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2013.09.02

일본, 무역적자 수렁에 빠졌다

3년 연속 적자 확실시 우려 목소리…정작 일본은 “일시적 현상” 느긋

  •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panco88@seri.org

    입력2013-09-02 10: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승승장구하던 아베노믹스가 제대로 된 복병을 만났다. 2012년 무역적자가 8조2000억 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도 전년 적자 규모를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3년 연속 적자가 확실시되면서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만, 정작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태연하기만 하다. 적자 원인을 ‘원전(원자력발전소) 제로 상황에서의 연료 수입 확대’ ‘J-커브 효과’(환율 절하 시 초기에 무역수지가 악화하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개선되는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최근 무역적자는 ‘일시적인 현상’이므로 하반기에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견해까지 보인다.

    골치 아픈 문제는 미루자?

    언뜻 보면 일리 있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3년 연속 적자가 지속된다면 응당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적자 문제를 논해야 하는데, ‘골치 아픈 문제는 뒤로 미루자’는 식의 속내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제3의 화살이라는 성장정책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이 냉랭한 데다, 무역적자 문제마저 불거질 경우 아베노믹스의 추진 동력이 더 약화될지도 모른다는 일본 정부의 불안감을 필자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무역구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이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적자가 늘어난 표면적 이유와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원인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역적자는 수입이 수출보다 클 때 발생하므로, 금융위기 이후 일본의 수입 회복 속도가 수출 회복 속도보다 빨랐다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연료와 생필품을 중심으로 수입이 급증한 데다, 일본 기업이 대거 진출한 태국에서 홍수까지 겹쳐 부품 공급망에 이상이 생기면서 수출 회복이 지연된 결과다.

    표면적 이유로만 본다면 최근 무역적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일시적 현상’이며, 향후 원전을 재가동해 연료 수입이 줄고 부품 공급망을 재정비해 수출이 제자리를 찾아가면 적자 구조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원인을 살펴보면 무역적자의 조기 해소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수입을 늘리는 구조적 요인을 살펴보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화력발전이 원전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원유와 LNG 등의 수입이 확대됐다(최근 2년간 연료 수입은 6조5000억 엔이 늘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수입 증가분의 70%에 육박한다). 이 부분은 일본 정부의 주장과 일치하지만, 2000년대 이후 연료 수입이 매년 20% 정도씩 증가해온 점을 감안하면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추가 확대 분은 크지 않다.

    오히려 수입이 늘어난 품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료를 제외한 수입 증가 상위 5대 품목은 스마트폰, 의약품, 식료품, 의류, 자동차인데, 이 품목들은 소비자 기호나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수입량이 급증해왔다. 이는 곧 수입 확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의 경우 일본 전체 휴대전화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일반화됐지만, 일본산 휴대전화의 인기가 식으면서 외국 브랜드 수입이 크게 늘었다.

    이 밖에 고령화로 외국산 질병예방약품의 수입이 늘어나고, 캐주얼 열풍이 불면서 해외 중저가 브랜드 의류의 수입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방사능 확산 우려에 따른 식료품 수입이나 해외에서 생산한 고급 일본차의 수입까지 고려할 경우, 이들 다섯 품목의 수입 증가액은 연료 수입 확대를 주도한 LNG를 넘어선다. 만성적 전력난으로 연료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소비자의 기호나 생활양식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수입 구조가 상당 기간 유지될 개연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수출은 어떨까. 일본은 최근 2년간 아시아와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 부진이 현저하다. 성장통을 겪는 중국이나 재정위기로 저성장이 이어지는 EU로의 수출이 줄어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수출에서의 구조 변화는 지역보다 품목에서 더 잘 드러난다. 바로 전기기기와 일반 기계의 수출 둔화다. 이 두 품목은 최근까지 자동차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주력 수출품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오히려 일본 수출 회복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그 배경에는 일본 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와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이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 하락은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장기간 지속된 엔고로 해외 생산을 늘려온 이들 품목의 경우 환율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주력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도 수출 회복을 막는 구조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아베노믹스 ‘입안의 가시’

    예를 들어 정보통신기기의 경우, 글로벌 시장 규모의 확대에도 일본 제품의 시장점유율과 수출 비중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일본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출이 반 토막 난 사이 아시아 경쟁국들의 수출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자동차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수출 회복이 어려워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일본 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나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이 멈추지 않는 한 일본 수출의 극적인 추세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무역적자가 수년 지속된다 해도 당장 일본 경제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은 여전히 경상수지 흑자국이며 막대한 해외자산을 보유한 채권국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역적자의 과도한 확대로 시장의 예측보다 한발 빨리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경우에 발생한다. 지금처럼 공공부채가 과도한 상황에서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경우, 재정건전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일본 국채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아베노믹스를 강력하게 추진해 자국 국가부채에 대한 대내외의 불안감을 불식해온 일본 정부로선 무역적자 문제가 입안에 가시처럼 남에게 보이기 싫은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우는 어떨까. 상반기 사상 최고치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로 한껏 고무된 상황에서 일본의 무역적자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나갈 때일수록 집안 단속이 중요하다. 일본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의 무역구조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출의 경우 조선, IT, 자동차 등 일부 주력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원전 불안으로 연료 수입은 언제 얼마만큼 늘어날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수출 경쟁을 벌인다는 부담감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우리가 일부 품목에서 일본 제품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것처럼 이제는 중국이 우리의 1등 수출 상품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확보한 외형적 위상은 경쟁국에 의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 다양한 제품에 걸쳐 품질은 물론, 디자인과 이미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만들어가야만 어렵게 올라선 수출 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