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3

2013.01.28

“물속을 확 뒤엎어놨으니 큰 탈이 안 나겠냐고…”

11조8521억 원 투입한 낙동강 르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1-28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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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을 확 뒤엎어놨으니 큰 탈이 안 나겠냐고…”

    달성보 우안 둔치 제방이 침식된 모습.

    1월 23일 오전 경북 칠곡군 석적읍엔 겨울비가 내렸다. 온도계 눈금은 3℃를 가리켰다. 하지만 칠곡보 앞 낙동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기러기 몇 마리가 얼음 위를 종종 뛰어다니다 훌쩍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원래 낙동강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았다. 아주 추울 때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끼는 정도였는데 보가 생긴 뒤부터 얼어붙는 일이 잦다. 이곳에서 늘 겨울을 지낸 새들이 먹을거리를 찾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이 문제를 풀려고 최근 대구 지역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위에 잘게 썬 고구마 덩이를 새 모이로 놓아두는 활동을 시작했다. 4대강 사업이 가져온 새로운 풍경이다.

    보 건설로 낙동강 환경 변화

    낙동강은 4대강 사업 전체 사업비 22조2765억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조8521억 원을 투입한 곳. 안동댐에서부터 하구 둑에 이르는 334.2km 구간에 보 8개를 세웠다. 공사기간 내내 이어진 논란은 최근 감사원이 ‘4대강 사업 감사 보고서’를 내놓으며 다시 불붙었다. 특히 칠곡보는 관심이 집중되는 곳. 지난해 11월 민주통합당 4대강조사특별위원회와 시민단체 등은 수중조사를 실시해 칠곡보 하류 물받이공(폭 400m·길이 40m·두께 1m 콘크리트) 끝단에서 거대한 균열을 발견했다. ‘붕괴 위험’까지 거론해 파문이 일었다. 감사원 역시 이번 보고서에서 칠곡보 물받이공 등에 균열이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는 “칠곡보 균열이 보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만한 건 아니다”라면서 “보강공사를 준비 중이며 2월 중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육안으로 균열과 누수를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분명하게 확인한 건 보 건설이 가져온 환경 변화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홍수방어능력 증대와 수자원 확보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낙동강에서만 34억6800만m³의 퇴적토를 퍼 올렸다. 시민단체 등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이 역사(役事)가 강 주변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9월 17일 태풍 산바가 상륙했을 때 읍내 절반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주민들도 그렇게 여긴다. 성주읍 성산리 주민 박성인(60) 씨는 “저지대에 있는 집은 목까지 물이 찼다.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사는 동안 처음 겪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날 성주읍엔 아침부터 시간당 70mm 폭우가 내렸다. 그리고 오후 1시쯤 성산리와 예산리를 둘러 흐르는 소하천 이천과 예산천이 범람했다. 순식간에 물이 마을을 덮쳤고 빗물을 처리하려고 건설한 배수펌프장은 무용지물이 됐다. 읍내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던 박씨는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가게 안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젖은 기계가 전부 고물이 돼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쉬는 상태”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지난해 5월쯤 강정고령보가 물을 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상했어요. 그전에는 발목 정도밖에 안 되던 이천 수위가 한 3m는 높아지더라고. 강둑까지 찰랑찰랑하는 걸 보면서 ‘왜 저럴까’ 했는데 그게 그냥 마을로 쏟아져 들어온 거죠.”

    평생에 이런 침수 피해는 처음

    “물속을 확 뒤엎어놨으니 큰 탈이 안 나겠냐고…”

    4대강 사업 구간을 따라 조성한 자전거 종주길(위). 환경단체가 촬영한 강정고령보 누수 흔적.

    이천은 낙동강 지류다. 또 다른 주민은 “원래는 비가 내리면 이천 물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보 건설로 낙동강 수위가 높아져 물이 나갈 데가 없으니 마을로 들어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주군의 설명은 다르다. 이날 성주읍에 내린 비 양이 배수펌프장 설계기준인 50mm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도 성주읍 예산천 등은 낙동강 본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태풍 산바 상륙 당시 낙동강 최고 수위가 지류보다 낮았다는 이유로 ‘4대강 책임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현재 이 지역 침수 피해자 215명은 성주군을 상대로 배수펌프장 운영 부실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씨는 “그동안은 감히 ‘4대강 사업 탓’이라는 얘기도 못 했다. 감사원 보고서가 나온 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 문제도 함께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의논한다”고 했다.

    인근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 주민들도 부글부글 끓고 있긴 마찬가지다. 이 일대 참외 농가도 지난해 7월 침수 피해를 입었다. 4대강 바닥에서 퍼내 이곳에 쌓아뒀던 준설토가 폭우에 쏟아져 내리면서 배수로를 막은 것. 이 때문에 일대 비닐하우스 800동이 물에 잠겼고, 수확기 참외가 모두 썩었다. 그 여파로 손해를 본 농민들이 이번엔 농경지 리모델링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농경지 리모델링은 농지 표면 흙(표토)을 50cm 이상 걷어내고 4대강 준설공사에서 발생한 준설토를 깐 뒤 걷어낸 표토를 다시 덮는 작업. 정부가 “저지대 경작지의 해발고도를 높여 농가 피해를 막으려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지역 참외재배 농민은 “이건 아무리 봐도 농가 돕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작년에 홍수 나서 농사 망치고 농지 리모델링을 하라 해서 했는데 땅이 온통 자갈밭이 됐다. ‘땅심’이 다 죽었다”고 하소연했다.

    “내가 여기서만 55년 살았는데 그동안 물 담은 적(침수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배운 게 없고 참외농사밖에 모르니 올해도 또 모종을 내지만, 자갈이 굴러다니고 모래가 올라오는 땅에서 뭐가 되겠어요. 이런 걸 왜 했나 몰라. 기사에 4대강 24공구 박살났다고 쓰십시오.”

