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2013.05.13

김한길 석 달 내 승부수 던져야 산다

쇄신 꾸물대다간 민심 등 돌려…타이밍 놓치면 비주류 반격 빌미

  • 전예현 내일신문 정치팀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3-05-10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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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 석 달 내 승부수 던져야 산다

    5월 8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최고위원들이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있다.

    민주당에 ‘김한길호’의 닻이 올랐다. 5·4 전당대회(전대)에서 당선한 김한길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어깨에 제1야당의 운명이 걸렸다.

    민주당이 난파할 위기에서 새 지도부가 탄생했으므로, 오히려 과감하게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당 일각에서 나타난다. 탈호남·탈계파 특징이 전국정당과 새 정치로의 산뜻한 길을 열어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원론적 구호로는 유권자 마음 못 잡아

    하지만 김한길호의 순항 여부를 가늠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짧으면 초기 3개월 안에 운명이 결정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역대 지도부의 부침 과정과 최근 정치·경제 상황이 이런 예측을 뒷받침한다. 민주당 새 지도부가 탄생할 때마다 외친 정책정당, 전국정당, 민심과 소통하는 정당, 외부 인재 수혈 같은 원론적 구호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그나마 야권에 애정이 있는 층은 ‘피부로 빨리 느껴지는 혁신’을 민주당에 요구한다. 쇄신은 너무 당연한 과제이고,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는 얘기다.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가 느린 걸음으로 갈 수 없는 첫 번째 요인은 민심의 조급증이다. 정당은 정책과 시스템을 통해 변하는 것이 원칙적으론 맞지만, 최근 유권자들은 정치권의 변화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야권 지지층의 조급증이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변화를 요구하면서 주류 지도부를 뽑았다가 다시 비주류를 선택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정세균,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그리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김한길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민심은 끊임없이 민주당에 조속한 변화를 압박했다. 새 지도부에 눈길을 주다가도 성에 차지 않으면 등을 돌려버렸다.

    김한길 지도부에 비해 역동적인 전대를 통해 탄생했으나 결국 추락한 한명숙 지도부의 부침은 민심의 빠른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명숙 지도부 출범 초기인 2012년 2월 ‘내일신문’ 정례여론조사에서 새 대표 지지율은 56.8%에 달했다. 모바일 투표의 선풍적 인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새 지도부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다음 달인 3월 조사 결과, 한 대표에 대한 긍정여론은 56.8%에서 46.1%로 10.7% 포인트 떨어졌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민심이 흔들렸던 것이다. 공천에 대한 실망감, 야권연대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명숙 지도부는 지도력에 타격을 입었다.

    이후 6·9 전대에서 탄생한 이해찬 지도부도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에 부딪쳐 출범 몇 개월 만에 쇄신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후 민주당의 쇄신 주도권은 당 외부인이 중심을 이룬 ‘새로운정치위원회’에 돌아갔다.

    민주당의 수도권 한 다선 의원은 “지금 민주당은 총선, 대통령선거에 이어 재·보궐선거에서도 패해 난파선 처지”라며 “김한길 지도부가 이것저것 살피고 머뭇대다가는 가라앉을 것이므로, 선장(대표)의 쇄신 주도권 확보와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을 가늠할 기간이 앞으로 짧으면 3개월, 길어야 4개월이라고 내다봤다. 10월 재·보궐선거(재보선) 승패도 8월이나 9월쯤이면 점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설픈 통합은 기득권과 타협 불러

    김한길 석 달 내 승부수 던져야 산다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전 의원(왼쪽). 2012년 3월 2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선출된 한명숙 대표가 총선 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한길 지도부가 빠른 시간 안에 리더십을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야권 비주류’의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대부분은 이른바 ‘비주류 출신’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기반인 호남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강력한 계파를 갖추지도 못했다. 김 대표는 김대중 정부 탄생에 기여했지만, 그간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났다가 돌아왔다. 또 지난번에 이어 이번 전대 과정에서도 ‘김한길 계파’가 아닌 ‘비주류 연합군’의 지원을 받았다. 신경민(지역구 서울), 조경태 (부산), 양승조 (충청), 우원식(서울) 등 최고위원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췄다.

