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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우향우 아베 재등장 동북아에 먹구름 몰고 오나

미국까지 끌어들여 한·일, 중·일 관계 최악 우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우향우 아베 재등장 동북아에 먹구름 몰고 오나

우향우 아베 재등장 동북아에 먹구름 몰고 오나

12월 17일 일본 도쿄 자민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파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등극함에 따라 동북아에서 영토와 역사 문제 갈등이 폭발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아베의 재등장으로 자칫 한일 관계는 물론, 중·일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베는 2006년 9월 전후(戰後)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제90대)가 됐지만,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 참패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한 바 있다.

12월 16일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그동안 와신상담해온 그가 제95대 총리에 취임했다. 총선 결과를 보면 자민당은 중의원(하원) 전체 의석 480석 가운데 과반인 294석을 차지했다.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도 31석을 얻어, 두 당의 의석수를 합하면 2/3가 넘는 325석에 달한다. 320석이 넘으면 참의원(상원)에서 법안이 부결돼도 중의원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 헌법 개정(개헌)안도 발의할 수 있다.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은 57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는 54석을 얻어 민주당에 이어 제3당이 됐다.

5년 3개월 만에 다시 일본을 통치하게 된 아베는 일본 정치사에서 두 번이나 총리에 오른 두 번째 인물이다. 그에 앞서 요시다 시게루가 1946년과 48년 총리가 됐다. 아베의 피는 극우 DNA로 가득 차 있다. 먼저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 책임자로 A급 전범이다.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에서 각료로 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주범인 도조 히데키(1884∼1948) 전 총리 밑에서 상공장관을 지냈다. 총리 시절엔 줄기차게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어릴 적부터 외조부 손에서 자랐다. 아베의 부친은 아베 신타로(1924∼91) 전 외무상이고, 조부는 아베 간 전 중의원 의원이다. 아베 신타로는 일본 극우 거두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후계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아베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물의를 빚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고이즈미의 부친 고이즈미 준야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시절 방위청 장관을 역임했다. 아베는 고이즈미 총리 시절 자민당 간사장과 관방장관을 지냈다. 아베는 말 그대로 ‘전범 패밀리’ 일원인 셈이다.

아베의 고향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다. 아베는 1977년 세이케이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철강회사를 다니다, 1982년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91년 부친이 병사하자 93년 부친의 지역구에서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한 이후 7차례나 연임했다. 야마구치현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물론, 전전과 전후를 통틀어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가운데 가장 많은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아베는 8번째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다.



야마구치현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인 요시다 쇼인(1830∼1859)의 고향이기도 하다. 요시다는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과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던 군국주의자다. 그의 제자 중에는 군대를 현대화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의 서막을 여는 데 기여한 청년 사무라이 다카스기 신사쿠가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아베와 고이즈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이다. 고이즈미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요시다와 다카스기 관계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요시다, 아베를 다카스기에 빗대기도 했다. 요시다와 다카스기는 1869년 야스쿠니 신사가 세워진 후 처음으로 합사된 인물들이기도 하다.

“평화헌법 개정이 독립성 상징”

아베가 그동안 추구해온 목표는 일본이 전후체제에서 벗어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아베는 월간 ‘문예춘추’ 최신호에 기고한 ‘새로운 국가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본을 미국 등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만든 전후체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면서 “이를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과 대등한 관계 수립을 위해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제3국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상은 외조부인 기시가 꿈꿨던 국가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일본이 독립하려면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기시의 신념이자 정치적 목표였다. 기시는 일본의 독립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형식상 이뤄졌을 뿐, 미군 점령시대에 강압적으로 제정한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 체제를 유지하는 한 진정한 독립국이 아니라는 견해를 지녔다. 아베도 2006년에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국가 골격은 일본 국민의 손으로 백지에서부터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평화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아베의 이 같은 목표는 의정활동 초기부터 뚜렷하게 드러났다. 1997년 2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 모임’을 결성해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역사교과서 개정운동을 주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는 일본이 식민지시대에 저지른 잘못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 등 과거사를 반성하는 것이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했다. 첫 총리 재임 1년 동안 애국심교육을 내건 교육기본법 개정과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 제정 등을 성사시켰다.

아베가 두 번째 총리 임기 중에 추진할 목표는 자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제시한 공약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아베와 자민당 정부는 ‘일본을 되찾자’는 국정 목표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 의미는 ‘외국에 대해 단호한 각오를 보여주는 강한 일본’과 ‘일본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일본’을 되찾자는 것이다. 아베와 자민당은 ‘강한 일본’을 위해선 군대 보유, 군비 확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국방 예산 증가는 사실상 일본의 재무장 선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 개정 없이 국가안전보장법 제정이나 헌법 해석만 달리해도 도입할 수 있다. 일본 역대 정부는 사토 에이사쿠 총리 집권 때인 1968년 이후 관련 헌법에 대해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지만 헌법 제9조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방위만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아베가 평화헌법 개정을 서두를 것 같지는 않다. 개헌을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전체 의석 중 2/3가 찬성해야 한다. 중의원에선 이번 총선으로 2/3를 확보했지만 참의원에서는 민주당이 여전히 제1당이다. 자민당은 참의원에서 현재 87석으로 공명당(19석)과 의석수를 합해도 과반(121석)에 미달한다. 이 때문에 개헌을 발의하려면 참의원에서도 2/3가 넘는 절대 안정 의석 확보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자민당은 2013년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아베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할 경우 개헌 요건을 규정한 헌법 96조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중의원과 참의원 2/3 동의’ 규정을 ‘1/2 동의’로 바꾼 후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한 헌법 9조를 바꾸는 2단계 개헌을 하겠다는 의도다. 헌법 9조 개정에 대해는 아직도 반대가 우세한 만큼 서둘러 국민투표에 부치기보다 개헌 발의 요건부터 완화하려는 것이다.

