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2012.12.31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컬러 중복 인쇄법’으로 근현대 서화작품 대량 복제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2-12-31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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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그림1.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이 소장한 명대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 중 ‘조지농분(調脂弄粉)’.

    1990년대 말 필자는 우리나라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중국 여행길에서 목판화를 원작으로 잘못 알고 사와 한동안 웃음거리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가 판화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속았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한번 실험을 해보자. 명나라 말기인 1620~1630년 제작된 ‘그림1’은 원작일까, 목판화일까. 정답은 목판화다.

    중국 목판화는 기원이 상당히 오래됐다. 당나라 때인 868년 시작된 목판화는 원나라(1271~1368)에 이르러 빨간색과 먹색이라는 두 가지 색을 이용한 채색 기법으로 발전했고, 명나라 때는 ‘컬러 중복 인쇄법(彩色套印法)’이라는 매우 진화한 판화 기법이 출현했다. 이 판화 기법은 색깔에 따라 목판을 달리하는 것으로, 원작 색감에 따라 목판 순서를 달리해 색깔의 짙고 엷음은 물론, 번지는 효과까지 실감나게 재현했다. 지금은 중국 베이징의 롱바오자이(榮寶齋)가 이 기법으로 근현대 서화작품을 대량 복제하고 있다.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서 상설전시 중인 ‘옹방강의 서론’(그림2)은 먹색과 빨간색으로 만든 목판본이다. 이 복제품은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추사 김정희 : 학예 일치의 경지’ 전시뿐 아니라 지금 전시에도 ‘원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품됐다. 글자들을 살펴보면 여기저기 목각 흔적이 보인다. 특히 글자 주변으로 보이는 흔적들은 목판을 찍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그림2.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목판본 ‘옹방강의 서론’(왼쪽). 그림3.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이 소장한 납전지에 쓴 옹방강 글씨.

    ‘원작’ 타이틀 걸고 버젓이 출품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그림4. 2억4000만 원에 낙찰된 안평대군의 복제품.

    ‘옹방강의 서론’은 일반 종이에 만든 것인데, 연구자들이 혹시 중국제 납전지(蠟箋紙)에 쓴 작품(그림3)과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나라 납전지는 가공 방법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기본적으로 표면에 얇게 ‘초(蠟)’를 칠한 뒤 옥처럼 반질반질한 돌로 광택을 낸 종이다. 초로 광택을 낸 종이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방수성이 뛰어나고 부식도 방지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종이에 먹이 스며들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먹 떨어짐이 심하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붓으로 베껴서 그리는 모사(模寫)가 서화작품 복제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었다. 모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표현된 윤곽을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대략 2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종이를 원작에 덮은 후 창문 사이에 고정하고 맞은편에서 비치는 밝은 햇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밑에서 빛이 올라오는 ‘라이트박스(light box)’처럼, 얇은 책상 밑에 등불을 달고 그 불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2002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특별전 ‘조선왕조어필’ 전시에 출품되고 도록에도 실린 안평대군(1418~1453) 이용의 ‘재송엄상좌귀남서(再送嚴上座歸南序)’는 원작이 아니라 모사된 복제품이다. 이 작품은 2010년 에이옥션 제11회 한국 근현대 및 고미술품경매에 안평대군의 진작으로 출품돼 2억4000만 원에 낙찰됐다(그림4).

    이 작품은 원작을 모사한 것이 아니라, ‘원작 → 석각 → 석각의 탁본(그림5) → 석각의 탁본을 모사한 복제품’이다. 돌 표면에 글자를 파낸 석각을 종이에 먹으로 뜬 탁본은 일반적으로 원작 글씨보다 필획이 가늘다. 이는 마치 도장을 찍을 때 인주가 묻은 면이 종이에 더 넓게 찍히는 것과 같다.

    정교한 컬러 목판화 전문가도 눈뜨고 당했다

    그림5. 돌에 새겨진 ‘재송엄상좌귀남서’의 탁본. 그림6. 탁본의 흑백을 바꿔 글자가 검은색으로 나온 것. 그림7. 1447년 안평대군이 쓴 ‘몽유도원기’(왼쪽부터).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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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8.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나온 가짜 ‘추사 김정희의 서첩’.

    탁본의 흑백을 바꿔 글자가 검은색으로 나온 것(그림6)으로 복제품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복제품이 탁본보다 필획이 가늘고 필획 간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복제품을 이보다 3년 전에 쓴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그림7)와 비교하면, 글자 크기가 조금 큰데도 결정적으로 필획에 볼륨이 없다.

    복제품이라고 꼭 진짜만 모사하는 것은 아니다. 위조자가 모사한 작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고 제작한 경우도 많다. 2003년 서울옥션 제68회 우리의 얼과 발자취전 경매에 추정가 3000만~4000만 원에 출품된 ‘추사 김정희의 서첩’은 북송 명필인 산곡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가짜 글씨를 모사한 ‘산곡신품’에, 김정희가 그 진위에 상관없이 붓글씨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표구 부분에 글씨를 쓴 것처럼 위조됐다. 우리나라 위조자가 중국의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을 싼값에 사서 김정희의 광팬을 자극하는 미끼로 쓴 것이다.

    ‘산곡신품’은 매우 복잡한 가짜다. 중국 위조자들은 황정견 서체를 배운 심주(沈周·1427~1509)의 서체를 익혀 황정견의 글씨를 위조했다(황정견 → 심주 → 황정견의 가짜). ‘산곡신품’은 심주의 가짜를 모사한 복제품이다.

    3년 후 ‘추사 김정희 서첩’은 추사 김정희 서거 150주기를 기념한 서울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사특별전 ‘추사 문자반야’에 ‘김정희 제 산곡신품’이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도록에도 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패를 방지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공공기관이 미술시장과 너무 가까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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