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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은 어쨌든 하나’ 부시 기념관의 힘

미국민들 찬반 평가·성향 관계없이 객관적 ‘역사’로 여겨

‘미국은 어쨌든 하나’ 부시 기념관의 힘

‘미국은 어쨌든 하나’ 부시 기념관의 힘

부시 기념관의 정면.

5월 1일(현지시간) 오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기념관(박물관 및 도서관·이하 부시 기념관)이 세워진 텍사스 주 댈러스 시 서던메소디스트대학(남감리대) 입구에서 일군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 운동가로 보이는 성인 남녀 6, 7명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부시를 체포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외쳤다. 일반인 공개 첫날 부시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반(反)부시’ 홍보전임에 분명했다.

부시 기념관에 들어가기 전 교정에서 만난 이 대학 2학년생 카일 씨도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역사상 가장 비효율적인 전쟁이라 생각해왔고, 학교 안에 기념관이 들어섰다고 그 생각이 바뀌진 않았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몇몇 여학생도 “학교 홍보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기념관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댈러스 남감리대서 개관…13번째 정부관리

이처럼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와 젊은이에게 부시 전 대통령은 여전히 인기가 없다. 무엇보다 그는 재임 8년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재정을 낭비한 주범으로 비난받는다. 그와 동시에 부자들이 원하는 감세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각종 금융 규제 완화로 월가의 방종을 부채질해 결국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했으며 연방정부를 재정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 부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모인 가운데 4월 25일 열린 부시 기념관 헌정식은 부시에 대한 재평가 논쟁에 불을 지핀 듯했다.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인 부시 전 대통령은 5월 1일 오전에도 지역 내에서 선발한 어린 학생 43명과 기념관의 첫 문을 열었다.



이른 오전부터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관람객이 줄을 이어 주차장에 차를 대기 어려울 정도였다. 90대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하루에만 미국인 2000명가량이 부시 기념관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참석한 헌정식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앞다퉈 부시 기념관을 소개하면서 부시 전 대통령의 공과를 함께 조명했다. 5월 1일에도 C-SPAN과 CBS 등 현지 언론이 일반인 공개 첫날 모습을 중계했다. 과연 부시 기념관의 무엇이 미국인으로 하여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하던 ‘실패한’ 부시 전 대통령을 다시 돌아보게 한 것일까.

“나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여러분 말을 듣고 있고 이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곧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관람객들과 함께 산뜻한 연황토색 석회암 건물 1층에 자리한 박물관에 들어서자 부시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9·11테러 사흘 뒤인 2001년 9월 14일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을 찾아 세계인에게 외쳤던 유명한 ‘메가폰 연설’이다.

4052.4㎡ 넓이의 박물관을 찾은 미국인들은 흉물스럽게 무너진 빌딩의 철골 잔해와 부시 전 대통령이 잡았던 베이지색 메가폰을 직접 보며 12년 전 충격을 다시 떠올리는 듯했다. 40대 흑인 여성 재닛 롱(부동산 관리업)도 그중 한 명이었다.

‘미국은 어쨌든 하나’ 부시 기념관의 힘

5월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 서던메소디스트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기념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부시 전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관람하고 있다.

“당시 모든 미국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소통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하나였죠. 9·11테러는 미국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고, 돌아보면 잘 대처한 것 같습니다.”

공화당의 아성인 텍사스 출신이지만 평생 민주당원인 롱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부시 전 대통령의 가치를 지지한다”는 의외의 평가를 내놨다. 국난을 맞아 모두가 하나였던 과거를 기억나게 하는 것. 부시 기념관이 미국인의 관심을 끄는 첫 번째 비결이다.

최신 정보기술(IT)이 제공하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관람객과 과거를 접속시키는 것이 두 번째 흥행 요소다. ‘결정의 순간 극장(decision points theater)’ 코너를 찾은 관람객은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처했던 네 가지 중대 결정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

기자와 함께 이라크 전쟁 개전 결정에 참여한 관람객 20여 명은 4분 동안 터치패드 방식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백악관과 미국 중앙정보국(CIA) 참모들의 동영상 브리핑을 받았다. CIA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한 증거가 있다고 했고, 간간이 ‘긴급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달했다. 관람객들은 ①유엔을 통한 제재 ②연합군을 통한 개전 ③방관이라는 세 가지 옵션 가운데 ②번을 다수결로 선택했다. 이어 2003년 실제로 ②번을 선택했던 부시 전 대통령이 동영상에 등장해 “이라크는 번번이 유엔 제재를 무시했다”며 개전 이유를 설명했다.

쌍방향 소통·논쟁 등 관람객 인기몰이

재임 시절의 역사적 평가 논쟁에 정면 대응한다는 점이 마지막 흥행 요소라고 할 만했다. 9·11테러 전시관 바로 옆 ‘테러와의 전쟁’ 코너에서 상영하는 영상물은 “(이라크 내에서)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뒷날 드러난 CIA의 정보 오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후세인이 WMD 개발을 계속할 능력을 가졌던 사실은 확인됐다”고 항변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부 장관도 동영상에 등장해 “당신이 9·11테러 사건 당시 당국자였다면 이후 모든 날은 9월 12일이었을 것”이라며 부시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부시까지 43명의 전직 대통령 가운데 생전 또는 사후에 정부가 공식 관리하는 박물관이나 도서관 형태로 기념관을 세운 경우는 이번이 13번째라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민간 관리 형식으로 세운 기념관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아직도 평가가 엇갈리는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성황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미국인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보수나 진보라는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그의 모든 행적을 객관적인 ‘미국 역사’로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평가 논쟁이 끝나지 않은 불행한 대다수 한국 대통령의 기념관이 언제쯤이면 그저 지나간 역사의 일부분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부시 기념관을 나섰다.



주간동아 2013.05.13 887호 (p54~55)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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