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2013.04.08

안철수? 허준영?… “에이, 아직 모르지”

4·24 재보선 최대 격전지 서울 노원병…표류하는 표심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3-04-05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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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허준영?… “에이, 아직 모르지”

    3월 31일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후보들이 서울 노원구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에서 열린 2013 계사년 불암산신제에 참석해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

    4월 4일 전국 세 곳에서 실시하는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재보선)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 선거전도 시작됐다.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은 새누리당 김무성, 이완구 후보가 상대 후보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통계적으론 승패가 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노원병 역시 당초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던 곳. 그러나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의 추격전이 시작되면서 양측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허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면서 서울 노원병은 4·24 재보선 최대 관심 지역으로 떠올랐다.

    실제 4월 1~2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 44.5%, 허 후보 24.5%,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6.0%,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1.6% 순이었지만,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원씨앤아이가 4월 2일 주민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허 후보 44.0%, 안 후보 38.9%, 김 후보 8.2%로 나왔다. 적극 투표층(46.6%) 지지율에서도 허 후보(45.3%)가 안 후보(40.2%)보다 앞섰다. 재보선이 평일에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허 후보 지지자들의 공고한 결집력이 안 후보의 높은 대중성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상계동 중앙시장에서 만난 박철주(55) 씨는 “예상과 달리 허 후보가 선전하면서 선거가 재미있게 됐다”며 “안 후보도 죽기 살기로 뛰어야 신승(辛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일까. 4월 4일 노원병 출마 후보들은 아침 일찍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출사표를 던졌다. 허 후보는 ‘지역 발전’을, 안 후보는 ‘새 정치의 시작’을, 김 후보는 ‘노회찬처럼 민생정치’를, 정 후보는 ‘노동·인권정신 계승’을 약속했다. 앞서 4월 3일 만난 노원병 출마 후보들은 새벽 출근길 인사부터 야간 순회 인사까지 16시간가량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안 후보는 특유의 겸손함과 대중성으로, 허 후보는 보수층 결집과 ‘지역 일꾼론’으로, 김 후보는 ‘노회찬 정치 계승’을 내세우며 유권자들과 손을 맞잡았다.



    대중적 인기 vs 공고한 결집력

    이날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정보도서관. 안 후보가 들어서자 주부 30여 명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안 후보는 일일이 주민과 악수하면서 “새 운동화를 신고 3주간 돌아다녔더니 운동화가 너덜너덜해졌다”며 눈인사를 했다. 그는 노원구 현안을 일자리와 교육, 교통문제로 진단한 뒤 “교육에 관한 한 노원구가 멘토 도시가 되도록 만들겠다. 영원히 노원구 아이들의 멘토가 되겠다”는 얘기로 학부모들의 표심을 자극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투구와 갑옷, 칼을 줬지만 결국 다윗은 돌 하나만 들고 골리앗과 맞섰다. 교육도 이처럼 사람마다 어떤 걸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 명이 한 방향으로 가면 1등은 1명이지만 360°로 펼쳐지면 360명이 1등을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은 안 후보가 노원병 지역에 출마한 데 대해 분명한 견해를 요구했다. 한 주민이 “새 정치를 한다고 (노원병에) 출마했는데 새 정치가 뭐냐”고 묻자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목소리 큰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살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서민 중산층을 위한 민생정치”라고 정리했다. “대통령선거(대선)를 뛰어봐서 국회의원 선거는 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어렵다. 평생 걸어야 할 걸음을 다 걷는 기분이다. 새 운동화가 헌 운동화가 됐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안 후보는 이날 주민을 만날 때마다 먼저 ‘운동화론’을 꺼냈다. 오후 상계5동 주민자치센터와 인근 상가를 방문했을 때도 그는 헌 운동화 얘기를 꺼내며 특유의 미소로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안 후보가 ‘날아든 철새’가 아니라 지역민을 위해 뛰는 ‘지역 일꾼’임을 강조하려고 운동화론을 꺼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의 신발은 노스페이스사의 트레킹화였다.

    노원병 지역에서도 안 후보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친근함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임이 분명해 보였다. 주민들은 안 후보를 만나자 먼저 악수를 청했고, 안 후보에게 함께 ‘인증샷’을 찍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키가 작은 주민을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히며 눈높이를 맞췄다.

    한 횟집에서는 안 후보가 들어서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깨끗한 정치인이 돼달라” “실물이 훨씬 좋다”며 인사를 건넸고, 안 후보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 인기가 반드시 표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안 후보와 사진 촬영을 한 주민들은 “TV에 나온 분을 직접 만난 기념이지 반드시 투표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안 후보 측 관계자의 고민도 비슷했다.

    “안 후보가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어떻게 표로 연결할지가 고민이다. ‘내가 안 찍어도 안 후보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은 데다 안 후보 지지층이 팔짱을 끼고 방관하면 어려워진다.”

    안 후보의 명함 전면을 통합선거인명부제를 알리는 글로 채운 것도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선거부터는 선거인 명부를 전산화해 통합선거인명부를 만들었는데, 유권자는 주소지에 관계없이 가까운 투표소를 이용할 수 있다. 부재자신고를 하지 않아도 19, 20일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할 수 있는 것이다. 안 후보는 명함 전면에 “4월 19, 20일 먼저 투표할 수 있습니다!”라는 큼지막한 글을 새겨놓았다.