    비주류의 특징은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강력한 혁신 정책을 뒷받침해줄 지원 세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지닌다는 점이다. 즉 혁신 타이밍을 놓치면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반격은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다. 비주류가 혁신 주도권을 잡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반격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런 비주류의 딜레마는 김한길 대표처럼 비주류 출신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서 찾을 수 있다. 손 전 대표는 2010년 10·3 전대에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음에도 1위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그는 “비주류인 손학규의 당선은 민심이 민주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기득권 타파와 혁신을 주장했다. 2010년 말 여권의 예산 강행 처리를 비판하며 풍찬노숙도 감행했다. 그는 또 이듬해 4·27 재보선에서 분당에 직접 출마해 승리했다. 그러자 민주당 지지율이 치솟았다.

    “대중이 피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니 피를 보여줬다.”

    한 측근의 이 말은 당시 손 대표가 비주류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 지지율을 높이려고 약 6개월간 죽을 각오로 뛰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는 연말 야권통합 과정에서 당내 주류를 자부하는 호남 정치인과 일부 당원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고, 통합을 이룬 후에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던 그가 한계에 부딪친 것에 대해 민주당 복수 관계자들은 “환경적 요인+혁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비주류라는 특징 때문에 당내 다양한 세력을 껴안으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득권 세력과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고, 4·27 재보선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해 혁신을 밀어붙일 기회가 왔으나 그 기회를 놓쳐 새 흐름을 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교훈을 비주류 중심의 김한길호에 적용해보면, 새 지도부의 혁신 과제 수행은 시급하고도 무겁다. 어설프게 통합하려다가는 기득권과의 타협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점령군처럼 혁신의 칼을 휘두르다가는 당내 분란이 생길 수 있다. 민심의 요구를 빨리 수용해 쇄신 탄력을 받는, 타이밍 정치가 절실한 이유다.

    김한길 석 달 내 승부수 던져야 산다

    5월 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신구 지도부가 인사하고 있다.

    ‘안보 이슈’에 묻혀 민주당 존재감 약화

    마지막으로 두 방향에서 불어오는 ‘안풍’도 김한길 지도부의 속도전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조성된 ‘안보정국’과 ‘안철수 신당 창당 가능성’이 안팎에서 김한길호를 흔들 조짐이다.

    최근 안보정국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또 북한의 도발 움직임이 잇따르자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뚜렷하게 차별화해왔던 ‘남북대화와 평화 기조’가 여론으로부터 큰 힘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단호한 대처를 강조해온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고 있다. 내일신문·디오피니언 5월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63.5%를 기록했다. 전달 4월 조사에 비해 8.0%p나 올랐다. 정부 출범 초기의 불통 논란, 인사 파동 같은 악재는 ‘안보 이슈’에 묻혔다. 정부 여당을 견제해야 할 민주당의 존재감 자체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난달 재보선으로 원내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가능성도 민주당의 운명 시계를 빠르게 돌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안철수 가상 신당 지지율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4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을 가정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 안철수 신당이 30.9%로 가장 높았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30.7%, 15.4%였다. 한길리서치의 4월 26~27일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33.8%, 안철수 신당 27.7%, 민주당 9.6% 순으로 조사됐다. 60년 전통 야당의 지지율이 안철수 가상 신당에 대한 기대감의 절반 수준이라는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광속도로 변하는 여론 기다려주지 않아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입법과 토론이 필요한 거대 담론 및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끌고 가되, 민주당 내부 결단이 필요한 혁신 과제는 빨리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와 문재인 대선캠프 등을 고루 거친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혁신과 통합 노력이 빛을 발해야 민주당의 앞날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일각에서는 “60년 전통의 정당이 어떻게 몇 달 만에 변하느냐, 좀 기다려달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쇄신이 속도만 빨라서는 좋은 게 아니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유권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유권자들은 빠르게 정치 뉴스를 접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여론을 형성한다. 더구나 야권 지지층은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민주당에 회생 기회를 줬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어 그만큼 민주당의 변화를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짧아졌다. 민주당 김한길 새 지도부가 ‘쇄신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벼락치기…쓴소리…투사…뚝심…민주당 최고위 4인방, 알고 보면 ‘독한 사람’

