별명이 생긴 해가 바로 95년이다.

OB와 해태의 한가위 악연은 3년 뒤 다시 이어졌다. 1998년 추석, 해태는 OB와의 2연전에서 1무1패만 해도 4강을 확정할 수 있었지만, 2연패 끝에 결국 5위로 밀려나 가을잔치의 들러리가 됐다. 3년 만에 OB에 다시 발목을 잡힌 해태는 한동안 ‘추석 괴담’에 시달렸다.

1999년은 한화가 한가위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매직리그 2위 한화는 추석 전만 해도 드림리그 3위 현대에 승률에서 뒤져 포스트시즌 진출을 낙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추석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다. 9월 24일 현대전 4대 0 승리를 시작으로 연휴 3연전을 쓸어 담았고, 기세를 이어 해태, LG, 쌍방울을 모조리 제압하면서 10연승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잇달아 물리치며 창단 13년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주간동아 905호 (p106~108)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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