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2013.01.07

상처받고 신음한 ‘IT 코리아’

MB정부 IT정책 처음부터 삐걱,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 권건호 전자신문 통신방송산업부 기자 wingh1@etnews.com

    입력2013-01-07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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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고 신음한 ‘IT 코리아’

    2008년 3월 26일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에서 열린 현판식 장면.

    “시작부터 잘못됐다.” “기대 이하 낙제점.” 이명박(MB) 정부의 정보기술(IT)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2008년 출범 당시 MB정부는 IT정책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서 IT산업은 위축됐고, IT업계의 불만만 높아졌다.

    IT정책에 방향이 없었던 탓에 자타가 인정하던 IT강국 경쟁력은 약화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IT산업 경쟁력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IT산업 경쟁력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1년 19위로 급락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지수 기술 인프라 부문 역시 2005년 2위에서 2008~2009년 14위로 하락했다.

    물론 성과도 있다. 방송과 통신을 융합하면서 IPTV 시장이 성장했다.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다. 5년간의 성과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통부 해체 IT 컨트롤타워 부재

    이번 대통령선거(대선)에 IT업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이유도 현 정부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적어도 새 정부의 IT정책은 현 정부보단 나으리라고 기대한다.



    MB정부가 출범하면서 시행한 IT정책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정보통신부(정통부) 해체였다. 그동안 정부의 IT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온 정통부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지식경제부(지경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에 분산했다. IT기술이 각 산업 영역에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총괄하는 부처가 필요 없고, 해당 산업을 맡는 부처에서 이를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현 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그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오해석 대통령 IT특별보좌관은 △IT와 산업 간 융합 촉진 △방송통신 융합 기반 확충 △공생발전 생태계 조성 △국민생활 스마트화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와 학계 평가는 다르다. 정통부를 해체한 현 정부의 IT정책은 ‘실패’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IT산업의 큰 흐름은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기기)를 하나로 엮는 컨버전스(융합)다. MB정부의 결정은 이런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이 몰고온 스마트 혁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결과를 맞았다.

    분야별로 보면 방송에서는 결국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이루지 못했고, 수년간 끌어온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에도 실패했다. 통신 분야에서는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며 단말기 가격 상승과 보조금 경쟁 대응에도 미진했다는 평가다. 해킹과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고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새로운 산업을 제대로 진흥하지 못했다. 이에 더해 정권 초기 이 대통령이 IT산업이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말해 ‘IT홀대론’까지 불거졌고 IT인의 사기도 꺾였다.

    상처받고 신음한 ‘IT 코리아’

    2012년 5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월드IT쇼 2012’. 차세대 정보통신 제품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박진우 한국통신학회장은 “정통부를 해체할 당시 포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잘되는 것과는 별도로 정책적인 ICT 거버넌스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제조분야 기업을 제외하고 CPND 생태계에서 어느 분야도 IT 강국 명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미래 IT는 CPND가 상호 연계해 받쳐주지 않으면 전망이 어둡다”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원석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이명박 정부는 정통부를 해체하고 업무를 분산시키면서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그로 인해 정보통신 강국 이미지가 추락했고, IT 코리아라는 브랜드 가치가 말도 못할 정도로 손상됐다”고 평가했다. 김 고문은 “IT 컨트롤타워 부재로 추진 동력이 집중되지 못했는데, 이는 대통령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각 부처로 IT업무가 분산하면서 부처 간 갈등이 심화됐고,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갈등했다”고 말했다.

    합의제 구조의 방통위 제구실 못해

    심지어 여당 의원까지 현 정부의 IT정책을 비판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MB정부 들어 국내 IT산업 성장률은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해 3.7%p 하락했고, 수출 증가율도 4.2%에 그쳐 비(非)IT산업 평균보다 11%p나 낮았다”며 “근본 원인은 IT 분야 정부조직 개편 실패”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IT정책 기능이 분산하면서 부처 간 업무 중복과 갈등이 심해져 정책 효율성이 굉장히 저하됐다”며 “현재 지경부의 IT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비롯해 국가 ICT 발전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통부 기능을 가장 많이 이관받은 방통위의 의사결정 구조도 IT정책이 추진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방통위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4명이 참여하는 전체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합의제 구조다. 상임위원 구성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추천하고, 여야가 각각 상임위원 2명씩 추천하는 형태다. 합의제는 토론을 통한 합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제도지만, 여야가 상임위원을 나눠 추천하다 보니 국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실제로 방통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정책에 발목이 잡혀 IT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MBC 사장 임명과 해임안 논란 등을 거치며 파행이 되는 사태도 겪었다.

    모든 결정권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있다 보니 공무원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요원해졌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정통부 시절에는 실무자가 고민해 정책을 만들고, 이를 책임지고 소신 있게 추진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책을 고민해 만들어도 전체회의 일정 잡고, 위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합의제 구조가 민주적인 것은 맞지만, 빠르게 변하는 IT산업의 속성과는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까지 대선 공약으로 독임제 ICT 전담부처 신설을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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