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1

2013.04.01

인사 낙마 시한폭탄 계속 터지나

박근혜 대통령 ‘나홀로 인사’ 한계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3-03-29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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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 낙마 시한폭탄 계속 터지나

    박근혜 정부 초기 낙마한 인사들. 왼쪽부터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자고 일어나면 한 명씩 없어지니….”

    청와대 관계자가 최근 잇따른 인사 낙마에 한숨을 쉬며 한 말이다. 벌써 장·차관급만 7명이 낙마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 기간에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인사 실패’를 꼽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기부터 인사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전문성을 강조하다 도덕성 검증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전문성마저 의문시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부실한 검증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청와대 누구도 인사 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해 더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인사 검증 실패 책임자로 지목하는 곽상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그 나름대로 억울해할 만한 소지가 있다. 낙마한 인사 가운데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장관과 청와대 수석 인사 검증은 정부 출범 이전 이정현 정무수석비서관(당시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이 담당했다. 당시 곽 수석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김학의 전 차관 건으로 살펴본 검증 시스템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당선되자마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후보군 인사 검증에 돌입했다. 이후에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내각 및 청와대 주요 후보군에 대한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별도 검증팀 없이 이재만 총무비서관(당시 당선인 비서실 소속)이 극소수 인사와 함께 기본적인 검증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성 측면에서 최고의 베스트 멤버로 내각과 청와대 진용을 꾸리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박 대통령은 검증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김용준 전 후보자를 임명하기 전 의혹이 될 만한 점이 있는지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문제를 비롯해 문제될 만한 부분에 대해 직접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 검증 외에 박 대통령은 이 과정 자체를 검증 과정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대통령은 김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소(헌재)장과 대법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대로 검증을 거쳤다고 착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후보자는 1994년 헌재소장 임명 당시 재산은 공개했으나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전이라 공식 검증은 거치지 않았다.

    김 전 후보자 낙마 이후 이정현 정무수석은 박 대통령 지시로 검증팀을 별도로 꾸렸다. 이 수석은 당시 행정안전부, 국세청, 경찰청 소속으로 6~7명을 구성해 검증 작업에 돌입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 인사, 각 부처 장관 인선까지 담당했다.

    2월 25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곽상도 민정수석과 그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주도해 차관과 외청장 인선 검증을 주도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사정기관이 파견한 공무원들로 구성됐다. 현재 9명이지만 최근 합류한 인사도 있어 차관과 외청장 인선은 5~6명이 검증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인사 난맥 여론이 폭발한 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잇따른 낙마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전 차관은 인선 때부터 말이 많았다. 그가 갑자기 검찰총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검찰총장이 사법고시 동기인데도 이례적으로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점 등을 들어 검찰 내부에서는 김 전 차관이 “차기 검찰총장 1순위다. 실세 차관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대통령과 김 전 차관이 특수 관계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 핵심 관계자들은 “김 전 차관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전혀 없다. 다들 억측이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고 1년 후배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추천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억측을 불러온 건 김 전 차관의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가 이미 파다하게 소문났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탓이 컸다. 민정수석실은 임명 전 경찰과 검찰에 수차례 동영상 실체를 확인했다. 검찰은 두 차례 정도 간부회의를 열어 “실체가 없고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직접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내사를 진행하거나 동영상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경찰 실무에서는 “실체가 있는 것 같다”는 경고를 세 차례나 했다는 주장도 있다.

    민정수석실에서는 당시 “김 전 차관과 관련한 동영상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타도어일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한 듯하다. 게다가 김 전 차관이 워낙 강력하게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임명 전까지 이런 동영상 논란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찜찜한 소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검증을 완료하고, 이런 소문을 제대로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은 민정수석실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측은 “검찰과 경찰이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실체를 확인하느냐”고 항변한다.

    요즘 청와대나 내각의 인사 요인이 발생하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인사위)를 소집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모든 인사는 인사위를 거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인사위는 수시로 열린다. 하루에 2~3번 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사위는 허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정무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이남기 홍보수석이 고정으로 참여하며 때에 따라 관련 수석들이 참여한다.

