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4

2013.07.01

변하는 것이 어디 꽃 빛깔뿐이랴

산수국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7-01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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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는 것이 어디 꽃 빛깔뿐이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곱지 않고 의미 없는 식물이 없지만, 산수국은 특별한 설렘을 줍니다. 신비스러운 남빛 혹은 보랏빛 꽃이 좋고, 하늘을 반쯤 가린 숲에서 무리지어 피어나는 모습은 좋은 풀, 멋진 나무를 수없이 보고 다니는 제게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멋진 자연 풍광 가운데 하나지요.

    사실 산수국은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자랍니다. 꽃이 무리지어 핀 모습을 보고,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조금 큰 풀로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다 자라야 높이 1m를 넘지 못하는 분명 작은큰키나무(소교목)입니다. 꽃은 한여름에 핍니다. 새로 난 가지 끝에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둥글고 큰 꽃차례(산방화서)가 달리지요.

    산수국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성화(有性花)와 무성화(無性花)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접시처럼 생긴 둥근 꽃차례의 가운데 쪽은 꽃잎이 퇴화되는 대신, 암술과 수술이 발달한 작은 유성화가 달리고 그 가장자리에 지름 1~3cm의 무성화가 달린다는 겁니다. 화려한 무성화를 보고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이 찾아오면 기능적인 꽃인 유성화에서 결실이 이뤄집니다. 말하자면 꽃들이 효율적으로 분업을 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수국은 야생 산수국에서 유성화를 없애고 화려한 무성화만 가득 만들어 공처럼 크고 둥글게 보이는 화려한 식물입니다. 물론 결실은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수국속(Hydrangea)은 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알려진 종류여서 꽃 빛깔 혹은 꽃잎 모양에 따라 수백 가지 원예품종이 나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요.

    산수국은 한자로 산수국(山水菊)으로 씁니다. 말 그대로 산에서 피는, 그리고 물을 좋아하는 국화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입니다. 영어로는 마운틴 하이드랜지어(Mountain Hydrangea)라고 합니다. 산수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꽃 빛깔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의 아주 큰 산수국 무리에서 꽃 빛깔의 변화를 조사한 일이 있는데, 그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에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마음 같아선 수십 가지 품종이 나올 법하지만 이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지요. 빛깔의 변화를 고정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흰색으로 피기 시작한 꽃은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색 기운을 담더니 나중엔 자주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토양 조건에 따라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하면 남빛이 더 강해진다고 하지요. 이러한 꽃의 특성 때문에 인위적으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 빛깔을 원하는 대로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입니다.

    한방에선 수국류, 그중에서도 수국의 기본 종이 되는 종류를 수구화(繡毬花) 또는 팔선화(八仙花)라고 부르며 뿌리와 잎, 꽃 모두를 약재로 씁니다. 심장을 강하게 하는 효능을 가졌으며 학질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에 처방하고 열을 내리는 데도 많이 쓰지요.

    일본에선 수국차라고 하여 우리나라 산수국과 비슷한 잎으로 만든 차가 있습니다. 잎에 단맛이 있어 농가에서 부러 재배하여 만들기도 합니다.

    산수국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건 우거진 숲에서 그들이 점차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희귀식물은 아니지만 한두 곳 정도에서는 멋진 산수국 군락이 두고두고 유지되도록 숲의 변화가 약간 더딜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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