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요” 교실로 찾아간 ‘섹시미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인권교육 현장…재미있게 장애인 편견 없애기 아이들도 호응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7-08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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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요” 교실로 찾아간 ‘섹시미녀’

    서울정덕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김재연, 표미라 장애인 인권강사와 상황극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이야, 장애인!” “무슨 장애인이지?” “여자야, 여자!” “좀 이상해 보여.”

    7월 1일 서울정덕초등학교 2학년 1반 교실. 뇌병변 장애인인 김재연(28) 씨와 비장애인 표미라(35) 씨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참새처럼 짹짹거린다.

    김씨와 표씨는 장애인 인권교육 강사로, 4월 ‘알록달록 발걸음’(cafe.daum.net/ bal.geol.eum)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 소속돼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 관할 기관에서만 교육을 했다. 교육 대상을 확대하려고 독립한 이들은 최근 ‘성북구 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역 교육기관에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씨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장애인 인권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수강한 뒤 5년째 강사로 활동한다. 그가 일하는 이유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장애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표씨도 같은 프로그램을 수강한 뒤 지난해 6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공연 기획을 하다 보람되게 살고 싶어 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교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노들장애인야학학교 장애인극단 ‘판’에서 일했다.

    “재미있게 교육하자”며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진행하는 장애인 인권교육 현장을 소개한다. 장애인 김씨와 비장애인 표씨의 수업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몸이 많이 불편한가요?

    표미라(이하 표) 안녕하세요. 제 소개가 끝난 후 옆 선생님이 일어나도 될까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일하는 표미라예요. 장애인 인권강사입니다. 근데 장애인은 왜 밤에 학교에 다닐까요?

    아이 1 낮에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놀릴까 봐요.

    옆에 계신 선생님은 아니라고 하시는데요(웃음). 왜 그럴까요?

    아이 2 계단이 많아서요.

    정답을 맞힌 친구들에게 치킨이 선물로 갑니다. (치킨 그림을 주며) 맞아요(웃음).

    아이 3 화장실도 가기 어려워요. 엘리베이터도 없고요.

    맞아요. 여러분이 나중에 이런 부분을 고쳐주면 좋겠어요. 그럼 제 소개를 마저 할게요. 저는 별명으로 불리고 싶어요. 힌트는 밀짚모자예요. 일본 만화 주인공이고, 생김새가 다른 친구들을 잘 지켜줘요. 맞아요. ‘원피스’ 주인공 루피예요. (치킨 그림을 주며) 저도 친구들에게 장애가 있건 없건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자, 옆에 있는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까요?

    김재연(이하 김) (칠판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저는 김재연’이라고 표현하자 아이들이 따라 읽음.)

    김재연 선생님은 불리고 싶은 이름이 따로 있을까요?

    (칠판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섹시미녀’라고 표현하자 아이들이 따라 읽음.)

    섹시미녀로 불리고 싶대요(웃음).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요?

    (칠판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양념치킨’이라고 표현하자 아이들이 따라 읽음.)

    저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섹시미녀에게 궁금한 점이 있나요?

    아이 4 닭강정도 좋아하나요?(김씨가 “아니요”라고 답함.)

    아이 5 왜 섹시미녀란 별명을 지었나요? (김씨가 “내 몸이 섹시하니까”라고 답함.)

    아이 6 몸이 많이 불편한가요?(김씨가 “아니요”라고 답함.)

    섹시미녀도 여러분과 같죠? 본인은 몸이 불편하지 않대요. 여러분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니죠? 자, 그럼 지금부터 장애인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솔직하게 말해 봐요.

    아이 7 불쌍해 보여요.

    그럼 섹시미녀 선생님께 물어보죠.

    (뭔가를 말했지만 알아듣기 어려움.)

    섹시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분이 더 불쌍하대요. 그럼 여러분이 말한 다른 감정도 물어보죠. 섹시미녀는 슬픈가요? 힘든가요? 아니라고 하네요. 여러분이 섹시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건 어른들이 장애인을 보고 ‘에고, 불쌍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행동한 어른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꾸벅). 자, 그럼 2교시에 만나요.