    박 대통령 ‘수첩인사’에서 벗어나야

    인사위는 이 자리에서 검증 대상 후보군 몇 명을 추린다. 대통령이 직접 거명한 인사는 자동으로 후보군에 포함되며, 대통령의 언급이 없을 경우 수석비서관들이 의견을 내서 적절한 인물을 찾기도 한다. 허 비서실장이 인사위 산하에 있는 인사팀과 함께 새 인물을 고르기도 한다. 인사팀은 안전행정부에서 파견한 김동극 인사팀장을 비롯한 5명으로 구성됐다.

    검증 작업은 주로 재산, 병역 등 후보자의 기본 신상에 대해 진행한다. 그 신상자료를 보고 문제가 될 만한 소지에 대해 당사자에게 소명을 요구한다. 문제는 검증팀 인원이 적어 문제될 만한 소지를 찾지 못하거나, 의심이 되는 부분을 찾더라도 후보자 본인이 완강히 부인할 경우 추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해외에 비자금을 만들어 세금 탈루 의혹을 받은 한만수 전 내정자가 전자의 경우라면, 김 전 차관이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을 마치면 단수 혹은 복수로 인사위에 다시 올리게 된다. 인사위는 이들 인물 가운데 최종 후보군을 추인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인사위가 인사 입구와 출구 구실을 다 담당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은 거의 단수로 찍어 검증을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증과정에서 몇 명이 낙마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병역, 납세 등 기본 검증 외에 치밀한 도덕성 검증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박 대통령의 인선 기준이 전문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첩인사’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한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정치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인사를 수첩에 적어놓았다가 하나씩 꺼내 적재적소에 넣는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중도 낙마한 김종훈 전 후보자의 경우에도 대통령과의 관계가 오래됐다고 한다. 김 전 후보자는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박 대통령과 수차례 만났고, 지난해 추석 명절 때 박 대통령이 선물을 보내는 명절 선물 리스트에도 김 전 후보자가 포함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김 전 후보자의 경우 신설되는 미래부 장관에 가장 적격으로 여겨 ‘삼고초려’하는 것에만 주로 신경을 썼다.

    박 대통령은 외부 전문가 영입 외에 해당 부처 출신들로 장관을 많이 임명했다. 내부 인사의 경우 차관 가운데 골라 승진시키는 관례를 깼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 부총리는 1급에서 현직을 마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내다 부총리가 됐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 가운데 차관을 건너뛰고 곧바로 장관으로 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사 낙마 시한폭탄 계속 터지나

    3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 국제회의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차관급 인사와 국정철학 공유를 위한 워크숍에 참석했다.

    청와대도 속으론 전전긍긍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각각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본부장 출신이다. 부처 장관으로 산하기관 간부가 발탁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고검장을 지내지 않은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의 임명도 법조계에서는 예외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파격적인 내부 승진이 부처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도 있지만 관가에서는 과연 이들이 제대로 부처를 장악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인선 과정에서 보안을 강조하는 것도 인사 검증이 소홀해지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박 대통령은 검증 과정에서 인선 내용이 새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해왔다. 김용준 전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여당과 언론이 전임 청와대가 가진 인사 파일과 검증 시스템을 활용하라고 조언했지만 박 대통령은 끝까지 활용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전임 정부에 우리의 모든 인사 카드를 공개할 수 없다”는 보안 의식 때문이었다.

    요즘에도 민정수석실은 발표 직전에 인사 검증을 지시받는 경우가 많아 검증에 애를 먹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인선 발표 당일에도 검증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발표 시점이 오전에서 오후로 미뤄진 적도 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인사 스타일에 젖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에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면 도덕적으로 다소 하자가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에서 후보자들 뒷조사를 하기도 편했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은 전문성뿐 아니라 후보자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이 시대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 낙마 사태 이후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고 연일 비판을 받는다. 청와대 내부도 겉으로만 침묵할 뿐 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줄줄이 남은 인사들의 경우도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 인사를 할 공산이 커 늘 ‘시한폭탄’을 안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 일단 박 대통령이 스스로 인사 풀을 넓히고 검증의 중요성을 깨닫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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