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2013.06.24

수백 송이 아름다운 ‘십자가’ 달렸네

산딸나무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6-24 09: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수백 송이 아름다운 ‘십자가’ 달렸네
    6월 숲의 주인공이 단연 산딸나무라는 데 크게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사실 숲이 아니어도 이즈음엔 공원이며 길가며 정원에 산딸나무 꽃이 지천입니다. 아무리 나무에 무관심한 목석같은 이라도 나무 전체를 모두 하얗게 뒤덮은 산딸나무 꽃의 특별하고도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고 눈길을 주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산딸나무는 층층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작은큰키나무입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줄기가 나는 모양이나 잎 생김새가 층층나무 또는 말채나무와 아주 비슷하지요. 하지만 꽃이 피면 달라집니다. 다른 두 나무는 꽃이 작아서 쟁반 모양을 만들어 모여 달리는 데 비해 산딸나무는 딱 보기에 어린아이 주먹만한 큼직하고 개성 있는 꽃들이 달리니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한 송이 꽃이라고 인식한 것은 식물학적으로 보면 수십 송이 꽃이 모인 꽃차례입니다. 산딸나무 꽃은 아주아주 작습니다. 이 작은 꽃들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 달리는 게 지름 1cm 남짓이니, 가뜩이나 우거진 초여름 숲에서 눈에 잘 띌 리 없지요. 그래서 생겨난 부분이 바로 흰색 포(苞)입니다. 흔히 꽃잎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이지요. 작은 꽃잎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포가 대신해 그 어느 나무보다도 크고 화려한 꽃나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다른 특징을 개발해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멋진 성공을 거둔 나무인 셈이지요. 만일 누군가가 산딸나무 꽃잎이 몇 장이냐고 물어온다면 네 장이라고 하지 마세요. 꽃잎이 아니라 포가 네 장이니까요.

    꽃이 지고 나면, 아니 꽃가루받이가 잘 이뤄진 순간부터 포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꽃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둥근 부분이 열매로 익어갑니다. 열매 역시 작은 열매가 모여 산딸기 같은 하나의 둥근 열매모임을 만드는데, 하늘을 향해 달린 딸기 같은 그 모양이나 붉은 빛깔이 꽃 못지않게 멋지지요. 물론 먹어도 됩니다. 딸기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산행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산딸나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열매의 모양이 산에서 자라는 큰 나무에 딸기 같은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붙은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선 들매나무, 박달나무, 쇠박달나무, 미영꽃나무라고도 하지요.

    물론 이리 멋진 모습이니 조경수로 많이 씁니다. 전 세계적으로 몇 종류의 산딸나무가 있어 서양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산딸나무 꽃빛은 흰색이지만 더러 그 끝에 분홍빛이 돌기도 하고 이를 잘 선발하거나 열매 크기를 아주 큼직하게 하여 가을까지 아름다움을 즐기도록 조경수 품종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한때는 이 나무가 예수의 십자가를 만든 나무라고 해서 파동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는 믿음 대신 잘못된 외형을 좇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듯 틀린 이야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가 살았던 그 더운 지방의 나무가 우리나라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신의 뜻은 이러한 쉬운 변심에 진실한 마음이 중요함을 알리듯, 포 네 장을 열 십(+) 자 모양으로 만들어 나무 한 가득 수백 송이의 십자가를 달아놓았습니다. 굵은 나무를 켜서 대패질한 나무 표면 역시 희고 깨끗합니다. 목재도 질기므로 옷감을 짜는 데 필요한 북을 만들거나 농기구, 자루, 망치, 절구공이 등을 만들 때 씁니다. 꽃과 잎을 야여지라고 해서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지혈과 수렴 기능이 있다고 하네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