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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명작 동화의 환상과 현실 사이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명작 동화의 환상과 현실 사이

명작 동화의 환상과 현실 사이

박신영 지음/ 페이퍼로드/ 318쪽/ 1만3500원

“민담을 채록한 동화들의 여러 판본을 비교해보면 후대로 내려올수록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면, 비윤리적인 부분이 많이 수정되어 좀 더 ‘동화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명작을 통해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동화적으로 순화되기 이전의 거칠고 날것이었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 교훈을 주는 명작 동화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거대 미디어를 통해 점점 획일화돼가는 명작 동화에 불만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이야기가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서양 동화 속에는 수많은 왕자가 떠돌아다닌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차지하려고 불꽃과 가시덤불을 뚫고 공주가 잠든 성으로 들어가려는 왕자가 어디 한두 명인가. ‘백설공주’도 마찬가지. 왕자는 자기 영토도 아닌 숲을 배회하다 독이 든 사과 때문에 유리관 속에 누워 있게 된 백설공주를 발견한 뒤 키스한다.

근대 이전 유럽은 영주 국가였다. 수많은 영주에 왕자와 공주도 부지기수였다. 작은 영토를 분할하면 통치력이 쇠퇴하기 때문에 영주를 계승하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 했다. 조건이 좋은 공주를 만나려고 이웃 나라를 찾아다니는 일은 기본이었다. 젊고 예쁜 공주를 만나지 못하면 부유한 과부에게 구혼하기도 했다. 공주는 갈 곳이 거의 없었다. 왕자 혹은 왕과의 정략결혼은 그나마 좋은 상황이었다. 둘째나 셋째 공주의 경우에는 기부금을 내고 수녀원에 평생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평민과의 자유로운 연애결혼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 타락한 수녀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빨간색은 색 가운데 으뜸이다. 화학 염료가 개발되기 이전엔 붉은색으로 염색한 물건 값이 매우 비쌌기에 빨간색은 부의 상징이었다. 또한 피 색깔이기에 정열과 욕망, 생명, 성의 환희를 표현했다. 요즘 세상에도 빨간 옷과 빨간 구두를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은 위험인물이다. 엄격한 금욕주의가 자리 잡은 시절 카렌 같은 어린 소녀가 드러내놓고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카렌은 천사에게서 쉼 없이 빨간 구두에 이끌려 춤을 춰야 하는 끔찍한 벌을 받는다.



고향 가스코뉴를 떠난 다르타냥은 총사 세 명에게 연달아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는 고대 게르만족의 개인 간 분쟁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풍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죄가 없으면 신이 돌봐줘 결투에서 이기게 된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결투 신청을 받은 경우에는 대리 기사가 나서서 싸워주기도 했다. 결투 신청은 꽤 낭만적이었다. 상대에게 장갑을 던지는 것이 결투를 신청한다는 신호였고, 상대가 장갑을 집어들면 결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반면, 사랑하는 여인 앞에 장갑을 살짝 내려놓는 행위는 구애를 의미했다.

“하나의 공통된 모티프를 가진 구전설화는 시대와 지역의 차이를 두고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의 어린 친구들이 읽는 신데렐라는 오직 하나, 페론 본을 바탕으로 한 디즈니 만화뿐이다. 이런 현상은 맥도날드가 전 세계를 지배하며 아이들의 입맛과 사고를 획일화시키고 비만을 유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동화는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이다. 어린이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사회를 배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치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안내하는 동화 세계에서 늑대 인간은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털이 많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소외된 아저씨일 수도 있다. 또한 마녀가 외우는 마법 주문은 타국에서 온 외롭고 늙은 왕비의 중얼거림일 수도 있다. 동화의 단순화, 세계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성이 죽으면 창의력은 생기지 않는다.



주간동아 874호 (p102~102)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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