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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국정원, 육사 인맥 부활?

군 출신 직원 수십 명, 실·국장 인사 앞두고 관심 증폭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남재준 국정원, 육사 인맥 부활?

남재준 국정원, 육사 인맥 부활?

남재준 신임 국가정보원장.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향후 20년의 글로벌 트렌드를 예측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4년마다 백악관에 제출한다. 세계와 주요 국가들의 전략 흐름과 다가올 미래를 거시적으로 예측하는 게 국가정보기관의 핵심 임무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이는 한국도 다를 수 없다. 국가정보원 임무가 안보에 국한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국가정보원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가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 취임을 두고 남긴 말이다. 상황이 워낙 위중하다 보니 군 출신 인사의 원장 기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해 정보기관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다는 것. 이러한 기류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워낙 ‘사고를 많이 친’ 바람에 감히 말을 꺼낼 순 없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인사’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임동원 원장 이후 12년 만에 임명된 군 출신 수뇌부를 지켜보는 국정원 안팎의 시선은 이처럼 간단치 않다. 당초 이명박 정부가 임명했던 이종명 3차장이 유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것도 이와 관계 깊다. 육군사관학교 35기로 현역 소장에서 국정원 차장에 발탁됐던 그가 안보부처 핵심에 불어닥친 ‘육사 바람’에 힘입어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이와 함께 조만간 단행될 실·국장 및 지역 지부장 인사도 안팎에서 꼽는 주요 변수다. 차장 인사와 달리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간부급 진용이야말로 ‘남재준 국정원’의 향방을 가늠할 열쇠라는 것. 물론 여기서도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국정원 내부의 육사 출신 직원이 이번 인사에서 어떻게 중용되느냐다.

‘자기 사람’에게 맡겨야 할 세 자리

사실 국정원 내 군 출신 인맥은 그 뿌리가 깊다.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1960년대에는 김종필 초대 부장을 비롯한 요직 대부분을 육사 출신이 차지했기 때문. 이러한 ‘전통’에 ‘유신 사무관’ 같은 분위기가 겹쳐 국가안전기획부 시절까지 육사를 졸업한 장교들 가운데 지원받아 스카우트하는 제도가 장기간 이어졌다. 통상 중위 시절에 지원서를 내고 입부 심사를 받은 이들 육사 출신 직원은 같은 해 들어온 다른 공채 출신 직원들과 함께 훈련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모두 현역 군인 신분을 유지하다 영관급 장교가 될 무렵 군복을 벗고 서기관으로 재임용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 이는 군에 남은 육사 출신 동기는 물론 안기부 입부 동기에 비해서도 빠른 승진이었고, 당시 정보기관의 압도적인 위세가 더해져 한동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0·26 직후 군과 정보기관 간 갈등이 극에 달했을 무렵에는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정보기관 문민화’작업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4~5명 수준의 육사 출신 장교가 이 경로를 통해 안기부에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에도 부정기 특채 형식으로 채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것.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현재까지도 국정원에 근무하는 육사 출신 직원의 수만 수십 명 규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90년대 이후 문민화 분위기로 이들이 조직 내에서 ‘잘나갔던’ 건 아니라는 게 전·현직 관계자들의 대체적 평가. 한 전직 고위인사는 “육사 출신 최고 엘리트였다면 군에 남았지 정보기관으로 넘어왔을 리 없지 않느냐”고 촌평했다.

공교로운 사실은 이렇게 공식절차를 거쳐 국정원에 넘어온 육사 출신 직원이 연령으로는 40대 중·후반 이상, 직급으로는 실·국장급 보직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도 간부급 인사 대상자 가운데 육사 출신이 전체의 10% 안팎을 꾸준히 차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만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충성파 핵심 그룹’을 만들기엔 충분한 숫자라는 얘기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흔히 신임 원장이 반드시 ‘자기 사람’에게 맡겨야 할 자리로 크게 세 곳을 꼽는다. 감찰실장과 비서실장, 국내 정보 분석 및 취합을 담당하는 부서장이다. 다른 자리의 경우 대부분 ‘전공’이 있어 대상자가 제한적이지만, 이들 부서는 상대적으로 전문성보다 수뇌부와의 교감이 훨씬 중요한 고려대상이라는 것.

먼저 직원의 비위 적발이나 보안을 책임지는 감찰실장은 원장을 대신해 악역을 수행한다. 특히 국정원 경험이 없는 신임 원장으로서는 다른 눈치 보지 않고 원장의 손발 노릇을 해야 조직관리가 가능하다. 직원들이 섣불리 정계 실세나 청와대에 선을 대 음지에서 수뇌부에 반기를 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는 것도 감찰실장이 맡아야 할 몫이다. 거꾸로 비리가 적발된 직원에 대해 수뇌부가 ‘선처’를 베풀 필요가 있을 때 원칙만을 강조하며 뻗대는 것도 곤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원장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비서실장은 원장과 모든 동선을 공유하고 조직 내 의사결정 체계의 문고리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신뢰가 필요한 자리라고 전직 고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 때문에 전임 원장 중에는 아예 외부에서 비서실장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생면부지의 인물을 능력이 있다는 주위 평가만 믿고 쓸 수는 없는 자리라는 뜻이다.

국내 정보, 특히 국회나 다른 정부부처와 관련한 정치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부서장은 수뇌부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때그때 담당부서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대대로 국정원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언제나 국내 정보 수집과 관련해서였고, 단명한 원장은 대부분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겨 교체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집회 정국에서 원칙론을 견지하다가 여당과 청와대로부터 “몸을 사린다”는 비판을 듣고 물러난 김성호 전 원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남재준 원장의 경우 인사청문회 기간 “국내 정보 파트를 무조건 축소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만큼, 해당 부서장의 민감성은 앞으로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남 원장 성격을 감안하면…”

이렇듯 ‘가장 민감한 자리’에 누가 임명되는지, 특히 육사 출신 직원이 약진하는지 여부가 간부급 인사를 앞두고 국정원 안팎에서 가장 관심이 쏟아지는 대목이다. 통상 실·국장 인사는 차장 인사가 발표된 후 수주일 뒤 단행되곤 하지만, 신임 원장이 청문회를 포함해 오랜 준비기간을 거친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차장 인사는 청와대와의 교감 등 거쳐야 할 경로가 많아 지연됐지만, 실·국장과 지부장 인사는 이미 내부적으로 완성한 상태일 공산이 크다는 것. 공식적으로는 간부 인사 또한 차장들의 의견을 토대로 결정돼야 맞지만, 실제로는 원장 차원에서 결정하고 차장들에게는 반대의견을 묻는 수준에서 정리하는 게 그간 국정원 내부 인사의 흐름이기도 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실·국장 인사는 남 원장의 캐비닛 속에 이미 완성돼 있을 공산이 크다. 차장 이하 직원 인사는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공개되지 않으므로 육사 출신 인사가 발탁된다 해도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고, 내부 직원들 역시 반감이 있다 해도 권력이 집중된 임기 초 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안보 분야 고위 당국자는 “원칙과 신념을 강조하는 남 원장의 성격상 이러저러한 말에 크게 구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곳곳에 불어닥친 ‘육사 바람’이 내곡동 깊숙이까지 미칠지,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진로를 가늠케 할 첫 방향타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매섭다.



주간동아 881호 (p54~55)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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