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7

2013.03.04

다이어트로 가는 험한 길 ‘황제’는 어디에도 없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3-03-04 11: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다이어트로 가는 험한 길 ‘황제’는 어디에도 없다
    1998년 5월 14일자 ‘동아일보’에 다이어트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렸다. 육류, 생선, 달걀 등을 마음껏 먹으면서 밥과 국수류는 먹지 않는 이른바 ‘황제다이어트법’을 소개하면서 유행 발원지로 이건희(당시 55세) 삼성 회장을 지목했다.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발표에 따르면, 평소 키 168cm에 몸무게 80kg 정도이던 이 회장은 황제다이어트로 2주 만에 4~5kg를 감량했다. 이 회장이 독특한 다이어트법을 선택한 이유는 대식가이자 고기와 생선을 좋아하는 식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그룹 내에서는 황제다이어트법 요령이 담긴 쪽지가 나돌고, 회사 전산망에도 그 내용이 올랐으며, 서울 태평로 식당가에는 황제다이어트 메뉴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 다이어트 방법은 로버트 앳킨스(1930~ 2003)라는 미국 의사가 1972년 발간한 ‘다이어트 혁명(Dr. Atkins’ Diet Revolution)’을 통해 미국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던 것으로, 미국에서는 ‘앳킨스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다이어트법이 우리나라에서 황제다이어트라는 절묘한(?) 이름으로 소개된 데는 앳킨스 다이어트를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한 저자 힘이 컸다. 1997년 말 당시 김영치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 연구원이 관련 책을 내면서 ‘황제처럼 먹어도 살이 쑥쑥 빠진다’(풀빛)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사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에서는 육류 중심 식이요법을 황제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과거 밥과 채식 위주의 식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던 우리로서는 육류로 채운 식단을 황제 성찬과 동일화하기 쉽다.

    어쨌거나 ‘다이어트 혁명’이라는 책 제목 그대로 이 혁명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처음 만든 앳킨스는 미국 오하이오 주 태생으로 1955년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심장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이후 59년 뉴욕에서 개업했는데,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으로 63년경 몸무게가 100kg에 이르렀다. 계속 불어나는 체중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당시 한 의학자(Alfred W. Pennington)가 발표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완전히 배제하는 대신, 단백질과 지방 섭취를 현격히 늘리는 식이요법을 시행했다.

    저탄수화물, 고단백 식이요법

    자기 몸을 이용한 일종의 임상실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과정을 통해 다이어트에 큰 효과를 본 앳킨스는 자신의 다이어트 방법을 더 구체화해 환자 치료에 적용했을 뿐 아니라, 외부에도 적극 홍보하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 전역이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였던 때라 그의 명성도 금세 높아졌다. 1965년에는 급기야 미국 NBC 방송 ‘투나이트쇼’ 같은 대형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70년에는 유명 여성 잡지 ‘보그’에 그의 다이어트 비법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 앳킨스의 다이어트 방법은 날개를 달았고, 한때 ‘보그 다이어트(The Vogue Diet)’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2년 고단백,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방법을 체계화한 역저 ‘다이어트 혁명’을 출간하면서 그는 영양학자로서 삶에 큰 전기를 마련한다. 그 뒤로는 지명도를 바탕으로 각종 다이어트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다. 92년에는 기존 다이어트 방법에 약간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더한 ‘신(新)다이어트 혁명(Dr. Atkins’New Diet Revolution)’을 출간해 또 한 번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앳킨스의 다이어트 방법은 종래 일반적인 다이어트 이론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던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도 만만찮게 많았다. 그런 가운데 2002년 그가 심장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반대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평소 포화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한 그의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이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그 자신은 물론 관련 전문의까지 나서서 다이어트 방법과 그의 심장병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반대파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앳킨스는 2003년 4월 뉴욕에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빙판길에서 넘어져 두부 손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의 나이 72세였다. 이후 그의 회사도 2005년 파산에 이르면서 그의 다이어트 방법도 어느 정도 쇠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앳킨스는 사망 전인 2002년 ‘타임’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인의 인물’에 선정될 정도로 명성과 사업적 성공을 함께 누렸다. 그렇다고 그의 다이어트 이론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의 끊임없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른바 황제다이어트의 요지는 탄수화물 섭취를 최대한 억제해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포도당을 사용하기보다 몸에 저장된 지방을 태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작용한다. 우리가 탄수화물을 먹으면 몸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이 인슐린은 체지방을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면 인슐린 분비가 억제되고, 그로 인해 저장돼 있던 체지방이 분해되면서 살이 빠진다는 논리다.

    이렇게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사용하는 것을 전문 용어로 케토시스(ketosis)라 하고, 이 같은 지방대사 결과로 만들어진 물질을 케톤이라고 한다. 케토시스라는 말이 주는 강한 어감 때문에 어떤 심각한 병적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 없는 생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래서 앳킨스 다이어트에서는 간단한 소변검사로 케톤이 배출되고 있는지 확인해 다이어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지를 파악할 것을 권장한다. 앳킨스 다이어트보다 덜 엄격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방법 중에서는 소변으로 케톤이 배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체 3대 영양소 균형 섭취 중요

    그런데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모든 극단적 이론에는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먼저 대다수 영양학자는 그 어떤 이론도 인체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균형 잡힌 섭취가 중요하다는 점을 넘어설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앳킨스 다이어트로 인한 체중 감소는 육류 위주의 단조로운 식사에서 오는 칼로리 섭취 감소, 또는 소화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육류 섭취나 케토시스 자체에서 오는 포만감의 연장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어떤 기전에 의해서든, 체중 감량 효과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앳킨스 다이어트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는다. 과도한 포화지방 섭취로 심장혈관 질환 증가, 콩팥이나 담낭 등에서의 질병 발생 가능성도 언제나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그래서인지 앳킨스는 생전에 자신의 이론을 약간씩 수정해나갔다. 하지만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앳킨스 다이어트 같은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방법은 이론 측면에서나 실제 효과 측면에서 상당한 매력을 지닌다. 따지고 보면 앳킨스의 방법을 포함해, 어느 정도 부작용과 문제점을 지니지 않은 다이어트 이론을 찾기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만일 누구나 실천 가능한 쉽고 완벽한 다이어트 방법이 있다면 오늘날 전 세계가 왜 비만 문제로 골머리를 앓겠는가.

    다만 우리가 명심할 점은 어차피 평생을 함께할 다이어트라면, 어떤 이론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개인 형편과 체질에 맞춰 장점을 최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하는 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