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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아동학대 충격 보고서 03

“학대받고 커서 학대하는 사람 될라”

<인터뷰> 오은영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학대받고 커서 학대하는 사람 될라”

“학대받고 커서 학대하는 사람 될라”

● 1965년생
● 199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1994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졸업
● 1999년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자격 취득
● 2002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졸업
●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최모(37) 씨가 3세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가방에 담아 경남 창원 한 저수지에 버려 충격을 줬다. 창원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가정불화로 가출하면서 아들 세 명 가운데 자신을 가장 닮은 둘째만 데리고 나온 뒤 학대해왔다. 최씨는 경찰에서 “내가 살아온 것과 비슷한 처지의 아들이 앞으로 사람들에게 학대받으며 살 바에는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아버지가 사고로 숨진 뒤 친척 손에 맡겨져 고아처럼 살면서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아이가 나처럼 학대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얘기다.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해 최씨에게 돌을 던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는 최씨도 죽은 아이도 생각지 않는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이자 SBS 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육아전문가로 활약하는 오은영(47) 박사는 “우리 모두 사건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 삼성동에서 그를 만나 이 사건에 투영된 우리 모습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며 운을 뗐다.

“한국의 많은 부모가 사건 당사자처럼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르진 않아요.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부모 처지에서는 선한 행위라고 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상처와 두려움이 될 수 있거든요.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한국인 타인 고통 공감 능력 떨어져

누군가 파업을 하면 당장 자신의 불편만 생각하지 생계가 걸린 그 사람 처지에서 생각지 못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그 고통을 피부로 느끼면 달라진다. 자식이 장애인이면 부모는 대부분 투사가 되고, 그렇지 않은 부모는 자기 동네에 장애인학교가 들어선다면 반대 시위를 한다.



“아이를 살해한 엄마도 아이가 칭얼거리면 아이가 왜 그럴까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거든요. 문제는 이런 엄마가 많다는 거예요.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전문가에게도 물어보고 아이 상태도 관찰해야 하는데, 엄마는 단지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5대 영양소를 먹일까만 생각하니 ‘먹어! 꿀꺽!’ 여기에만 관심이 있죠. 아이가 보채면 ‘조용히 해!’라고 소리칠 뿐, 아이가 왜 울까 생각지 않아요. 아이 감정이 아닌 먹거리에만 관심을 쏟는 엄마들에게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은 특히 화나 짜증 같은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데 힘들어한다. 문제는 부정적 감정이 양육할 때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것.

오 박사는 이와 관련해 “이 사건을 계기로 부모들에게 자신의 양육환경을 점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사랑을 주는 반면, 부모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자란 사람은 자녀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사건의 엄마는 세 아들 중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왔어요. 제가 이 엄마를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아마도 ‘내가 이런 환경에서 너를 어떻게 데리고 나왔는데, 이렇게 나한테 칭얼거릴 수 있어!’라며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엄마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존중받으면서 자랐다면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했다면 부모가 되기 전, 된 후라도 건강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 종교생활을 하면서 좋은 얘기를 듣거나 무료 상담소 등을 찾는 등 부모로서 올바른 상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는 “자신이 별것 아닌 일에도 아이에게 화내는 부모라고 판단되면 반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더 나아가 그는 “어릴 적부터 자기감정을 조절하도록 부모가 아이를 잘 훈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훈육이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가르쳐주는 것을 뜻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때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줘 아이가 망가진 측면이 있다. 오 박사는 “적어도 36개월 이후부터는 훈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물림되는 잘못된 양육

“조절 능력도 배우는 거예요. 절대로 타고나는 게 아니죠. 그런데 요즘 부모는 훈육을 잘 못해요. 자식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단호하게 ‘그건 안 돼’를 못 하는 거죠. 신호등이 빨간불인데 아이가 막무가내로 건너갈 때 따라가면서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요~ 다음에는 안 건너면 좋겠어요~’라고 쩔쩔매면 아이 처지에서는 헷갈릴 수 있어요.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사항을 가르치려면 단호하게 말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훈육을 너무 어려워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죠. 양육은 분명하지만 단호하게, 혼내겠다가 아니라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물론 ‘안 돼’를 남발하는 것도 안 되죠.”

그렇다면 한국인이 타인과의 공감을 비롯해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오 박사는 “자라면서 교육적 자극은 많이 받지만 감정을 소화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자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라는 개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도 강하다. 게다가 정보기술(IT) 강국에 살면서 빠른 속도에 익숙해지다 보니 생각할 여유마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했다.

“아이는 부모에게 행복의 원천입니다. 물론 양육이 힘들어도 부모는 한 인간으로서 더욱 성장한다고 느끼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걸 기쁨이라고 느끼기 어려워요. 저는 늘 ‘내 아이는 왜 이럴까’ 불평하지 말고, 하루에 화장실 갈 때 한 번만이라도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일까’ 고민해보라고 권합니다. 피해자가 커서 가해자가 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 않나요.”



주간동아 870호 (p38~39)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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