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9

2012.12.31

“너도 ‘케이멜론’ 사먹고 있니?”

국내 최초 전국단위 농산물 브랜드…뛰어난 맛과 품질로 인정받아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daum.net

    입력2012-12-31 10: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너도 ‘케이멜론’ 사먹고 있니?”
    집에서 클릭만 하면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달고 맛있는 멜론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시대다. 농협이 멜론전국연합사업단을 결성해 2009년부터 멜론 생산매뉴얼을 개발하고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 맛과 품질이 우수한 ‘케이멜론(K-melon)’을 유통시키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멜론은 단백질은 수박의 2∼3배, 섬유질은 9배, 비타민은 2배 많은, 말 그대로 영양덩어리다. 수분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돼 아이들 영양간식이나 성인 다이어트식으로 그만이다. 숙취 및 피로 해소나 환자 보양 과일로도 손색없다. 하지만 턱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가정에서 자주 먹기는 힘들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멜론 대부분이 국내에서 생산한 우리 농산물임에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잘못된 생산방식과 유통구조, 소비자 오해 등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국내에서 생산한 멜론은 그동안 국내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멜론 수요가 높은 일본이나 대만 등지로 헐값에 수출됐다.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고 결성한 것이 멜론전국연합사업단이다. 전국 17개 시군 32개 단위 농협과 농업인 1000여 명이 기능을 분담해 생산부터 최종 판매까지 책임지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신토불이 멜론 브랜드 케이멜론이 탄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단위 연합 농산물 브랜드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품질관리

    생산자나 생산지도 제각각인데 브랜드의 통일성 유지와 품질 보증이 가능할까. 케이멜론 핵심은 철저한 재배매뉴얼 교육과 품질관리 시스템에 있다. 케이멜론 생산에 참여하는 농업인은 그야말로 정예부대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역 특성에 맞게 제작한 멜론 재배매뉴얼과 브랜드, 리더십 교육을 최소 10회 이상 받아야 케이멜론 생산농가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꼬박꼬박 재배일지를 쓰고, 수시로 품질평가를 받는 등 파종부터 수확까지 멜론전국연합사업단의 철저한 관리를 거치지 않으면 멜론을 출하할 때 케이멜론 브랜드를 내걸 수 없다. 최종 수확 시기 역시 사업단의 당도 측정 결과를 통해 결정된다.

    복잡하고 까다로울 것 같지만 농업인 처지에서는 판매나 유통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오히려 농사짓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병충해가 돌아도 이 약을 쓸지 저 약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멜론전국연합사업단에서 미리 대응매뉴얼을 확보해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주로 수박이나 참외, 토마토 등을 생산하고 멜론을 부수적으로 재배하던 농업인 상당수가 최근 멜론을 주력상품으로 바꾸고 있다. 비인기 작물이던 멜론이 브랜드 출범 3년 만에 기대주로 급부상한 것이다.

    케이멜론 브랜드로 생산되는 멜론 종류는 6가지.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머스크멜론부터 봄과 여름에 주로 생산하는 파파이야, 가야백자멜론, 양구멜론, 홈런스타 등이다. 여기에 최근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잘라 포장한 ‘바로 먹는 멜론’이 합세했다. 각각의 품종 출하 시기에 맞춰 케이멜론 홈페이지와 농협하나로클럽마트, 롯데마트, 이마트, 가락시장 등 전국 각지 유통채널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생산이력추적 시스템 도입

    케이멜론이 시장에서 빠르게 유통망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뛰어난 맛과 품질 덕분이다. 멜론전국연합사업단은 2009년 출범한 이후 농협하나로클럽마트 등에서 꾸준히 시식행사를 벌이며 우리 땅에서 생산한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이란 점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이후 케이멜론은 소비자들로부터 맛과 품질을 검증받으며 “사먹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선물하기 좋다”는 입소문을 탔다.

    생산이력추적 시스템(ERP시스템) 도입으로 상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 것도 주효했다. ERP시스템이란 농가단위 생산이력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포장상자와 스티커에 인쇄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거나 포장상자에 인쇄된 농업인번호 바코드를 케이멜론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상품 생산과정 전반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 ㅣ 안재경 멜론전국연합사업단 단장

    “농산물 한류, 케이멜론이 앞장섭니다”


    “너도 ‘케이멜론’ 사먹고 있니?”
    케이멜론 성과는 내수용 멜론의 질적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농산물 브랜드화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더불어 농산물 브랜드 최초로 장학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농산물 수출’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 같은 케이멜론 성공의 배후에는 안재경 멜론전국연합사업단 단장(사진)이 있다. 경기·충북지역 복숭아 브랜드 ‘햇사레’, 경기지역 배·포도 공동 브랜드 ‘잎맞춤’, 전국단위 연합 마늘 브랜드 ‘본마늘’ 등을 성공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협에 입사한 후 2002년까지 20여 년간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냈던 그가 농산물 브랜드화를 진두지휘하는 전사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후반부터 농산물 유통 형태가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1000원은 받아야 겨우 수지가 맞는 상품도 500원에 팔려 농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대기업과 농민 개개인이 결코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민도 자신이 생산한 상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상품을 브랜드화할 필요가 있었죠.”

    안 단장 목표는 케이멜론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하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칠레 FTA 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 농가가 더는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멜론은 수출 가능성이 충분하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봐도 8kg짜리 한 상자가 20만∼30만 원, 한 통에 4만 원 정도 고가에 판매되지만 한 해 수입 물량만 3만t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품질 향상만 뒷받침한다면 한 통에 5만∼6만 원에 거래되는 브랜드 멜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0년 전체 판매액의 9%(9억7600만 원)를 수출한 케이멜론은 2011년에는 홍수,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감했지만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5억6000만 원어치를 수출했다. 이미 국가별 케이멜론 전담 수출사업자를 공개 선정했으며, 2013년에도 대상 국가별 소비자 요구를 파악해 그에 맞는 판매 마케팅 전략을 준비할 계획이다.

    “농산물 브랜드화와 수출은 농협과 농업인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농업강국 뉴질랜드의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가 좋은 예죠. 뉴질랜드에서 생산한 키위를 해외로 수출하려면 반드시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이라는 브랜드를 달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을 위한 정부 지원펀드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죠. 제스프리 키위가 전 세계에 수출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농산물 수출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뒷받침해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안 단장 기대처럼 케이멜론이 농산물 한류로 성공하려면 정부와 국민의 많은 관심 및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