    몇몇 친구가 쉬는 시간에 섹시미녀는 언제부터 그런 장애를 갖게 됐는지 물어왔어요.

    태어날 때부터(아이들이 알아들음).

    이제 잘 알아듣네요. 장애는 자기가 선택하는 게 아닌데도 장애인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건 어려운 말로 ‘편견’이라고 해요.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사고로 장애인이 되거든요.

    아이 8 귀에 뽀뽀하면 고막이 터져서 청각장애인이 돼요(아이들이 야유 보냄).

    글쎄요. 그런데 친구 생각이 잘못됐다고 해서 친구를 비난하면 안 돼요. 틀린 생각은 고치면 돼요. 자, 연극을 시작할 테니 들어봐요. 지하철역에 할머니와 섹시미녀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아가씨, 괜찮아? 이리 앉아. 더운데 왜 돌아다녀. 교회 다녀? 하나님 믿어야 구원받지.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맛있는 거 사먹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좋은 모습일까요?

    아이 9 할머니가 섹시미녀를 불쌍하게 생각해 돈을 준 거예요.

    # 차별하면 안 돼요!

    “함께 사는 세상 만들어요” 교실로 찾아간 ‘섹시미녀’

    장애인이 평소 직면하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위). 칠판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아이들과 소통하는 김재연 장애인 인권강사.

    네. 그럼 섹시미녀한테 물어볼까요? 서 있기 불편했나요? (“아니요”라고 답함.) 돈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나요? (“아니요”라고 답함.) 여러분, 섹시미녀를 도와주려는 할머니 마음은 좋지만 그 방법은 틀린 것 같아요. 도움 받은 사람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자, 그럼 다른 연극을 해봐요. 쉬는 시간에 다섯 모둠(조)을 만들어 이름을 붙였죠? 정덕 젠틀맨, 양념치킨 집, 연두색 양념통닭….모둠 이름이 다양하네요. 여기 주사위를 던져서 위에 나온 색과 같은 색종이를 가진 모둠이 앞으로 나오는 거예요. 각 모둠별로 색종이를 나눠줬는데, 그 안에는 섹시미녀가 경험하는 일들이 적혀 있어요. 여러분이 대처를 잘하면 섹시미녀가 치킨을 줄 거예요. (주사위를 던진 뒤) 주황색 모둠 나와주세요.

    자, 이제 옷을 사러 가게에 갔다가 주인에게 쫓겨나는 상황으로 들어갑니다. 가게 주인이 섹시미녀를 좋지 않게 쳐다보며 다음에 오라고 말하네요. (아이들이 “도와줘! 그래야 양념치킨을 먹을 수 있다고!”라고 소리치지만 주황색 모둠 아이들은 돕지 않음.) 에고, 섹시미녀가 쫓겨났네요. 섹시미녀를 도울 친구들이 나와주겠어요?

    아이 10, 11, 12, 13, 14 차별하면 안 돼요! (앞 상황을 재현하자 아이들이 가게 주인에게 말함.)

    섹시미녀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박수 쳐주세요. 치킨을 줄게요. 도와주니까 어떤가요?

    아이 13 기뻐요!

    섹시미녀도 기쁘대요. 섹시미녀는 그냥 걷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웃을 때도 차별을 느낀대요. 섹시미녀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는데 문을 닫으면 될까요?

    아이 15 기다려줘요. 닫힘 버튼을 누르지 말라고 해요!

    여러분이 도와주면 섹시미녀가 행복할 겁니다. 여러분, 섹시미녀를 만난 기분이 어때요?

    아이들 좋아요!

    섹시미녀도 여러분이 함께해줘서 고맙대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봐요. 만들어주실 건가요? 자, 그럼 박수 치면서 수업을 끝내요. 감사합니다(웃음).

    아이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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