    김한길 석 달 내 승부수 던져야 산다
    민주당 5·4 전당대회(전대)에서 선출된 최고위원은 신경민, 조경태, 양승조, 우원식 의원이다. 각각 서울, 부산, 충청, 서울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정치적으로 ‘중도’ ‘탈호남’ 최고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교적 패권주의 성향이 옅어 개혁성이 강하리라는 긍정적 여론이 있는 반면, 대중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이들의 숨겨진 일면을 살펴보면,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정말 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선임에도 1위를 차지한 신경민 최고위원은 ‘속도전 집중 능력’을 과시한다. 그는 이번 전대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지 1년 4개월 만에 당 지도부에 입성한 기록을 세웠다. 또 지난해 4·11 총선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서는 출마 결심이 늦어진 탓에 28일간의 벼락치기로 유권자와 직접 접촉했다. 그 대신 짧은 시간 안에 유권자 마음을 잡으려고 총선 막바지 14일간은 유세 차량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가하게 놀러 다닌다’는 말이 나올까 봐 사우나에도 제대로 못 가고, ‘돈 쓴다’는 소문이 돌까 봐 공공장소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도 조심했다.”

    그의 정계입문을 강력히 추천한 민주당 한 여성 정치인은 “신경민의 독한 면에 그 억센 야당 누님들도 놀랐다”고 말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의 ‘독한 기질’은 부산 3선 기록에서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그의 이는 수없이 부서졌다.

    “야당이라고 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때마다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뛰었다. 그렇게 몇 년 하니까 이가 부서지고 잇몸도 망가지더라.”

    조 최고위원은 한동안 ‘입바른 소리’로 당 주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일부 동료는 “가뜩이나 힘든 야당에서 서로 비판하지 말고 좋게 지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하는 게 충신이다. 듣기 좋은 말만 쏟아내면, 그건 간신이다. 충신으로 죽을지언정 간신으로는 살지 않겠다.”

    반면 그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매우 친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국회로 견학을 온 어린이들에게 그가 90도로 인사하며 안내하는 모습이 목격된 적도 있다.

    3선인 양승조 최고위원은 ‘선비’라는 별명에 걸맞게 점잖고 깨끗한 성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야말로 ‘무서운 투사’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세종시 백지화 논란이 일자, 그는 ‘세종시 지킴이’를 자초하며 22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또 휠체어에 앉은 채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단호한 목소리로 세종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당시 민주당 한 지도부는 “저러다가 정말로 양 의원이 죽을지도 모른다”며 단식 중단을 촉구했으나, 그는 “차라리 죽겠다”고 버텨 당에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의료진의 수차례 경고를 받고서야 단식을 중단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또 손학규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그는 ‘풍찬노숙 야외투쟁’에 동행하면서 매일 밤 전국을 오갔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새벽 3시 호남에 도착해 손 대표 옆에서 잠을 자고 몇 시간 뒤 일어나 지역구(충남 천안갑)로 향했다고 한다. 그가 이해찬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등 여러 성향의 지도부와 두루 친분을 유지하는 데는 이런 ‘인간적 품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김근태계’ 맥을 잇는 뚝심 있는 정치인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81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반대시위를 주도해 투옥됐고, 이후 반독재 투쟁을 이끌었다.

    17대 총선 서울 노원을에서 당선되며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정치인이 된 후에도 사석에서는 ‘김근태 형님, 인재근 형수님’과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거치면서 ‘김근태의 복심’으로 불렸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민주당의 개혁 정치인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핵심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민주주의 회복과 민생 해결이 김근태의 정신”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또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면서 1600km 거리의 강 도보순례 단장을 맡아 온몸으로 강 살리기를 외쳤다.

    한편 이들 최고위원 4인방의 과제는 우원식 최고위원의 발언을 빌려 요약할 수 있다.

    “야당 귀족주의는 계파 패권주의와 한 몸이다. 이것이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진짜 원인이다.” “야당 귀족주의를 넘어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단단한 민주당’ ‘현장 민주당’ ‘바로 선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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