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2013.06.17

수학은…커피 한 잔이다

짧은 시간에 집중력 회복과 기분 전환…음악·미술 등 예술과도 일맥상통

  • 김정희 작가,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저자 neochini@daum.net

    입력2013-06-17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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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은…커피 한 잔이다
    짧은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다른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일을 하려고 하니 건강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차례대로 장염에 걸린 것이다. 큰아이가 회복하니 둘째아이가 아프고, 뒤이어 막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밤에 자다가 토해서 계속 이불을 갈아 누이느라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했다. 산더미 같은 이불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글을 쓰려고 앉았다.

    이런 나에게 수학이란 무엇일까. 결혼하고 남자아이 셋을 낳아 키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해 사회적 커리어를 제대로 쌓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정체성은 언제나 소설가다. 아이들이 어려 잠시 멈춰 있을 뿐이라 여기며 늘 와신상담하는 자세로 산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몇 가지로 정해졌다.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는 외의 시간은 모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몰두한다. 손에 항상 책을 들고 살며, 부엌일을 할 때도 김치냉장고 위에 책을 세워둔다. 설거지할 때는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켜놓는다. 아홉 살인 큰아이가 “엄마는 책이 그렇게 좋아요?” 하고 물어볼 때도 있다. 무슨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열심히 살지만, 이런 나도 주기적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그럴 때 나는 수첩에 적어놓은 수학 문제들을 푼다. 수학 문제 하나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생활의 쉼표가 돼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기분이 새로워진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수학은 커피 한 잔처럼 자기를 발견하고 즐겨주기만을 기다린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에는 피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피싱(오줌싸개)이라고 놀림받는 소년이 나온다. 소년은 별명을 극복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그리고 3.14로 시작해 소수점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을 외워 자기 이름을 파이(π)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파이는 그 숫자에 아무런 규칙이 없어 숫자를 외우는 놀이에 적합하다. 파이를 보통 활자로 10억 자리까지 인쇄하면 길이가 1900km가 넘는다고 한다. 매년 3월 14일을 파이데이라고 부르는데, 그날을 기념해 세계적으로 파이 값을 외우는 행사가 열린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수학적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한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육각형 방이 끝없이 이어지는 바벨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수학자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보르헤스는 많은 소설을 수학적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보르헤스를 읽는 것은 곧 수학, 철학을 읽는 것과 같다. 언어로 수학적 구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예술과 수학은 매우 가깝다. 음악은 비례라는 개념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수학을 잘하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것도 수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그림은 비례와 구도, 소실점 같은 수학적 개념을 토대로 그려진다. 화가 중에는 수학적 개념을 그대로 묘사한 네덜란드 판화가 에스허르가 유명하다. 에스허르의 기하학적 작품들은 보르헤스 소설에 무척 잘 어울린다. 평면 속에 있던 도마뱀은 3차원 공간으로 튀어나와 돌아다니다가 다시 2차원 종이 속으로 사라진다. 올라가는 것이 곧 내려가는 것인 이상한 계단도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이미 수학적 경험을 충분히 하며 산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스마트폰을 열려고 매일 수십 번씩 암호 패턴을 그린다. 누구나 수를 계산하고 수학적 환경에 둘러싸여 수학적 행위를 한다. 우리 뇌는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분류하고 저장하고 삭제한다. 그럼에도 수학이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미적분, 삼각함수, 통계라는 얘기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린다. 수학에 대한 공포가 트라우마가 돼 우리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칠판 앞에서 우물쭈물하다 선생님한테 뺨을 맞은 이후 수학 공포증을 앓았다. 중학교에 올라가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 조금씩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알고 보니 수학시간에 뺨 맞는 일쯤이야 별일도 아니었다. 시험성적 때문에 혼나서, 수학공부를 강요받아서 수학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것이다. 수학공부 목표가 성적을 올리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근원과 과학의 미래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수학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은 모든 수학자, 과학자가 말하듯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무렇게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세밀한 질서를 지녔다. 우리가 수학을 알게 된다면, 인류의 근원과 과학의 미래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스마트 혁명 이후 많은 이가 집중력을 잃어간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같은 책에서는 인간이 고유 능력을 잃어간다고 경고한다. 책 읽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3분 이상 집중하기도 어려워한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손으로는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런 정보는 책을 읽은 후 체계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는 정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저 넘기고 또 넘기고 사라지는 정보일 뿐.

    수학은 집중력 훈련에 더 없이 좋은 도구다. 수학으로 뇌를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 수학을 다시 시작하는 방법은 쉽다. 마음만 먹으면 된다. 수학 교양서들을 통해 수학의 기본 역사와 수학자들의 생애, 수학의 개념을 공부한다. 책을 읽다 보면 원시인의 동굴이나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고 피보나치수열, 뫼비우스의 띠, 이진법, 프랙탈 등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 수준의 문제집을 한 권 마련한다. 인수분해가 어렵다면 1차 방정식부터 시작해도 좋다. 가장 쉽게 풀 수 있는 지점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단계를 올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고3 수준의 문제집도 수월하게 풀 수 있다. 작은 수첩을 하나 마련해 수학 문제를 몇 개 써가지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풀어본다. 스마트폰을 매만지는 대신 말이다. 이것이 삼형제를 둔 엄마가 수학을 알아가는 방법이다. 아이를 낳고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시절도 있었다. 수학은 내가 좀 더 많은 책을 읽게 도와주고, 꿈을 잃지 않게 도와줬다.

    기운을 차린 아이들이 뛰어놀고 엄마를 부르기 시작하니 더는 원고를 고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다 나았고, 마지막 문장도 쓰게 됐으니 이제야 한시름 놓인다.

    수학은…커피 한 잔이다
    김정희

    1973년 강원 화천 출생.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7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 ‘인류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학 아라비안나이트’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공저) 등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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