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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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대북 입김’은 없다

중국, 북한 변화 유도보다 체제 유지에 초점…냉정하게 현실 직시해야

  • 홍우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hong3579@kinu.or.kr

    입력2013-03-18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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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의 ‘대북 입김’은 없다

    리바오둥 유엔 주재 중국대사와 김숙 유엔 주재 한국대사,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앞줄 왼쪽부터)가 3월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3월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이 이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이전 대북제재 결의안과 비교해 한층 강도가 높아진 이번 결의에 동참한 것을 두고 3차 핵실험 이후 중국 태도가 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은 최근 중국 내부에 반북 여론이 들끓는다는 소식을 연이어 전한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 이론가 가운데 한 명이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향후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하리라는 희망의 말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를 도와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를 접하고 보면 미망에 빠진 모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이 대북제재 결의안 내용을 적극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북 정권 불안정 가장 두려워해

    흔히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북·중 관계 실태를 보면 중국의 지렛대는 분명하다. 한 예로, 북한은 전체 무역의 70~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중국은 무상으로 석유와 식량을 북한에 제공한다. 이렇듯 중국의 지렛대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중국 측에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해왔다.

    2월 미국 하원은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에서 중국 측에 경제원조 및 무역 축소 같은 수단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같은 달 15일에는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이 “미국도 북한에 대해 자체적으로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중국이 참여했을 때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북한을 비핵화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중국이야말로 유일한 국가라는 전문가 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 정작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지가 없다. 앞뒤 사정을 짚어보고 또 엄밀히 따져보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는 중국의 구실과 중국이 생각하는 자신의 구실 사이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중국 측 협력을 필요로 하는 대북제재 수단은 북한 정권 안정을 위협하는 조치들이다. 그쯤 되는 수준의 제재 강도여야만 북한이 꿈쩍이라도 할 것이라고 여겨 고안된 조치다. 따라서 제재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북한 붕괴로까지 번질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자연스레 나온다.

    베이징의 ‘대북 입김’은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2012년 11월 30일 방북한 리젠궈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포옹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 대표단이 평양을 떠난 다음 날 장거리로켓 발사를 예고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불안정은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대체적으로 한반도에서 중국이 갖는 최대 이익은 북한의 안정적인 체제 유지라는 데 이견이 없다. 중국이 이를 야기할 수 있는 제재에 동참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북한이 붕괴해 대규모 난민이 자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거나, 장차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국경을 마주해야 하는 부담을 베이징은 원치 않는다. 이 때문에 중국의 행태는 언제나 예측 가능했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중국은 북한을 비난하기도 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실질적 제재에는 소홀하거나 반대해왔다. 특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에 식량과 석유를 공급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중국이 “대북한 제재가 한반도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견지하는 점만 봐도 앞으로 행보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중국의 이러한 이중적 행동은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대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초대 주한 중국대사를 지낸 장팅옌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우선순위는 1위가 한반도 안정, 2위가 중국과 북한 우의, 마지막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소집된 중국 외사영도소조에서는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며,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는 분리해 대응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기도 했다. 체제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북한 생존을 최우선시해온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중국이 북한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제재에 협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허망한 일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게임

    베이징의 ‘대북 입김’은 없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외곽에 자리한 석유 저장고 바싼(八三) 유류저장소. 북한으로 가는 석유는 이곳에서 철도를 이용해 운반된다.

    상당수 전문가는 중국의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만일 북한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면 중국 지도부가 대북정책을 조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의 핵무장 가능성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사실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중국으로서는 ‘핵보유국 일본’이야말로 실질적인 위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셰벗 신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2월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에서 이는 핵무장론 여론을 이용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중국은 매우 잘 안다. 수많은 워싱턴 인사들은 한국 핵무장을 적극 반대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기 행정부 출범에서 발표한 국정연설을 통해서도 미국이 중점을 두는 사안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오바마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동맹국의 핵무장 가능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북한 위협에 처한 동맹국을 보호하려고 미사일방어체제(MD)를 강화할 것이고, 핵물질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리라는 점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북한 정권의 안정을 해칠 만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중국의 딜레마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딜레마 이전에 좀 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중국은 북한 핵무장이 한반도 균형을 깨뜨린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의 행동에 한쪽 눈을 감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 핵무장을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해칠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하지만, 마치 미국이 이스라엘 핵무장으로 중동의 군사적 균형이 파괴됐다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중국 역시 북한 핵무장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북한이야말로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판단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적어도 핵실험이나 핵무장을 빌미로 자신을 붕괴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이 자신을 제재할 수 없다고 믿고 행동한다. 중국도 그 점을 잘 안다. 또한 중국 눈에는 한국과 일본 핵무장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행동반경이 보이고, 그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국이나 일본의 행동반경 역시 훤하다. 그러므로 북한을 제재하는 국제사회 협력으로부터 한 발을 빼도 자신은 손해를 보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상황이 이런데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행동을 우리가 촉구하면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무모한 기대를 접고 객관적 시각으로 중국을 봐야 한다.

    중국 협력 기대 수준 낮춰야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려면 적어도 우리의 행동반경이 그들이 가늠하는 것보다 넓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기대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 포기나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촉진할 협력이 아니라, 핵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품목의 반입금지 같은 극히 제한적 협력만을 얘기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제한적 협력을 통해 한중 간 신뢰를 쌓아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 전략적 협력동반자인 중국의 향후 행보를 한층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자세만이 유일하게 유효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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