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1

2013.08.19

“진심으로 맺은 인간관계 감동으로 돌아오더라고요”

김영희 MBC PD

  •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8-19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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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TV ‘일밤-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 PD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비롯해 그가 제작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의 ‘숨은 양심을 찾아서’,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등은 재미와 감동을 전하며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선도했다. 그가 ‘열정樂서’를 통해 결실을 거둘 수 있었던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다.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열정樂서’는 저명인사들이 멘토로 나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콘서트다.

    여러분한테 어떤 얘기를 해드릴까 고심하다 ‘양심 냉장고와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혹시 ‘양심 냉장고’ 아시는 분? ‘나는 가수다’ 모르시는 분? 인간관계에 관한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제가 만든 프로그램 얘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제목을 붙였습니다.

    2005년 예능국장 할 때 파워포인트라는 걸 처음 만들어봤는데요. 그 덕에 그동안 걸어온 길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파워포인트 자료를 짚어가며)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도 성공을 거뒀는데요. 사실 우리는 남을 헐뜯어야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데, ‘그러지 말고 칭찬도 해주면서 살자’는 취지로 만들어 대박이 났죠. 칭찬릴레이라는 사회적 신드롬도 일어났다고 해요. 그다음에 ‘느낌표’, 최근에 ‘나는 가수다’를 만들면서 여러 얘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만든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뭘까 고민해봤더니 바로 이거더군요. ‘남들이 안 된다는 것을 한 것.’‘양심 냉장고’는 물론이고 ‘나는 가수다’도 전부 안 된다고 했거든요. ‘느낌표’ 프로그램은 PD 5명과 AD 15명을 데리고 2시간짜리 대형 프로젝트로 만들었는데 그중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를 제가 기획, 연출했습니다. 가장 경쟁이 심한 시간대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 책 얘기를 하겠다니 다들 말렸지만, 저는 될 것 같았어요. 그동안 누구도 이 시간대에 책 얘기를 안 했으니까 재밌게 만들면 될 것 같더라고요.

    남들이 안 된다는 것에 도전



    일단 재미있는 MC 가운데 책을 가장 읽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을 설득하고(웃음),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국민이 쉽고 재밌게 읽을 만한 첫 책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선정했어요. 그 후 출판사 사장을 만나 “방송이 나가면 그 책이 불티나게 팔릴 텐데, 책이 없으면 안 되니까 책을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20만 권을 부탁하니까 그분은 2만 권으로 알아듣더라고요. 그만큼 2001년 출판시장이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도 제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요구하니까 책이 안 팔리면 MBC가 사주는 조건으로 20만 권을 찍었고, 정말이지 첫 방송이 나가고 며칠 만에 20만 권이 다 팔렸어요. 한 달이 지나니까 120만 권이 나갔더라고요. 그다음 ‘봉순이 언니’는 220만 권 나가고(웃음). 시청자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김용만과 유재석이라는, 시청자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책에 대해 얘기하니까 통하더라고요(웃음).

    그 출판사 사장이 제 청을 들어준 이유는 뭘까요. 미쳐서(웃음)? 전 이렇게 생각해요. 모든 인간관계에는 진심이 있어야 해요. 계산하려고 들면 안 돼요. 처음 보는 제가 사명감을 갖고 온 힘을 다해 설득하니까 출판사 사장은 몇억 원을 날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해준 게 아닐까요.

    한 번은 북한에 가서 촬영한 적이 있는데요.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한으로 넘어가니까 철문이 털컥 열리고 우리를 에스코트하던 군용 지프차가 빠진 뒤 북한 병사가 나오더라고요. 사전에 북방한계선 안에서는 촬영하면 절대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는데도, 북한 병사 20~30명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까 그 포스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병사들의 살갗이 짐승 거죽이더라고요. 하도 밖에서 생활하니까 사람 살갗이 아니고, 눈에서도 레이저가 막 나왔죠. 그걸 카메라로 찍고 싶어 제가 찍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북한 병사가 “동무, 찍지 말라 그랬잖아”라면서 저를 끌고 갔고, 2시간 동안 취조받고 싹싹 빌고 나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죠. 이렇게 2박3일 사전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걸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사람들이 북한 병사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말 백 마디를 하는 것보다 한 장면을 전하는 것이 임팩트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제가 다시 촬영을 시도하다 걸리면 못 돌아오니까 다른 사람이 촬영해야 했어요. 결국 건장한 FD가 자신이 찍겠다고 해서 그 친구가 카메라 기능이 있는 안경을 썼죠. 그런데 대규모 촬영팀이 북에 가서 그런지, 그날따라 북한 병사들이 살벌하게 많더라고요. 그때 FD의 낯빛은 사색이다 못해 흑색이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병사 한 명이 표정 없이 안경 낀 FD 앞으로 다가왔는데, 때마침 신동엽이 볼펜을 딱 떨어뜨리면서 헤헤 웃으니까 병사가 돌아갔어요.

    다행히 FD가 북한 병사가 다가오는 모습까지 성공리에 촬영했지만,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방송은 내보내지 못했어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는가 하면, 그 장면을 찍고 싶어 하던 제 진심이 그 친구에게 전달됐기 때문이에요. 자기를 사지에 몰아넣을 줄 알면서도 강행한 거죠(웃음). 그게 2003년 일인데, 2010년 그 친구가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고 찾아와 주례를 섰어요. 그 친구의 진심이 나한테 전달된 거지(웃음).

