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2013.07.15

사실 바탕 명예훼손 땐 불법… 의견표명은 보호

비방 문구·단어 표현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3-07-15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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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갑자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등장해 정치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팩트는 하나인데 해석이 정반대이니 혼돈스러워하는 이도 많다. 그 와중에 정치적 반대자들을 폄하하는 자극적 단어로 ‘종북’을 사용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최근 보수논객을 자임하는 한 인터넷 매체 대표가 야당 대표 부부를 ‘종북·주사파’로 단정하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게 화제가 되더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종북’이라고 표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원 판단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강형주 수석부장판사)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등이 3월부터 ‘종북의 심장’ ‘전교조의 사상교육 우리 아이 다 망친다’ 같은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을 대법원 앞에 내걸고 집회를 계속하자 전교조가 “비방문구를 포함한 현수막과 팻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신청한 가처분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전교조를 ‘종북의 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며 해당 문구를 쓰지 말라고 결정했다. 또 “종북이라는 단어를 ‘북한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김일성, 김정일 등을 찬양하는 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 종북으로 지목된 단체나 개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침해돼 명예훼손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교조가 북한 추종이나 주체사상 신봉을 기조로 삼는다고 볼 수 없다”며 “전교조의 사회적 지위와 기대되는 구실에 비춰볼 때 정당한 비판의 수준을 넘은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전교조의 사상교육 우리 아이 다 망친다’와 ‘전교조는 주홍글씨’ ‘학생에게 반 대한민국 좌경교육시킨 죄’ 등 다른 현수막 문구들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표명 수준에 머무르거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금지하지 않았다. 우리 법이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만 불법으로 정했음을 염두에 둔 판단이다. 의견표명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을 투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보수단체가 반대 진영을 가리켜 흔히 쓰는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해 법원은 사용된 맥락과 사회적 배경 등을 따져 명예훼손 여부를 엄격히 판단하는 추세다. 과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에 대한 변모 씨 등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법은 “‘주사파’라는 표현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사회적 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단순한 모욕적 언사나 사상에 대한 평가를 넘어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사실의 적시”라며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려면 정황을 넘어선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중략) 피고들이 근거로 삼은 정황만으로 원고들이 주사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정치학자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 논쟁에 기초한 ‘지성의 정치’가 사라졌다. 진영 논리에서 생겨난 ‘증오의 정치’가 지배하는 ‘증오 사회’가 돼버렸다”고 개탄한 바 있다. 진영 논리로 일관하는 반지성적 증오는 보수나 극우세력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비판적 견해의 타당성을 살피기보다 ‘권력의 주구’ ‘이중대’라고 낙인찍으며 눈을 부라리는 이들도 많다. 활발한 토론을 통해 다수 의사를 이끌어내고 소수를 배려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요체다. 신념을 종교화해 타인의 비판적 충고에 귀를 닫는다면 대화와 타협은 설 자리가 없다. 상대방에 대한 낙인찍기로 민주주의를 이룬 역사도 없다. 모두가 충혈된 눈빛은 없었는지 자성해볼 일이다.

    사실 바탕 명예훼손 땐 불법… 의견표명은 보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회원들이 7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사학지원조례 재의요청 촉구 2차 집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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