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감히 검사 비리를 경찰이?

김광준 검사 사건으로 ‘검경 수사권 갈등’ 다시 주목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11-19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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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검사 비리를 경찰이?

    11월 14일 오전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가 서울 서부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무소불위’ 검찰 파워를 다시 한 번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금품수수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는 검찰의 ‘신속한’ 개입으로 동력을 잃었다.

    김 검사에게 소환 요구를 한 것은 경찰이지만, 김 검사가 출두한 기관은 뒤늦게 수사에 뛰어든 검찰(특임검사)이었다. 주요 참고인들은 특임검사팀 조사를 받은 후 경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제공한 유진그룹 계열사 EM미디어 유순태 대표 역시 특임검사 소환에는 응했으나 경찰 조사는 거부했다. 그는 경찰에 “이중수사여서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견서를 보냈다.

    부당한 개입…부글부글 끓는 경찰

    11월 13일 국무총리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검경 갈등을 치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직후 경찰청은 “김 검사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검찰과 같은 내용은 빼고 검찰이 하지 않은 부분만 수사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검찰에 수사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자인한 셈이다. 이중수사 논란이 벌어진 지 사흘 만이다.

    검찰 관련 사건에 대한 경찰의 무기력한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찰도 수사 개시·진행권이 있지만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중단시킬 수 있다. 수사지휘권으로 경찰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사권도 가졌기 때문에 이번 김광준 검사 사건처럼 경찰이 이미 수사 중인 사건도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의 이런 행위는 부당해 보이지만 현행 형사소송법 체계에서는 불법도, 월권도 아니다.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검찰의 ‘부당한’ 개입으로 검찰 관련 수사를 제대로 못한 사례는 올해만 해도 몇 건이 있다.

    10월, 대전지검 특수부 소속 직원 3명이 만취상태에서 행인과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수사하려 하자 검찰은 직접 조사하겠다며 사건을 넘길 것을 지시했다. 일반인 같았으면 구속감이었지만 이들 3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6월, 경찰은 재경 지역 세무서장이 육류수입가공업체 대표에게서 금품과 함께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사건을 수사했다. 경찰은 그 자리에 현직 부장검사 2명이 동석한 정황을 파악하고 해당 골프장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이를 5차례나 기각했다. 해당 세무서장의 동생은 현직 검찰 간부다.

    3월, 경찰은 골재 채취업자로부터 모 골프장 대표를 구속 수사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 79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광주지검 수사관에 대해 계좌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기간을 축소해 영장을 신청하라고 지휘했다. 또한 3년 전 골프장 현황에 대한 지질조사 등 사건 본질과 관련 없는 수사지휘를 통해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경찰은 검찰 지휘에 따라 불구속 송치했다.

    1월, 경남 밀양경찰서 정모 경위는 대구지검 서부지청 박모 검사를 모욕과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청에서 수사에 착수하자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사건을 대구지검 관할인 대구경찰청으로 이송하게 했다. 여기서 경찰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박 검사가 소환에 불응한 데다 검찰이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을 반려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유력한 물증인 검사실 폐쇄회로(CC)TV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겼으나 검찰은 박 검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2010년 경찰은 모 외국어고등학교 불법 찬조금 사건을 수사했다. 2007~2009년 이 학교 이사장, 교장 등이 불법 찬조금 21억 원을 거둬들여 교사들의 명절 선물비와 회식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혐의였다. 경찰은 고발장 접수 후 수사를 진행하며 학교 법인계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4차례 신청했으나 검찰은 매번 반려했다. 이후 검찰은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며 송치 명령을 내렸다. 당시 검찰 고위관계자가 수사 대상자(학부모)에 포함돼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6년 경찰은 모 법무법인이 소프트웨어 업체와 계약을 맺고 컴퓨터 판매점을 함정 단속한 후 과도한 합의금을 받아낸 사건을 수사했다. 이 법무법인은 정보기술(IT) 업체 직원을 가장한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게임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했다. 판매점에서 프로그램을 깔아주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후 합의금을 뜯어내는 수법이었다. 경찰은 변호사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법무법인 대표인 모 변호사의 은행계좌와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2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당했다. 이 변호사는 부장검사 출신으로 2005년 수사권조정 자문위원회 검찰 측 위촉 위원이었다.

    공수처가 검사 비리 제어할까

    감히 검사 비리를 경찰이?

    11월 11일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김광준 검사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뒤 자료를 상자에 담아 나오고 있다.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다. 특히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해 검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전담케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낸다.

    민주통합당 검찰개혁 실무자인 백혜련 변호사는 김광준 검사 사건에 대해 “검찰이 중간에 개입한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번 사건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새삼 주목받게 됐다”고 말했다.

    “공수처 설치가 절실함을 보여준 사건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사 비리는 검찰도, 경찰도 아닌 공수처가 수사하게 된다. 공정성이 보장되고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없앨 수 있다.”

    공수처는 말 그대로 고위공직자 비리 전담 수사기관이다. 만약 경찰이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 우연히 검사 관련 비리를 포착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백 변호사는 “법령 제정 때 이런 세세한 사항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일원화해야 한다. 만약 직무 관련 범죄가 명백하면 공수처로 사건을 이관해야 한다고 본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안철수 후보 진심캠프 법률지원단 소속 정민규 변호사는 “현 제도에서는 검찰의 경찰 수사 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공수처를 설치하면 지금 같은 이중수사 논란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검찰 개혁)안은 수사는 경찰이 하고 검찰은 수사지휘만 하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와 별개로, 우리 안대로 하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폐지를 강조했다.

    새누리당 시각은 조금 다르다.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현 수사구조는 그대로 두되 상설특검을 운용해 판검사 비리를 수사하자”고 말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상설특검이 필요하다. 이번처럼 검찰과 경찰 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 상설특검으로 넘기면 된다. 상설특검은 판검사 비리를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도 있다. 반면 문재인·안철수 후보 쪽에서 주장하는 대로 공수처가 설립되면 검찰과 경찰은 판검사 비리를 수사할 수 없다.”

    안 위원장은 검경의 이중수사 논란에 대해 “검경 수사협의회에서 조정하면 될 것”이라며 “수사는 여러 기관에서 경쟁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는 “현 형사소송법 체계를 고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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