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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과 광기

김용균 감독의 ‘더 웹툰 : 예고살인’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과 광기

위험과 공포가 도처에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의 하루는 ‘자각하지 못하는 공포’의 연속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버스나 전철에 올라서는 직장인을 회사로 이끄는 힘이 해고와 실업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경쟁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입시에서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라는 엄청난 공포를 밟고 학생들은 학교로 향하고, 부모들은 어린 자식들을 부지런히 학원으로 등 떼민다.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고지서에 찍히는 납부금 액수는 병이나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한 가족의 삶이 붕괴될 수 있다는 공포의 크기는 아닐까. 매일 밤 우리는 ‘살인진드기’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병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누구를 덮칠지 모르는 ‘묻지마 살인’의 공포로부터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을 갖고 비로소 몸을 침대에 누인다.

일상화한 공포는 현대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원천이 된다. 대중의 공포는 정치권력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이데올로기는 근본적으로 공포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선거전에 나선 정치인들은 흔히 “상대 세력이 집권하면 끔찍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공포심을 부추김으로써 표를 얻는다. 금융시장에선 시장의 불안을 대면한 경제주체의 ‘대박의 꿈’과 ‘쪽박의 공포’야말로 유일한 작동원리다. 위험사회 속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과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보험시장이 파놓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이윤의 샘물이 돼왔다. 하물며 특정 브랜드의 패딩 점퍼를 광풍처럼 유행시킨 중고교생들의 ‘또래압력(peer pressure)’조차 ‘이 옷을 입지 않으면 집단으로부터 낙오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과 광기
공포가 돈이 되고 상품이 되는 시대

문화 산업에서도 공포는 돈이고 상품이다. 영화는 적대국과 테러단, 유령, 좀비, 귀신, 살인마,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같은 공포를 팔아왔다. 그중에서도 공포영화는 주로 초현실적 존재나 세계를 등장시켜 객석을 비명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장르가 됐다.

그런데 공포가 일상인 시대, 공포영화가 흥행 전선에서 벌이는 전투는 힘겨워 보인다. 공포영화가 파는 공포보다 스크린 바깥에 현존하는 공포가 일으키는 전율과 자극이 훨씬 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 흥행작 ‘월드워Z’처럼 전염병, 외계인, 테러리스트, 좀비, 이상기후, 물난리 등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가 현실을 반영한 사실상의 공포영화로서 기능하는 마당에 공포영화 속 귀신, 악령 같은 초현실적 존재나 세계는 차라리 우스워 보인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침체는 오싹하게 소름끼치는 한국형 귀신을 못 만들어낸 데도 그 원인이 있거니와, 공포가 일상이고 장르인 시대에 더는 생존력을 갖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인 액션 스릴러 속 흉악범이나 연쇄살인범이 피 흘리는 귀신보다 훨씬 더 무섭다.



이런 와중에 새로 등장한 한국 영화 ‘더 웹툰 : 예고살인’(‘더 웹툰’)은 더는 ‘끼익끼익 대는 불쾌한 음향’과 ‘관절을 뚝뚝 꺾으며 등장하는 귀신’이란 진부한 표현을 자제하고 웹툰과 이야기에 착목함으로써 공포영화의 딜레마를 돌파하려고 한 작품이다. 인기 작가의 인터넷 연재 웹툰대로 일어나는 잔혹 살인사건의 비밀을 소재로 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웹툰 편집장이 사무실에서 끔찍한 사체로 발견된다. 아무런 침입 흔적이 없어 모두 자살이라 결론 내리지만, 담당 형사 기철(엄기준 분)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그리고 편집장이 연재하려고 준비 중이던 인기 작가 지윤(이시영 분)의 미발표 웹툰 내용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웹툰에는 아무도 몰랐던 편집장의 어린 시절 충격적인 개인사까지 그대로 실렸다.

이를 기괴하게 여긴 기철이 사건을 조사하고, 작가인 지윤에게 진실을 추궁하는 와중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중년의 장의사(권해효 분)가 감전사한 시신을 수습하다 괴이한 죽음을 당한 것. 역시 살해장소와 시간뿐 아니라 시신의 모양과 위치까지 한 치도 틀리지 않은 그림이 지윤의 웹툰 속에 있다.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지윤은 자신 역시 끔찍한 악몽과 환영에 시달리는데, 형사들의 심문에 자신의 작품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며 실제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진실 공방이 계속되던 중 기철의 수사 파트너였던 후배 형사가 연쇄 죽음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된다. 기철은 지윤이 인기를 얻었던 전작 웹툰까지 조사하다가 ‘예고살인’이 이번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지윤이 과거 벌어진 사건의 한가운데 있던 의문의 한 소녀를 만났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결국 지윤은 자신의 웹툰에 얽힌 충격적인 고백을 시작한다.

우리 안에 숨겨진 욕망과 광기
현실의 공포와 경쟁하는 공포영화

‘더 웹툰’은 최근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이야기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원천인 웹툰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발상이 돋보인다. 영화 중간중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감각적인 웹툰 영상을 삽입함으로써 과거 음향과 귀신 형상으로 일관하던 한국 공포영화의 족쇄로부터 벗어났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어느 공포영화보다 논리적인 틀을 가진 이야기가 돋보인다. 초현실적인 현상과 극중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장인물의 망상과 환영을 깔끔하게 구분하면서 매끄럽게 연결했다.

‘더 웹툰’은 결국 숙명처럼 짊어진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다른 이들을 해할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인생들의 이기심과 죄의식이 빚어낸 파국적인 결과를 그려낸다. 주인공인 웹툰 작가는 성공과 이야기를 향한 욕망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공포는 우리 안의 욕망과 죄의식이 연주하는 불길한 판타지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더 웹툰’은 정통 공포영화라기보다 드라마 혹은 스릴러에 가깝다. 이제 더는 공포영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현실의 공포와 경쟁해야 하는 공포영화의 싸움이 어딘지 힘겹고 가련해 보인다.



주간동아 894호 (p70~71)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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