    안철수? 허준영?… “에이, 아직 모르지”
    서울 상계5동 중앙시장 입구에 마련된 허준영 후보의 선거사무실에는 50대 이상 지역주민 20여 명이 허 후보의 선전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허 후보는 공천이 늦어지면서 선거운동을 제대로 못했지만 이번은 다르다”며 “허 후보의 ‘지역 일꾼론’에 안 후보가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 후보 측 선거 관계자들은 “안 후보가 원내 진출을 위해 노원병을 징검다리로 이용한다”면서 “외무고시 출신으로 경찰청장과 코레일 사장을 지낸 허 후보는 ‘실체’가 있다”며 안 후보의 새 정치를 ‘이미지 정치’로 한정했다. 이러한 허 후보 측 선거 전략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지역 개발 기대 심리와 맞물리면서 기대감을 키웠다. 지하철 7호선 마들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종철(58) 씨의 말이다.

    “노원구는 특정 정당 텃밭도 아니고 서민이 모여 사는 곳이라 큰 정치, 새 정치 하기에는 제격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됐고, 아무래도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창동철도차량기지 이전 같은 지역 민원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공중전(안 후보) 대 지상전(허 후보) 구도인데, 깃발을 꽂는 사람은 보병 아니겠나.”

    실제 허 후보는 4월 4일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창동철도차량기지·도봉면허시험장 조기 이전, 경전철 구간 연장, KTX 노원 상계지역 경유 같은 지역 발전 공약을 쏟아냈다. 허 후보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안 후보와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고위공직자가 지난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지역에 머물며 봉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입주가정교사도 하면서 자수성가했다. 고위공직자 출신이 야권 성향이 강한 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1년간 지역 현안을 챙긴 경우도 드물다. 이곳은 나처럼 맞벌이를 하면서 열심히 사는 분이 많은 곳이다. 안 후보처럼 귀족분이 와서 나설 곳이 아니다. (안 후보가) 큰 정치를 하려면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의 말처럼 노원병 지역은 18대 총선에서 분구되기 전까지 민주당이 독식하던 지역이다. 18대 총선에서 홍정욱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이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서는 노회찬 전 통합진보당 의원(57.21%)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 허준영 한나라당 후보(39.62%)를 이겼다. 그만큼 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노원병 주민의 출신 지역 분포는 호남 28%, 충청 25%, 영남 15%라고 지역 정치권은 분석한다. 선거인 수는 16만2000여 명이다.

    안·허 후보의 양강 구도에 맞서 김지선 후보 역시 ‘노회찬 계승’을 내걸고 추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대법원이 이 지역 국회의원인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확정해 의원직을 상실했기 때문에 치러지는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노 전 의원이 2005년 8월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전·현직 고위 검사 7명의 이름을 공포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유죄 확정 판결을 했다. 국회의원은 선거법 외의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노회찬 계승한 김지선 후보 고군분투

    안철수? 허준영?… “에이, 아직 모르지”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매일 16시간가량 강행군을 하며 주민들을 만난다. 사진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노 전 의원의 부인인 김 후보는 “노회찬의 공약인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검찰개혁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면서 보육과 육아, 이주여성 문제 등을 보강해나갈 것”이라면서 “여론조사를 하면 10% 정도 나오는데 이는 굉장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후보의 출마에 대해선 날을 세웠다.

    “안 후보가 새 정치를 얘기하는데 구체화된 게 있나. 우리도 항상 새 정치를 했고 노회찬의 새 정치는 이미 검증받았다. 새 정치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김 후보는 다른 후보가 배우자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것과 달리 나 홀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남편인 노회찬 전 의원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면서 ‘생이별’을 한 것인데, ‘노회찬 부인’을 알리는 게 시급하지만 부부가 손잡고 걸어도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해석 때문이다.

    그러나 각 후보의 선거 열기와 달리 기자가 이날 만난 노원병 주민 상당수는 지지 후보 결정을 유보하고 있었다. 새 정치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지역 현안을 잘 아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여론과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동정론이 뒤섞인 것이다. 대체로 20~40대 여성은 안 후보에게 호감을, 50대 이상 남성은 허 후보의 선전에 대해 말했지만, 이들 역시 선거 결과에 대해선 대부분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주민 18명 가운데 명확하게 지지 후보를 밝힌 주민은 5명. 상계5동 한 식당에서 만난 주민들의 대화에서 유권자들의 선거 초반 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아파트 동호회 회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기자 : “노원병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했나요?”

    주민 A(50대 여성) : “아무래도 안 후보가 인기가 좋고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커요. 뭐라고 할까, 좀 진실 돼 보이기도 하고.”

    주민 B(50대 남성) : “아니지. 정치 발전하겠다는 사람이 왜 갑자기 여기 와서 정치를 하겠다는 거요? 부산에서 나오든가, 학교가 있는 관악구에서 나오든가 해야지. 여긴 서민 임대아파트가 많은데 안 후보가 살아온 길을 보면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주민 C(40대 남성) : “허 후보도 경찰청장은 했지만 19대 총선에서 강남(을)에 공천 신청한 사람 아닙니까. 새누리당 고정표가 30% 정도는 나오니까 기대는 하겠지만 안 후보나 마찬가지지. 떡값 검사 명단 공개했다고 유죄판결 받은 노회찬만 불쌍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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