자민당은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한 역사교육을 전면 부정하는 공약도 내놓았다. 현재 일부 교과서에 남아 있는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까지도 완전히 없애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자민당은 이를 위해 교과서 검정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 ‘근린제국 조항’도 수정하기로 했다. 근린제국 조항은 1982년 만들어졌는데, 교과서를 검정할 때 이웃 국가와 관련된 근현대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서는 국제 이해와 협력 차원에서 배려한다는 원칙이다. 근린제국 조항을 수정하면 일본의 ‘침략’이 ‘진출’로, ‘탄압’이 ‘진압’으로, ‘출병’이 ‘파견’으로 바뀔 수 있다.

아베가 고노 담화는 물론, 무라야마 담화와 미야자와 담화를 모두 고치겠다고 한 공약을 이행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고노 담화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과 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사실로 인정한 내용이다. 미야자와 담화는 1982년 8월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관방장관이 “교과서를 기술할 때 한국, 중국 등 근린제국의 비판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을 말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총체적인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 이 담화들은 일본이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과거사 문제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온 것들이다.

자민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동원한 일본군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해외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이유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기 위해서다. 일본은 군위안부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등 군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수용한 적이 없다. 만일 아베가 이른바 ‘3대 담화’를 모두 부정한다면 한일 관계는 파탄이 날 게 분명하다.

우향우 아베 재등장 동북아에 먹구름 몰고 오나

2010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정화의식을 하고 있다(왼쪽). 2007년 2월 24일 일본 시마네현 현민회관에서 열린 ‘다케시마의 날’ 기념 행사.

영토 문제가 중요한 현안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아베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중·일 관계가 악화한 것을 의식해 총리 재임 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과거 총리 재직 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고 말한 만큼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가능성이 높다. 10월 17일 야스쿠니 신사 추계대제 때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 대해 자민당 총재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밝히려고 참배했다”고 밝혔다. 아베는 패전일인 8월 15일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영토 문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베는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차원에서 시마네현이 조례로 정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을 정부 행사로 승격하겠다고 공약했다.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 3월 독도 영유권 주장을 위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한 이후 2006년부터 2월 22일이면 시마네현 차원에서 행사를 가졌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 행사를 두고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행사라고 변명해왔다. 그런데 이날을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기념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아베는 총리실에 독도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전담부서 설치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에 대비해 논리적 근거를 갖춰놓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과 무력 충돌 위험성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는 중국과 일본이 정면충돌하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높다. 아베와 자민당은 센카쿠 열도에 경찰을 상주시키고 등대와 항만 등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자위대 인원과 장비, 예산을 확충하고 해상보안청도 강화하기로 했다. 아베는 “센카쿠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1mm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교섭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영해침범죄를 신설해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면서 “센카쿠 해역에 퇴역 자위함을 배치해 중국의 영해 진입에 맞설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중국의 센카쿠 열도 접근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아베와 자민당 정권이 이 같은 공약을 실행할 경우, 중국과의 무력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도 영토 문제에서만큼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부주석 시절인 9월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구매하는 나오쥐(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침범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독자적인 영해기선을 선포하고 해양감시선과 어정선 등을 센카쿠 영해에 수시로 진입시키는 등 일본에 강력하게 도전해왔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최근 서태평양 해상에서 센카쿠 열도 충돌 상황을 가정한 훈련까지 벌였다.

특히 중국 국가해양국은 12월 13일 해양감시용 항공기 B-3837를 센카쿠 열도 영공에 진입시켜 해양감시선 4척과 함께 입체적인 순찰활동을 벌였다. 중국 항공기가 댜오위다오 영공에 들어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날은 마침 난징 대학살 75주기였다.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 13일 중국 침략에 나선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면서 민간인 30만 명을 생매장하는 등 잔혹한 방법으로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중국의 영공 침입 등 도발은 일본에 대한 강력한 경고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항공기가 댜오위다오에 출현하자 일본은 자위대 소속 F-15 전투기 8대와 조기경보기를 긴급 발진시켰다. 양국이 무력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아베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가 1978년 관방장관 시절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에 힘썼던 점을 상기시키며 “아베가 ‘불효 정권’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미국과의 동맹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내년 초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할 계획이다. 아베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의 대립이 격화한 것은 민주당 집권 기간에 미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과의 군사 협력이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응하는 최선의 카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일 대결은 아시아 복귀 전략을 구체화하는 미국까지 가세함으로써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아베와 자민당의 집권은 동북아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868호 (p50~53)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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