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아리랑

연극 ‘아리랑 랩소디’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7-08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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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아리랑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이 무대”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을 하며 산다. 연극 ‘아리랑 랩소디’는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 무대에서도 묵묵히 제 삶을 사는 보통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일제의 강압이나 폭력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순응이라는 점에서 감동의 무게가 남다르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을 토대로 재창작됐다. 일제강점기 시골마을에 ‘유랑극단 아리랑’이 도착한다. 공연 홍보 도중 현실과 연극을 구분하지 못해 돌발행동을 한 희준은 독립군으로 지목받아 일본 순사에게 끌려간다. 극단은 공연을 못할 위기에 처하는데, 악랄한 지서장은 미모의 단원 춘심을 볼모로 잡는 조건으로 공연을 허가하지만 춘심에게 사랑을 느낀 백정의 아들 박살제의 등장으로 마지막 공연은 쑥대밭이 된다.

    단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연극을 이어가고자 한다. 여기에 공연을 멈추게 하려는 일본 경찰, 그리고 양쪽 눈치만 살피는 힘없는 동네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공연을 둘러싼 모든 것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진다. 특히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핍박받고 살다 고문관이 돼 마을사람들에게 설움을 되갚아주던 박살제라는 인물이 어떤 연극 속 배역보다 극적이라 더 눈길이 간다. 그는 그저 백정이라는 배역을 타고났을 뿐인데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죄처럼 다뤄진다는 것이 비극적이다.

    사실 객석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관람하는 연극은 근대 서구식이고, 본래 연극은 차력, 불쇼, 마임, 막간극, 줄인형극 등 다양한 볼거리를 담아냈다. 소일거리가 많지 않던 예전에는 관객들이 연극 한 편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부터 박장대소까지 모든 것을 얻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리랑 랩소디’는 전통 연극의 틀에 맞게 광대들의 풍성한 연희를 꺼내놓는다. 공연 시작 20분 전에 입장하면 배우들이 펼치는 막간극을 구경할 수 있는데, 서커스 유랑극단처럼 화려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숨넘어갈 정도로 재밌는 개그 차력쇼를 선보인다.

    ‘아리랑 랩소디’라는 작품명답게 공연 전반에 다양한 아리랑 변주곡을 깔아놓았다. ‘유랑극단 아리랑’이 극중극으로 선보이는 악극은 예전 녹음자료를 토대로 악극 원형의 감칠맛을 잘 살렸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으로, 나라 잃은 설움과 석별의 정을 주요하게 담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몇십 세대에 걸쳐 불러오던 아리랑은 즐거움, 환희, 안타까움, 체념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정서를 대변하는 곡이다. ‘아리랑 랩소디’는 전통 아리랑처럼 다양한 인간의 감정,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7월 19일부터 8월 11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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