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6

2013.07.15

인간은 진화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바로 하늘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7-12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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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진화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골프와 인생’ 연재를 마칩니다. 이 원고를 쓰는 날 아침 박인비 선수가 미국 LPGA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연재를 장기간 끌고 갈 수는 없고 언젠가 손을 놓아야지 하면서도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시작은 언제나 티샷이지만 종료는 홀컵이듯, 마지막 구멍 속으로 오르가슴의 비명을 지르며 펜을 놓습니다.

    저는 골프선수가 아닙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골프 고수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동네 수준에서 함께 노니는 친구들이 잘 친다고 붙여준 별명이 ‘김 도사’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골프 구라를 열심히 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내재된 철학이 제 전공인 수련 및 수행의 철학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수련철학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인간을 이해하고 인생을 논하며 자연과 합일하는 내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대단합니다. 거기서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내 존재의 뿌리가 보이고, 삶의 목적과 방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죽음이 곧 행복이라는 확신이 오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저는 이런 내용을 경험해봤기에 자신 있게 구라를 칠 수 있었습니다.

    구라가 뭔지 아십니까. ‘검다’라는 뜻의 일본어 ‘구라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있는 사실을 철학적 의미로 포장해 전달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없는 사실을 포장한 말은 거짓말 또는 뻥이라고 하죠. 제가 그동안 한 얘기는 최소한 있는 사실을 포장한 것이기에 구라입니다. 먼저 철학적 사실을 알고 기술적 완성을 높여가는 제 진화론적 관점에서 쓴 얘기들입니다. 원리를 알고 기술을 습득하면서 인생과 골프가 완전히 하나라는 사실을 더 확신하게 됐습니다.

    골프장을 영어로 필드라고 하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첫째는 모든 물질을 필드라는 하나의 빛 발광체가 감싼다는 뜻이죠. 둘째는 넓게 펼쳐진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련을 통해 그 둘이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묘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즉 한 단계만 더 차원을 달리해 보면 모든 존재는 빛 발광체 속에 사는 다른 드러냄의 모습만 있습니다. 4명이 라운딩을 하면 타수 차이는 있을지언정 행위는 같고, 그 방법에 고유의 주체성이 내재돼 선택과 힘의 배분만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어남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

    태어남도 자신의 선택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이 하늘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젊은이가 부모에게 푸념하는 말 가운데 가장 심한 말이 “왜 나를 낳으셨나요”입니다. 저쪽 세상을 모르니 ‘부모가 나를 낳았다’는 무지의 말을 하는 겁니다. 나 자신을 움직이는 핵심이 생각이요, 이 생각의 하인이 몸이라는 단순 구도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몸과 생각을 연결하는 빛의 자기장을 기(氣)라는 일반 용어로 부릅니다만, 공간을 형성하는 기가 있는가 하면 빛의 원질을 뜻하는 기도 있습니다. 대기, 공기, 기압의 기는 외부 기지만 기분, 오기, 용기의 기는 내 빛의 원질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이 원질, 선택의 무한성과 창조의 무한성을 가지는 원질의 상위 빛이야말로 나 자신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이 같은 주파수의 파동을 가지는 빛과 동조할 때 나는 탄생이라 부르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동조가 무엇이냐고요. 쉽게 말하자면 남녀가 극한의 기분상태를 가질 때, 즉 기의 분산이 주변과 완전히 동화하는 것인데, 더 쉽게 말하면 오르가슴 상태를 뜻합니다. 교접 전 기의 분산을 뜻하는 전희가 오래 지속될 때 내 본성인 빛의 원질은 물질인 육체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극한 오르가슴 상태가 되면 내 본성은 부모의 유전 형질 속으로 녹아 들어갑니다. 거기서 나라는 자기장이 형성되고, 이 자기장이 힘을 가해 세포분열을 합니다. 탄생이 이렇게 진행된다는 사실만 알면 세상살이의 모든 행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나는 인생이라는 연극무대에서 나를 드러내려고 온갖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음식과 의복은 물론이고 직업과 배우자, 가치관까지 선택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갑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펼쳐진 필드에서 드러난 수많은 현상 가운데 나한테 맞는, 아니 내가 원하는 하나를 선택해 길을 만듭니다. 마치 골프장의 필드가 별별 요소를 다 갖고 있어도 내가 원하는 길은 오직 하나, 구멍을 향한다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이 역시 무덤, 즉 구멍으로 들어가는 죽음의 길을 향하는 내 인생과 다를 바 없죠. 해저드와 벙커를 거치지 않으면 무덤으로 향하지 못합니다.

    창조성을 가진 無·虛·空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죽음으로 향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는 결국 ‘무엇을 위해서’라는 원초적 질문과 부딪칩니다. 제 대답은 ‘경험을 통한 기억의 재료 쌓기’입니다. 아무리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어도 죽음이란 대명제 위에서 그 사실을 바라보면 경험 쌓기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그 경험이 기초가 돼 다음 생에서는 더 나은 지혜의 경험을 쌓게 됩니다. 마치 골프에서 스코어 카드가 내 18홀 모든 경험의 기록이듯.

    이 기록의 집합체가 내 영혼의 기질을 결정짓습니다. 이번 생에서의 기록이 한과 눈물로 점철됐다면 다음 생에서는 조금 발전합니다. 하나의 한이 사라지고 해원을 하면 더는 다음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생에서 어떤 행위가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고 판단하는 내면의 본성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스코어 카드에 이븐파를 기록하고 나면 내 골프에서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본질, 이것이 다음 라운드에서는 언더파를 목표로 하는 또 다른 경험칙을 원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신이 가진 속성, 즉 창조를 원하는 마음에는 끝이 없고 인간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는 말로 통용되기도 하죠. 결국 사람이나 신이나 그 속성은 창조의 경험을 통해 나 스스로를 진화시킨다는 하나의 명제만 남게 됩니다.

    제가 수련을 통해서나 골프를 통해서 체득한 진리는 이것입니다. 내가 바로 하늘이며,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창조성을 가진 실체, 그 자체가 나라는 사실입니다. 무(無)와 허(虛), 공(空)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무, 그 어떤 현상도 창조할 수 있는 허, 비어 있어도 채움의 모든 것을 갖춘 공, 이 모든 것이 나의 근본이고 본성입니다. 백돌이든 언더파든, 어떤 스코어도 내가 원하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가 하늘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난하게 살건 부자로 살건, 내 무의식의 하늘이 만든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생은 곧 하늘의 드러냄이란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간 부족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3년 7월 1일 서울 홍은동 도방에서 김 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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