    이소라 섭외 한 달 공들여

    “진심으로 맺은 인간관계 감동으로 돌아오더라고요”

    ● 1960 부산 출생<br>● 1986 MBC 입사<br>● 1987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br>●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칭찬합시다’ ‘느낌표’ ‘일밤-나는 가수다’ 등 프로그램 다수 연출

    ‘나는 가수다’도 상황은 비슷해요. 여러분은 이 프로그램을 봤으니까 가수들이 서바이벌을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겠지만, 그전에는 가수 스스로가 서바이벌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도 저는 ‘특급 가수들의 서바이벌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다들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죠. 섭외가 어려울 것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요. 일단 출연진 7명을 선정했는데, 저는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섭외가 안 되면 프로그램을 접겠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가장 섭외하기 어려울 것 같은 가수 이소라를 섭외하려고 한 달 이상 공을 들였어요. 이 사람을 먼저 섭외하면 쭉쭉 밀고 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는 거니까요. 이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음식, 자주 가는 장소를 연구했어요. 이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에서 주변 인물을 모두 내 편으로 만들어놨죠. 그러곤 이소라 씨가 자주 가는 서울 홍대 앞 파스타 집에서 이소라 씨와 알리오 올리오를 먹으면서 두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설명했어요. “가장 경쟁력 있는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데, 가수들이 서바이벌 형식을 감수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당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득했죠.

    그런데 이소라 씨가 갑자기 딱 일어나서는 “언제부터 하면 되죠?”라고 묻더라고요. 한 방에 오케이한 거죠. 이때도 진심이 통했던 것 같아요. 진심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요. 물론 진심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나중에 들었지만, 이소라 씨는 이미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파악하고 저와 일하면 좋겠다 싶어 그 자리에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실력이 있어야 해요. 그렇다고 내가 실력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고요(웃음).

    실력이란 단어는 백지영이란 친구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말일 거예요. 제가 이 친구를 공중파에 처음 데뷔시켰는데요. ‘나는 가수다’ 출연진 중 유일하게 사전에 알았던 사람이 백지영 씨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나는 가수다’를 절대 안 하겠다고 하면서 속을 썩이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섭외가 안 돼서 제작진이 걱정하고 있었죠. 제작발표회 전날까지 출연진이 확정되지 않았으니까요. 때마침 휴대전화가 울리고 단말기에 백지영이라고 딱 뜨는 거예요. 그때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저, 선생님만 믿고 할게요. 근데 조건이 있어요. 제가 언제 결혼할지 모르겠지만 주례를 봐주시면 할게요.” 그래서 이번에 주례를 봐줬어요. 저는 제가 이 말을 한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백지영 씨가 “그때 약속 생각나시죠?”라고 하기에 해줬죠(웃음).

    숨 막히게 사랑하고 공부해야

    “진심으로 맺은 인간관계 감동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이처럼 누군가를 대할 때 진심이 없으면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이 중요한 거죠.

    연출 생활을 하면서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새벽 4시 13분, 사람들이 교통 정지선을 어기는데 한 장애인이 교통 정지선을 지키더라고요. 이분을 인터뷰하기 직전에 진행자인 이경규 씨와 촬영 스태프들에게 “아무리 말이 느려도 중간에 카메라를 꺾지 마라. 말이 늘어져도 끊지 마라. 웃기려고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라”고 당부했어요. 그러곤 인터뷰를 하는데 그런 질문이 세상에 어디 있어. “교통신호를 왜 지키셨습니까”(웃음). 그 질문이 방송에 그대로 나갔어요. 그런데 우문현답이라고 20~30초 동안 여섯 마디를 하더라고요. “나는 늘 지켜요.” 방송 나가고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죠. 저는 그 사람의 진심이 그렇게 감동적이더라고요.

    사실 제가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사설이 좀 길어졌지만, 도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도 이 세상을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다 되게 돼 있더라고요. 안 될 것 같죠? 시간이 다 해결해줍니다. 지금은 실패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돼 있어요. 아무 걱정 말고 도전하세요. 그런데 그냥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세요. 한 번 성공했다고 멈추지 말고, 이거 성공하면 또, 또 도전하면 잘될 거예요. 그 대신 겁내지 말고 최선을 다하세요. 진심에서 출발하면 실력으로 확산된다고 그랬죠? 도전하지 않으면 절대 실력이 생기지 않아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에서 성공했을 때 실력이 늘어요. ‘남들이 된다고 하는 것만 하면 실력과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제 얘기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제가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 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줘 잘린 뒤(웃음), 남미에 가서 하염없이 흐르는 아마존 강을 봤어요.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그걸 매일 보니까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어쩐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더라고요. 시간이 멈추는 거 봤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강물이 잠깐 멈추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상한 지형을 만나면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지 않는데,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마냥 흘러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멈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어딘가에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몰두하면 흐르는 시간도 멈출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절대 강자는 시간이잖아요. 그렇지만 열정이 있다면 잠깐 멈추게 할 수는 있더라고요. 여러분도 숨 막힐 정도로 사랑해보세요. 공부할 때도, 놀 때도 그렇게 하면 시간도 멈추게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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