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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최의 ‘남자, 여자, 그리고 섹스’

‘아내와의 섹스’를 애도하고 찾은 사랑

사별 남편의 순정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아내와의 섹스’를 애도하고 찾은 사랑

노현희(57·가명) 씨가 처음 찾아왔을 때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었다. 동그란 테의 안경을 걸친 납작한 코, 오른쪽 입술을 비대칭적으로 치켜 웃는 그녀는 학자풍의 인상이었다.

“선생님, 제 문제가 아닌데 당사자 대신 제가 상담받을 수 있을까요. 제 사촌남동생 문제입니다. 동생은 4년 전 사별했어요.”

그녀는 예의 바르게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사촌남동생 아내는 간암이었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동생은 아내와의 마지막을 함께하려고 23년 동안 몸 바쳐 일한 직장을 그만뒀다. 동생은 꽤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자 동생은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아내를 간병했다.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자 동생은 병원에서 아내를 데리고 나왔다. 2개월 여정으로 파리, 런던, 베를린, 빈을 여행한 뒤 돌아왔고 그해 10월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노씨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동생은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젠 올케를 보내줘야 해요. 동생이 행복하길 바라요. 제가 석 달 전 억지로 소개팅을 주선하고 내보냈어요. 동생이 데이트를 시작한 것 같더라고요. 드문드문 만나는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요. 표정도 없고요. 선생님이 좀 물어봐주시겠어요? 아마 여기엔 오지 않을 거예요. 전화나 문자메시지 상담은 안 되나요?”

새 사람 만나도 아내 생각뿐



면접 상담이 원칙이지만 노씨의 간절한 부탁으로 고민 끝에 승낙했다. 어쩌면 죽은 아내에게 지극했던 노씨 사촌동생에 대한 호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노씨 동생 김하중(55·가명) 씨와 채팅 상담을 시작했다. 김씨의 외모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보내오는 글은 매우 단정했고 필력도 뛰어났다. 글로 짐작건대, 그는 굉장히 책을 많이 읽은 듯했다. 철학이면 철학, 사회학이면 사회학 등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다.

조심스레 새로 만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분은 지적이고 성숙한 여성입니다. 여성적 매력도 넘치고요. 가끔씩 그분에게 성적 욕망이 일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싸늘해집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제게 과분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그분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감정과 욕망을 일으켜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일었다가도 곧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분도 저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제 태도에 변화가 없자 실망하고 상처받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을 계속 붙잡는 것은 그분에게 못할 짓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그분은 이후에도 몇 번 제게 다시 시작해보자는 의사를 표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마음으로 그분의 행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그의 글을 꼼꼼히 읽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냈다.

“혹시 아직도 견디기 힘드신지요? 내면적으론 마음의 상을 치르는 기간이 필요한데, 애도 기간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가졌습니다. 혼불로 화장해 가슴 납골당에 모셨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경험하거나 느낀 것이 있으신지요.”

“음, 오는 것은 가게 돼 있는 법이지요. 그래도 문득문득 아내 얼굴과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을 때의 웃음소리,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제 소매를 꼭 잡고 걷던 느릿하고 지친 걸음이 떠오릅니다.”

“그때 무슨 느낌이었지요?”

15분을 기다렸는데도 답이 오지 않은 채 상담이 끝났다. 면접 상담이 아니어서 김씨의 표정과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김씨는 감정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교묘히 피해갔다. 노씨의 노심초사는 현실화됐다. 김씨가 만나던 여성과 완전히 결별했던 것이다. 상담 방향이 모호해졌다. 상담이 중반을 넘어서자 김씨는 내게 사변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왜 꼭 이유를 찾거나 해결하려 하시나요. 떠난 아내를 가슴에 품고 평생 사는 일이 ‘옳고 그름’을 적용할 수 있는 명제인가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죽음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본 적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흔적이 마음속에 전혀 없습니까.”

“음, 어, 있습니다. 지금도 아픕니다.”

허를 찔린 것 같았고, 가슴 한 켠이 쑤셔왔다. 뭔가에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이 두려웠지만 꼭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김씨와의 대화에서 니힐리즘, 허무가 느껴졌다. 서로 질문이 오가는 횟수가 늘어나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김씨에게서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쌍방적인 전이 역전이었다. 그와의 채팅 상담이 끝나면 한동안 멍하니 앉아 마음속에 이는 사념을 곱씹었다. 가랑비에 속옷 젖듯, 어느 틈엔가 그의 방식이 내 안의 상처를 힐링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그렇다면 그는?

상담이 후반기에 접어든 어느 날, 오전 내내 마음이 뒤숭숭해 멍하게 허공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수시로 심장이 격하게 뛰며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문득 김씨와 상담하는 동안 한 번도 섹스에 대한 질의응답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은 꼭 물어봐야 했다. 상담가와 피상담자가 전도된 듯한 희한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고 성문제를 물으려면 상대가 방어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적인 질문이어야 한다. ‘오! 이 질문을 한다면 그의 벽이 뚫리지 않을까?’ 상담하면서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극단적으로 위험한 시도였다. 지금까지의 상담을 모조리 망칠 수도 있었다. 채팅창이 켜지고 그가 로그인하는 것이 보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자판을 두드렸다.

“김하중 씨, 당신이 만약 저와 정사를 벌였다면 어떤 방식이었을까요?”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그때 화면 위로 글자가 그려지듯 써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두 눈을 부드럽게 묶습니다. 당신의 입술을 벌리고 내 입속에 머금은 적포도주를 흘려 넣습니다. 포도주를 삼킬 때 꿈틀대는 당신의 목덜미를 핥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두 손을 위로 올려 침대에 묶고 꼼짝없이 누워 있는 당신 나신의 굴국을 따라 손등으로 쓸어내리겠습니다. 발가락에 다다르면 느릿느릿 끈적끈적하게 빨 것입니다. 하나하나. 그리고….”

아내와 나누던 방식으로

나는 숨이 가빠졌고 눈앞이 혼미해졌다. 그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다시 화면에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와 어떠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까?”

소름이 끼쳤다. 한 자 한 자 키보드를 눌렀다.

“당신이 아내와 나누던 방식으로.”

화면의 커서만 검은색 눈을 깜박이며 내 쪽을 노려봤다. 더는 답변이 없었다. 그다음 날 노씨가 전화를 걸어와 간결한 어조로 상담 중단을 알렸다. 너무 당황해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김씨와의 상담은 그렇게 미완 상태로 종결됐다.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거리에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질 즈음 청첩장 한 장이 배달됐다.

청첩장 맨 아래쪽 손글씨 한 줄이 눈에 띄었다.

‘제가 그때 말씀드린 그 방식이 바로 제 죽은 아내와 사랑을 나누던 방식입니다. 고맙습니다. 김하중.’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정신적 기억, 육체적 기억 모두를 떠나보내는 것이다. 김씨 경우는 아내와의 섹스 기억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놓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와 상담을 시작할 당시 아내에 대한 김씨의 애도는 절반만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다른 여성으로부터 “당신이 아내와 나누던 방식으로 섹스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자 김씨는 혼란과 두려움을 느꼈고, 일방적으로 상담을 중단했다. 굳이 상담을 진행하지 않아도 감정의 물꼬가 트인 상태에서 김씨라면 나머지 과정, 즉 문신처럼 각인된 아내와의 섹스에 대한 애도를 충분히 잘 해냈을 것이다.



주간동아 889호 (p38~39)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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