    그의 참외하우스에서 10여km를 달리자 문제의 강정고령보가 나타났다. 강정고령보는 낙동강 중심에 있다. 상류 안동댐에서 166km, 하류 하구 둑에서 168km 떨어진 지점이다. 총길이 953.5m로 4대강 16개 보 가운데 가장 길며, 가야토기와 가야금을 형상화했다는 외관이 웅장하다. 그러나 감사원 보고서는 이 보에서도 허용 균열폭(0.45mm)을 훨씬 넘는 최대 크기 3.00mm, 최고 깊이 210.0mm, 총연장 729m의 균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역시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상류 매곡취수장에서 죽곡취수장까지 이어진 1.4km 구간의 자전거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깎아지른 듯한 산지절벽을 옆에 두고, 강물 위에 강철 파일을 박아 조성한 길 위에는 터널 형태 지붕이 덮여 있었다. 자전거도로 이용자가 취수장에 오물이나 독극물 등을 투척할 수 없도록 막는 장치라고 한다.

    “물속을 확 뒤엎어놨으니 큰 탈이 안 나겠냐고…”
    용호천 침식현상 심각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수변관광지를 조성 중이다. 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닦고 생태공원도 만들고 있다. 4대강 강변공원은 모두 234곳으로 낙동강에만 95곳이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식수원 오염 위험이 커진다는 점. 강정고령보 인근에 어린이 물놀이용으로 만든 수레바퀴 모양의 설치물 ‘낙락섬’ 일대에는 이미 물거품이 하얗게 끼어 있었다.

    이곳에서 낙동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달리면 만나게 되는 대구 달성군 달성보는 지난해 여름 녹조가 발생했던 곳이다. 낙동강을 향해 나아가는 크루즈 모양을 형상화한 길이 579m의 보에 이르자 물에서 풍기는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두 눈은 보 우안 둔치에서 진행 중인 침식현상에 쏠렸다. 제방 사석을 덮어놓은 강철망 곳곳 뜯긴 틈으로 돌이 굴러 내리고 있었다. 달성보 준공일은 2012년 8월 29일. 불과 넉 달 사이 둔치에 부딪힌 강물이 강철망을 누더기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보에서 2km가량 떨어진 낙동강 지류 용호천 둔치의 침식현상은 더 심각했다. 지난해 7월 여러 언론은 용호천 오른쪽 둔치에 세운 가로 30m, 세로 20m가량의 옹벽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시민단체 등이 4대강 사업의 여파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토해양부는 “노후한 석축이 포화된 배면부 토압과 수압을 견디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4대강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그 뒤 다시 쌓은 3단 석재 옹벽 주위에서 지금도 땅이 깎여나가는 게 보였다. 마치 협곡처럼 강 양쪽에 거대한 절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용호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사촌교를 받치는 콘크리트 옹벽 일부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두께로 벌어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촬영해온 현장사진을 보면, 폭 20m가량이던 소하천이 점점 넓어지면서 강폭 약 50m인 현재 모습으로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수근 국장은 “용호천 둔치의 붕괴는 2011년 여름 시작됐다. 달성보 건설과 맥을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바닥을 준설하면서 강 평균 수심이 깊어진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용호천의 경우, 기존 수심을 유지하다 보니 낙동강 본류와 지천 바닥 사이에 표고 차이가 생긴 거죠. 현재 용호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부에서 물이 폭포처럼 떨어집니다. 그 힘으로 강바닥이 붕괴되고, 여파로 둔치 지반이 무너지게 된 거죠. 이렇게 지반 붕괴가 지천 상류로 계속 뻗어나가는 것을 역행침식(逆行浸蝕)이라고 부릅니다.”

    정 국장은 “2010년 여름 남한강 지천인 연양천 신진교, 한천 용머리교, 그리고 낙동강 지천인 청도천 다리 하나가 역행침식으로 붕괴됐다”고 주장했다. 용호천에서 지반침식이 계속 진행되면 사촌교 안전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낚시하던 한 주민은 “작은 강은 그대로 둔 채 낙동강 같은 큰 강에 손을 대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면서 “나라 전체에 공사판을 벌여놓았으니 지금은 이런 데까지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물속을 확 뒤엎어놨으니 큰 탈이 안 나겠냐고…”

    2011년 4, 7, 9월과 2013년 1월 촬영한 용호천 전경(1번부터). 수목이 사라지고 폭이 점점 넓어지는 강변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파헤쳤나

    정부가 4대강을 일괄 정비하는 대역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은 또 있다. 낙동강 제방을 따라 칠곡보에서 고령보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눈에 띈 골재 준설선들이다. 준설선은 4대강 사업 초기 모래나 자갈을 채취하는 데 이용한 배. 2011년 대부분 지역에서 준설이 끝났으니 이제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준설선 대부분에 유류가 적재돼 있어 전복하거나 침몰할 경우 하천 오염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준설선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교각과 충돌하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해 1월과 5월, 성주군 선남면 인근에 정박해 있던 준설선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셈이다.

    감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4대강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장래(2016년) 발생할 물 부족량은 17억㎥지만, 4대강 본류 구간의 경우 영산강을 제외하고 물 부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낙동강 상류 98km 구간의 경우 4대강 사업 전에도 이미 법정 홍수 계획 빈도 이상인 130~1000년의 홍수 방어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도 밝혔다. 이런 결론을 기초로 감사원은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앞으로 사업 효과를 고려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 없이 준설계획을 수립해 비효율적으로 준설을 추진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주의’ 조치를 내렸다. 낙동강을 파헤친 것은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홍수를 막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강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파헤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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