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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난 틀에 매이지 않고 진화한다”

14년 만에 국내 개인전 ‘제2 백남준’ 육근병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donga.com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난 틀에 매이지 않고 진화한다”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난 틀에 매이지 않고 진화한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일민미술관 외벽에 ‘육근병’(55)이라는 이름이 내걸린 것을 보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20년 전, 갑자기 사라져버린 중학교(부천 소명여자중) 미술선생님 이름이다. 선생님이 사라진 후 누군가 그랬다. “육근병 선생님은 세계적인 미술가가 됐다.” 그리고 실제로 신문에서 몇 번 그 이름을 봤다. ‘설치미술가 육근병…’, 그 이름 옆 작은 사진 속 이미지는 커다란 무덤 위에 모니터가 박혔고, 그 안에서 커다란 눈동자가 끔뻑거리고 있었다. 딱 한 번 봤을 뿐인데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강렬했다.

이제 와 알고 보니, 그는 특유의 ‘눈’ 작업으로 199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적 명성의 국제미술전 ‘도큐멘타’에 초청됐는데, 정부 지원이 넉넉지 않아 살던 집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독일로 떠났다고 한다. 몇 개월 뒤 돌아왔을 땐 학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처지가 돼 있었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에서 활동하며 직책을 맡았는데, 독일에 머무는 사이 그의 교무실 책상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말고도 많은 전교조 교사가 학교를 떠나야 했던 시절이다.

그의 이력은 ‘이단아이자 스타’로 정리된다. 1981년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7년 만에 가진 첫 개인전이 ‘뜻밖에’ 성황을 이루고, 그 여파로 이듬해 ‘얼떨결에’ 참가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대상 후보에 올랐으니,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이 주름잡던 당시 미술계에 그야말로 충격을 안겼다. 1992년 그가 제9회 도큐멘타에 초청됐을 땐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술계까지 들썩였다.

도큐멘타는 4~5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전시회로, 세계에서 가장 실험성이 강하고 치열한 예술정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피카소와 몬드리안, 칸딘스키도 도큐멘타 출신이다. 그에 앞서 백남준과 이우환이 초청받았으나, 당시 두 사람 국적이 각각 미국과 일본이었던 터라 한국인으로는 육근병이 최초였다. 도큐멘타엔 대부분 서양 작가가 참여하고 아시아에선 일본 작가만 간혹 이름을 올렸던 터라, 육근병의 참가 소식에 일본 언론은 그를 ‘제2 백남준’이라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그가 백남준에게 연락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공항에서부터 일본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제2 백남준’이라는 수식어도 그때 일본 언론이 처음 붙여준 것이다.

외눈박이 눈동자의 충격



이후 그는 프랑스 리옹비엔날레(1995)에 참가하고 일본과 호주, 유럽 등지에서 프로젝트와 전시를 진행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왕성하게 활동했다. 중앙대 등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 스스로 “센 나라에서 놀았다”고 할 만큼 1년 중 1/3을 해외에서 보냈다. 교단에서 내몰린 후 세계가 그의 무대가 된 셈이다. 그의 무엇이 세계 미술계를 매료시켰을까.

“미술은 흔히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 등 유파를 구분하는데 내 작품은 특정 유파로 규정하기 어렵다. 일종의 뉴페이스다. 작품의 파괴력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무덤 위 눈이 그들을 응시할 때의 카리스마….”

커다란 봉분 위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외눈박이 눈동자를 비추는 그의 작품은 1988년 첫 개인전에서부터 ‘서울대, 홍대 가릴 것 없이 꼭 봐야 할 전시’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무명작가의 첫 개인전으로는 드물게 전시 일정을 연장할 정도였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으로 들어가지만, 무덤에 누워 있다고 사라진 게 아니며 산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일상의 발견에서 시작된 ‘눈’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될 타자’ ‘다른 세계관을 가진 위력적인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

전면에 무덤을 내세우거나 높다랗게 기둥을 세우고, 옛 건물 계단에 구멍을 뚫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흔히 설치미술 장르로 분류된다. 비디오 영상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디오아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러한 ‘구획정리’를 거부한다. “구상을 마치면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할 뿐, 설치나 비디오 같은 일정 틀에 종속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정확한 활용’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작품에 비디오가 자주 등장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비디오가 가진 특성을 극대화하는 비디오아트와 달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목적으로 비디오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자신은 “메디어아티스트(Message+Media+Artist)에 가깝다”고 말했다.

못 보고 놓치는 것의 가치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난 틀에 매이지 않고 진화한다”

작품 운송용 나무상자에 영상을 띄운 ‘트랜스포트’.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도큐멘타 이후 꼭 20년. 오랜만에 국내 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에는 리옹비엔날레에서 발표했으나 국내엔 공개하지 않았던 ‘Survival is History’와 함께 비교적 최근에 작업한 오디오 비주얼 신작들이 전시된다. 강렬한 불길이 치솟는 영상과 함께 인공위성이 수집한 우주의 소리를 들려주는 ‘Messenger’s Message’는 그야말로 인류의 진화를 보여준다. 그는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하이테크 중 하나가 불이며 봉화, 성화, 전쟁 등의 형태로 메시지를 전하는 기능도 담당했다”면서 비디오와 인공위성, 신디사이저 등을 활용해 그것을 표현했다.

무명천이 바람에 움직이는 영상을 담은 ‘Nothing’은 회화 이상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는 “Nothing은 something을 전제로 한다”며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의 그 무엇(something)을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심산유곡에서 촬영한 물길과 도심 한구석에서 역행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화면 2개에 나란히 보여주는 ‘Apocalypse’는 절망적이라고 생각한 일상에 긍정의 힘은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작품을 운송할 때 사용하는 나무상자에 영상을 접목한 ‘트랜스포트(Transport)’는 화려한 명성에 가려진 작가의 평범한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보통의 공간,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공간에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담겨 있으며, 다만 우리가 못 보고 놓치는 것임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국내 활동이 뜸해 한때 ‘사망설’까지 나돌았지만, 그는 ‘작업의 진화’를 꿈꾸며 계속해서 달려왔다. 그의 존재감은 내년 미국 뉴욕에서 제대로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본부 외벽을 전 세계 아홉 살짜리 어린이들의 눈으로 가득 채우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미 2001년 9월 시도했으나,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10년 넘게 미뤄온 작업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순수한”, 그것도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 9, 아홉 살 어린이들의 눈만큼 유엔이 가진 세계평화 유지 임무를 제대로 표현할 만한 소재가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2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문의 2020-2055.



주간동아 862호 (p60~61)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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