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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화학물질은 설마 틈으로 새 나와

잇단 불산 누출 사고는 기본 수칙 안 지킨 탓…예방 훈련 통한 사전 대비도 필수

  • 권혁면 한국안전학회 화공안전부문 위원장 hmkwon@kosha.net

화학물질은 설마 틈으로 새 나와

최근 불산 누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경북 구미에서 불산이 누출돼 5명이 사망했고, 올해는 충북 청주산업단지에 이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누출됐다. 불산 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이유는 사람과 환경에 미칠 피해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산은 화학공정에서 필수불가결한 화학물질이다. 하지만 불산의 물리적 특성 및 독성에 의해 오염물이 발생할 수 있고, 이 오염물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 자극성 있는 무색 액체로 강한 부식성을 지니는 불산은 금속, 유리 등을 부식시키고 수소를 발생시켜 위험하다. 눈, 코, 목 안쪽을 강하게 자극할 뿐 아니라 흡입하면 폐렴, 폐수종, 기관지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용노동부와 미국 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가 불산 노출 기준을 3ppm으로 제한한 것도 그 때문이다.

美 쉘사의 12가지 핵심 수칙

그렇다면 불산 누출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25%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한다. 필자는 최근 건설사고 예방을 위한 국제세미나 발표자를 섭외하려고 휴 존스 쉘사 현장 소장을 만났다. 그는 삼성중공업에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채취선을 발주한 쉘사를 대표해 삼성중공업에서 건조 과정을 감독하고 있다.

필자가 “안전을 확보하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고 묻자 존스 소장은 “기본 수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작업 시 보호구 착용, 위험 작업 시 작업허가서 발급 후 작업, 음주운전 금지, 허가된 지역에서만 흡연, 위험공간에 들어갈 경우 허가 필요, 운전 시 휴대전화 사용 금지, 안전벨트 착용 등 지극히 기본적인 쉘사의 ‘12가지 핵심 수칙’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주 기본적인 것을 지키면 다른 안전 사항도 확보된다”면서 “수칙을 어기면 관련자 퇴출 등의 조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존스 소장의 평범한 설명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비록 그는 건설사고 예방 차원의 기본 수칙을 언급했지만, 이 수칙을 화학사고 예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는 대부분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 구미 불산 누출 사고의 경우, 열린 밸브를 바로 잠그지 않은 데다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아 작업자가 사망했다. 화성 사고는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한 좀 더 자세한 사고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사람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은 걸로 봐서 적절한 보호구 착용 등 안전한 작업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삼성전자 사고는 사망자의 보호구 착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어 1월 31일 현재 현장조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반면 청주 사고는 보호구를 적절히 착용하고 준비된 절차대로 조치를 잘 취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오염된 안면보호구를 벗기는 과정에서 일부 화상을 입긴 했지만, 이 부분은 재발 방지대책으로 개선될 부분이다. 만일 작업자들이 불산 취급시설에서 기본 수칙을 잘 지켰더라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화학물질은 설마 틈으로 새 나와

지난해 9월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로 그 지역 농축산물 폐기작업이 진행됐다.

물론 작업자가 기본 수칙을 지킨다고 해서 화학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우수한 안전수준을 자랑하는 유럽연합(EU)만 해도 중대 화학 사고가 2010년 37건, 2012년 24건 발생했다. 2005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 발생한 BP 정유공장 폭발 사고는 사망 15명, 부상 180명, 재산피해 15억 달러를 초래했다. 같은 해 12월 11일 정유사로부터 휘발유와 경유를 송유관으로 공급받아 영국 런던히드로공항 등으로 공급하는 영국 번스필드 유류 저장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43명이 부상하고 저장탱크와 인근 건물이 파괴돼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했는데, 이런 사고는 대부분 작은 부품 고장에서 불거졌다.

그렇다면 화학 사고에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예방훈련을 실시하면서 대비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화학 사고 예방 대응지침에 따르면 화학 사고 관리를 4단계, 즉 예방, 대비, 대응, 복구로 구분하는데 그중 예방이 단연 중요하다. “훈련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쟁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

객관적 분석 어려운 화학 사고

우리나라 사업장은 사고 발생 시나리오별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 주민 보호 조치 등을 포함하는 매뉴얼을 준비하고 평소 사고에 대비하도록 보완해야 한다. 영국 보건국의 중대 산업 사고 예방법에 따르면, 사고 범위가 공장 내부에 머무르는 ‘내부’ 비상 계획은 사업주 스스로 세우고, 사고 범위가 공장 외부에 미치는 ‘외부’ 비상조치 계획은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하도록 돼 있다. 이처럼 작은 사고와 큰 사고를 이원화해 대응하는 방식은 본받을 만하다.

또한 우리나라가 사고 대비 물질 69종에 대해 자체 방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반해, 미국은 140개 물질에 대한 위험관리 계획을 정부에 제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계획서에 가상 사고 시나리오와 사고 영향이 미치는 거리 등을 표기함으로써 실제 사고 발생 시 비상 대응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도록 조치한다는 점도 배울 만하다.

마지막으로 빠른 시간 안에 공장을 정상화하는 복구 과정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려면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를 교훈 삼아 다른 사고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학 사고는 특히 그 원인을 조사할 때 여러 부처에서 관리하는 제도가 복합적으로 맞물리는 경우가 많아 객관적 분석이 어렵다. 따라서 미국 화학안전 및 사고조사위원회처럼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보유한 사고 조사기관에서 사고조사를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모든 것을 개선할 때까지 사후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주간동아 874호 (p48~49)

권혁면 한국안전학회 화공안전부문 위원장 hmkwon@kosh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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