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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즉생 승부수’ STX 살려낼까

강덕수 회장 STX조선해양 지분 포기…채권단 당분간 경영권 보장할 듯

  • 오상헌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자 bborirang@mt.co.kr

‘사즉생 승부수’ STX 살려낼까

‘사즉생 승부수’ STX 살려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

STX조선해양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인 3월 말.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퇴임을 앞뒀던 강만수 당시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만나 STX그룹 회생 방안과 채권단 지원계획 등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STX팬오션 처리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STX그룹이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시장에 내놓은 STX팬오션은 당시 매각 무산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강만수 전 회장은 제3자 매각이 여의치 않으면 산은이 사모펀드(PEF)를 조성해 STX팬오션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실무진에선 이미 물밑교감이 있던 사안이지만 최고위층에서 구두확약이 이뤄진 것이다.

STX조선해양을 채권단이 공동관리(자율협약)하기로 얘기가 된 것도 이때다. 그 대신 강덕수 회장은 대주주 책임이행과 고통분담을 위해 STX조선해양 보유 지분을 내놓겠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전제로 한 ‘백의종군’ 선언이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일궈

외환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 구조조정사(史)가 만들어낸 불변의 경험칙이 하나 있다. 바로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이다.



절체절명 위기에 내몰린 오너가 모든 걸 내려놓고 죽기살기식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한 대기업은 살아남았다. 반대로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구조조정을 미룬 기업은 공중 분해되는 비운을 맛봤다.

전자의 예가 2010년 채권단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후 경영정상화 과정에 접어든 금호아시아나그룹이라면, 대우그룹과 웅진그룹은 후자 쪽이다.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1999년 8월에야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그러나 수술 시기를 놓쳐 그룹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워크아웃 전인 1999년 4월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그룹에 워크아웃을 권했지만 대우그룹 측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시기를 놓친 거다. 대우그룹 해체는 김우중 전 회장이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실기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대우그룹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현직 시중은행 임원의 말이다. 지난해 재계를 떠들썩하게 한 웅진그룹 법정관리 사태도 비슷한 경우다. 그룹 오너인 윤석금 회장의 경영권 집착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강덕수 회장은 얄궂게도 생즉사 길을 간 김우중 전 회장이나 윤석금 회장과 닮은 점이 많은 최고경영자(CEO)다. 강 회장과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을 기치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단기간에 그룹을 초고속 성장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 회장과 윤 회장은 평범한 직장인에서 대기업 총수 자리에 오른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란 별칭을 갖고 있다. 강 회장으로선 맨주먹 하나로 일군 그룹 경영권에 대해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강 회장은 그러나 대우그룹이나 웅진그룹과는 사뭇 다른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워크아웃에 준하는 채권단의 자율협약 권유를 결국 받아들인 데다 ‘지분 포기’라는 승부수까지 던졌기 때문이다.

“강 회장이 그룹의 주력이자 핵심인 STX조선해양 지분 처분권을 위임한 것은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회사를 살리는 데 매진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 아니겠느냐.”(채권단 관계자)

채권단 내부에선 현재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사즉생 승부수’ STX 살려낼까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전경.

강덕수 회장은 실제 약속대로 최근 채권단에 지분 포기와 관련한 문서를 제출했다. STX조선해양 주식 처분과 의결권 행사 제한 위임장, 구상권 포기 각서다. 채권단이 STX조선해양에 긴급자금 6000억 원을 지원하고 추가 유동성을 투입해주는 조건이다.

STX조선해양 등 STX그룹 구조조정은 2010년 산업은행이 주도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방식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사별 특성과 자금 상황 등에 맞춰 핵심 계열사는 자율협약 등의 형태로 채권단이 관리하고, 비핵심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이다.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

지주사인 ㈜STX, 조선사업 부문 핵심 계열사인 STX엔진과 STX중공업은 STX조선해양처럼 자율협약에 들어갈 개연성이 커 보인다. 중국 내 조선 계열사인 STX다롄조선은 중국 정부로부터 1조 원 규모의 자금유치(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다. 자금 수혈이 여의치 않으면 STX다롄조선의 경영권 지분을 중국에 넘기는 것도 검토 대상이다. STX팬오션의 경우, 현재 산업은행이 인수를 위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실사가 끝나는 다음 달 경영정상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해야 세부적인 구조조정 방향이 나올 것”이라며 “주력인 조선해양 부문을 중심으로 회생 가능한 계열사는 살리고 나머지는 매각 수순을 밟는다는 게 밑그림”이라고 말했다.

최대 관심사는 강덕수 회장이 대주주 지위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 감자(자본 감소)와 출자전환(채권단 대출금 등 채권의 자본금 전환)이 불가피하다. 강 회장의 보유 지분율도 대폭 줄어든다. 지분 처분권 위임과 지분율 축소로 대주주 자격을 사실상 잃게 된다는 뜻이다.

채권단은 그러나 그룹 회생 과정에서 강덕수 회장의 경험과 식견이 필요한 만큼 당분간 경영권을 보장해줄 공산이 크다. 강 회장이 대주주 지위를 회복할지 여부는 구조조정 성패와 직결된 사안이다. 경영권에 제약을 받았던 오너 일가가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후 대주주 지위를 회복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라는 전례도 있다.

시장에선 일단 STX그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구조조정의 첫 사례이고, 강덕수 회장과 정부, 채권단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회생할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조선업의 특성상 업황 회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경영 정상화가 쉽지 않으리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STX그룹의 구조조정은 조선 경기 회복 여부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며 “강 회장이 무엇보다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셈”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886호 (p18~19)

오상헌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자 bborir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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