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5

2013.02.18

하버드에 공부벌레만 있진 않아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

  • 김유림 월간 ‘신동아’ 기자 rim@donga.com

    입력2013-02-18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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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에 공부벌레만 있진 않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진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보이는 것 때문에 상처 받는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성은 유난히 검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오해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만난 사람 대부분이 그에게 반말을 하고 시비를 건다고. 이 때문에 그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웬만해서는 집 밖 출입을 삼간다고 했다.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는 ‘돈 많고 멍청한 금발’이라는 편견에 당당히 맞서 자기 길을 찾는 한 여성의 유쾌한 모험담을 담았다. 대학교 치어리더 출신으로 패션을 사랑하고 쇼핑을 찬양하는 금발미녀 엘 우즈. 완벽한 남자친구 워너가 “내 미래를 위해 멍청한 금발은 필요 없다”며 훌쩍 하버드대 로스쿨로 떠나자, 우즈는 워너가 원하는 똑똑한 여성이 되려고 공부에 매진해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한다. 그러나 공부벌레로 가득한 하버드대에서 분홍빛 현란한 옷으로 무장한 그녀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수업시간에 매번 쫓겨나기 일쑤지만 그녀는 특유의 적응력과 동물적 감각으로 점차 촉망받는 변호사 길로 접어든다.

    이 작품은 금발미녀 우즈의 극복기를 담았지만 사실 그녀를 100%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부자 부모에 예쁜 얼굴을 타고나 언제나 환영받는 그녀가 공부와 능력, 변호사라는 직업, 심지어 근사한 남자까지 얻는 과정을 보면서 질투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뛰어넘은 것은 우즈의 친구이자 미용실 주인인 폴렛 덕분이다. 뚱뚱한 몸에 자존감이 낮아 직업 가진 남자는 단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는 그녀지만, 우즈 덕분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면서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인생에서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유쾌하고 화려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편견에 대해 얘기한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들은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당당히 주장하지만 결국 그곳에 모인 사람은 얼굴색만 다를 뿐 모두 공부벌레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하버드대 별종인 우즈는 하버드대의 이중성에 직격탄을 날리며 거대한 파문을 일으킨다.



    하버드에 공부벌레만 있진 않아
    특이한 점은 뮤지컬 넘버 20곡 가운데 2곡을 제외하고 모두 2명 이상이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라는 점이다. 소름끼치는 가창력은 없지만 아기자기하게 주고받는 구성이나 앙상블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이 많다. 소녀시대 제시카, 에이핑크 정은지, 그리고 떠오르는 뮤지컬 헤로인 최우리가 철없지만 당당하고 밝은 우즈 역을 잘 소화한다. 반면 남자주인공 에밋 역을 맡은 가수 팀은 어눌한 한국어로 관객을 당황하게 했고, 워너 역을 맡은 김산호는 노래 실력이 아쉬웠다. 이들에 대한 악평이 워낙 높아 팬 사이에서는 “팀과 김산호는 사실 여주인공 제시카를 빛내주기 위한 고도의 캐스팅”이라는 조롱 섞인 유머까지 돌 정도다. 3월 17일까지. 서울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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